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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4부작 청소년 범죄 드라마 ‘소년의 시간(Adolescence)’이 공개 3주 만에 93개국에서 주간 탑10에 진입했다. 이로써 ‘소년의 시간’은 역대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 중 하나로 부상했다. 특별한 것도 없는 이 드라마가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건 현대인이 당면한 문제들에 관한 논의를 촉발했기 때문이다.
극 중 13세 소년 제이미 밀러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소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급작스럽게 나타난 경찰들을 보고 바지에 오줌을 지린 어린 소년이 결백을 주장하는 장면에서는 ‘뭔가 오해가 있겠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소년을 누명에서 벗어나게 해줄 반전 같은 요소는 없었다. CCTV 속에 박제된 장면은 그가 반 친구를 살해했다는 것은 착오가 아닌 사실임을 뒷받침 때문이다.
이후 작품은 ‘소년이 왜 그랬을까?’ 이해해보고자 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그러나 그곳에는 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광란적으로 급진화한 제이미만 있을 뿐이다. 최대한 침착하고 전문적으로 심리에 응하던 심리학자가 제이미와의 상담을 마친 뒤 한숨을 쉬며 눈물을 흘린다. 이 장면에는 교육받지 못한 아이들의 공격성이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것일 수 있다는 뒤늦은 깨달음과 후회가 담겨 있다. 제이미에게 “너 이해하러 온 것”이라며 샌드위치를 건넸던 그녀는 제이미가 남기고 간 샌드위치를 만지려 하지도 않는다. 반 친구를 죽였지만, 칼이 있었음에도 그 애의 몸을 만지지 않았다는 것을 칭찬받고 싶어하는 아이의 왜곡된 도덕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극 중에서 10대 소년들이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노출되어 여성 혐오적 가치관에 영향을 받고 젠더를 기반으로 하는 폭력을 일으키는 유해성에 대해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심지어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세계는 물론이거니와 그들이 쓰는 언어조차 알지를 못해 그들의 도움이 없으면 문제를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단절돼 있다. 그들이 겪고 있는 우울이나 불안, 심리적 어려움에 대해서는 정작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그들이 알아서 잘 자라주겠거니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제이미의 가족은 큰 문제가 없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아빠, 그런 아빠를 어린 시절부터 봐오며 사랑했던 엄마. 그 부부 사이는 물론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범죄자를 만들어 낼 만한 구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환경이었다. 심지어 제이미의 범죄로 인해 가족 모두가 이웃과 지역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괴롭힘을 상황에 처하면서도 그들은 서로를 탓하고 비난하지 않고 “네 잘못이 아니야.”라며 위로했다.
다만, 그 가족의 잘못이 있다면 제이미가 밤늦게까지 소셜 미디어에 접속해 극단주의 콘텐츠에 의존하고 그들이 주는 위험한 영향력 속에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을 때 그저 문밖에서 “내일 학교 가야하니까 일찍 자.”라고 얘기해줬던 것 밖에 없다. 그런데 제이미가 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더 알아보지 않고 그저 아들이 불을 끄면 그걸로 됐다고 받아들였던 것이 결국 살인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 사이 제이미는 자신으로부터 나온 폭력에 대해 뭐가 잘못됐는지조차 모르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알코올 중독자나 학대를 일삼는 부모가 아니더라도 가정 폭력에 노출되지 않은 자녀일지라도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전개와 서사는 이 가족에게 그 누구도 감히 돌을 던질 수 없게 만든다. 현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이미 소셜 미디어에 쉽게 노출이 되어 있고 부모는 그 세부적 내용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이들 가족이 겪고 있는 비극의 참사가 곧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이 생기는 것은 그들의 일상이 우리의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공감시키며 작품의 파장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영국의 총리 키어 스타머(Keir Starmer)는 영국 전역의 모든 중학생에게 무료로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소년의 시간’이 허구 속에서나 존재하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떨어지는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가족에게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악몽 같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 까닭에서다. 가족이라는 연대는 구성원 한 명의 잘못이 자신의 것으로 돌아와 인생이 피폐해지고 무너져 내리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제이미가 행한 범죄가 그의 가족에게도 끊어낼 수 없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것처럼 말이다.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가족 안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더 많은 관심과 사랑 그리고 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소년의 시간’은 청소년 범죄를 다루면서 ‘이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이 일은 왜 일어났는가?’에 대해 통상적인 인과관계들을 파괴하며 새로운 시각들을 제시한다.
또한, 이를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보다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오는 것은 그것이 우리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청소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이때, 시의적절하게 ’소년의 시간‘은 가족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훌륭한 토론의 논제를 제시했다.
이 작품이 던진 질문들이 세계적으로 공론화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인다. 온라인 세상 속에서 내맡겨진 채 성장하고 있는 오늘날의 10대들을 가족의 품으로 회귀시키려는 노력이 다음 세상을 열 수 있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해줬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부모와 아이들 사이의 대화를 생성하면 좋겠다.”라는 제작자 스티븐 그레이엄(Stephen Graham)의 말처럼 예술의 현실 참여가 사회 문제를 개선해주는 순기능을 작동시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생각해볼 문제 ◇
1. 소셜 미디어에 청소년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력에 관해 설명하고 이것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각각 나눠서 서술하시오.
2. 청소년들이 소셜 미디어로부터 어떻게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고 있는지 쓰고 이는 어떤 면에서 위험한지 서술하시오.
3. 건강한 자기표현이란 무엇이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 있는지 쓰시오.
4. 청소년이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지원들은 어떤 것이 있으며 이런 것들이 있음에도 왜 청소년들은 이보다 소셜 미디어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는지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
5. 소셜 미디어가 청소년 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논술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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