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벽 고려대 교수 “교사와 학부모가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야 합니다”(인터뷰)
입력 2025.01.24 14:54
  • 조벽 고려대 석좌교수.
  • 공교육은 국공립 및 사립 초중고등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국가공인 교육으로, 사회에 이바지하고 학습 사명을 통해 국가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예로부터 교사는 교육을 이끌어가는 권위를 가진 직업으로써, 많은 이의 신뢰를 얻고 존경을 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 공교육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학부모가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 또한 ‘학교’가 아닌 ‘학원’에서 공부한다고 말한다. 교권침해와 관련한 사건·사고도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23년 벌어진 서이초 사건은 교권침해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공교육을 향한 예전의 위상은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조벽 고려대 석좌교수는 “교사는 교직이 힘들다 하고, 학부모는 양육이 힘들다 하고, 학생은 공부가 힘들다 하는 불안정한 상황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미시간공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학습센터 소장, 혁신센터 소장, 학생성공센터 소장을 역임했다. 한국에서도 위(Wee)센터를 지원하는 거점위센터 센터장을 역임하는 등 40여 년간 올바른 교육을 위해 힘쓰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신간 <요즘 교사들에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을 출간하고, 학생의 성공과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 교육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제시했다. 조선에듀는 조벽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공교육의 현실과 더불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 대한민국 문화예술축제 기조강연./조벽 교수 제공.
  • ─ 최근 서이초 사건을 비롯해 교권과 관련한 많은 사건·사고가 존재했습니다. 어떻게 지켜보셨을까요?

    서이초 사건은 매우 불행하고 슬픈 사건입니다. 문제는 앞으로 계속해서 유사한 사건 또는 더 안타까운 사건이 터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교육은 심각하게 병들어 있으며, 서이초 사건은 그 증상 중 하나입니다. 서이초 사건 이후로 다양한 대책들이 제시되고 시행되고 있어요. 분명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증상을 완화하더라도 병을 치유하지는 못한다는 뜻입니다.

    교육을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현상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지극히 협소한 시각입니다. 교육 시스템과 학부모를 분리하거나 대립 관계로 여기는 시각은 매우 잘못됐습니다. 학부모의 태도와 행실 역시 우리 교육 시스템의 결과물이며, 더 나가서 극단적 갈등으로 치닫는 우리 한국 사회 현실 또한 교육 시스템의 결과물로 인식해야 합니다. 

    ─ 각 교육청에서는 교권 보호를 위해 전담 변호사 확충에 나섰습니다. 이 같은 방안이 실질적으로 교권 보호에 도움이 될까요?

    단기적으로 도움 되는 부분이 있겠습니다. 학내에서 벌어지는 사건 중, 일부 폭력 행동과 악성 민원은 교육 철학적인 방법으로만 처리하기에는 벅찬 면이 있습니다. 문제가 학교 울타리 내에서 발생했다 하더라도 흔히 학교 밖에서 잉태한 문제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인에 의존하고 해결책을 그들에게 맡기는 게 편리한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의 선례를 닮아가는 게 영 불안합니다. 미국의 경우, 학교는 인근 법무법인과 계약을 맺고 수시로 법률 자문을 받습니다. 규모가 큰 학교는 아예 전담 변호사를 고용하고 학교 일에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률가의 도움으로 학내 분쟁과 갈등이 감소 됐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학교는 가르치는 곳입니다. 일과를 교육적 시각에서 교육적 방법으로 처리하는 곳입니다. ‘문제 학생’을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법치나 정치가 아니라 교육과 덕치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권이 회복되고 교육자가 학교와 교육의 중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도 올바른 지도를 받고 인재로 성장하게 되겠지요.

    ─ 학부모 사이에서는 공교육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여론도 많습니다. 추락한 대한민국 교권과 공교육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근본적인 해결책은 ‘학생이 성공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교육’을 시행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학교를 업그레이드하고 교과과정을 손본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완전히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설계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우리나라의 입시정책과 학위 독점 체제를 바꿔야 합니다. 산업체 교육과 사교육으로도 정규 학위를 받을 수 있는 멀티트랙과 상호호환성을 구축해, 교육 파편화와 입시 병목현상을 없애야 합니다. 또한, 규제를 대폭 해제해서 해외 조기유학과 국제학교에 가야만 접할 수 있었던 글로벌 수준의 다양한 교육이 국내 일반 학교에서도 허용돼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학부모의 사고방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정답 있는 문제풀이 시험 점수로 대학 입시를 결정짓는 방식이 가장 공평하다는 믿음부터 버려야 합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공평함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죽은 듯이 앉아서 공부하고, 시키는 일을 시키는 대로 잘하는 아이가 성공한다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부모님 세대의 환상일 뿐입니다. 어른들이 먼저 이러한 집단 초감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아이들의 현실에 맞춰야 제대로 된 해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 삼성 열정락서 강연 모습.
  • ─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올바른 훈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시선도 있죠. 

    우리는 어릴 때 훈육으로 자제하고 절제하고 순종하도록 배웠습니다. 그래야 대식구가 나눠 먹을 게 있었고, 학생이 현재보다 월등히 많은 교실에서의 교육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사랑의 매’가 동원되기도 했어요. 그러나 매를 맞아본 사람은 압니다. 매에는 사랑이 없다는 것을요. 그 당시 훈육 방식은 너무 억압적이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방식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억압적 방식은 학대로 인식되고 심지어 고발의 대상이 됐습니다. 훈육은 시키는 것을 시키는 대로 하게 하는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자신과 조율하고 타인과 조율하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역량을 가르치는 일이 돼야 합니다. 

    훈육 없이는 교육이 가능하지 않고, 교육 없는 훈육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 집에서 충분한 훈육을 받아야 학교에서 좋은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학교에서의 훈육(생활지도)이 충분히 동반돼야 합니다. 교육과 훈육에서 교사와 학부모는 서로 한마음으로, 한 편이 돼야 할 것입니다.

    ─ 교사가 지나친 행정업무에 시달리고, 이로 인해 수업에 차질이 생기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교사가 지나친 행정업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니라 통계로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OECD 국가와 비교해보면, 한국 교사는 좀 더 많은 학생을 가르치고, 좀 더 적은 시간을 교실 수업에 사용합니다. 그 대신 좀 더 많은 시간을 행정업무에 할애하고 있어요. 미국의 경우, 행정직원 대 교사 비율이 한국의 2배입니다. 즉, 한국은 행정업무를 도와주는 직원이 미국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저출생으로 학생 수가 급감하는 요즘이 이 취약한 상황을 반전시킬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교육예산을 허울 좋은 행사나 시설 고급화에 낭비하지 않고, 그 대신 행정직원 수를 늘려서 교사가 본업에 좀 더 치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 교권침해가 불거지면서 이탈하는 초임교사들이 늘어나고, 교대에 지원하지 않겠다는 학생도 많은데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국은 대다수 OECD 국가와 비교해 교사의 평균 역량이 전체 대졸의 평균 역량보다 한참 우수합니다. 교육자의 역량이 국민의 평균치보다 훨씬 높으니, 더 나은 다음 세대가 양성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죠. 교대가 기피 대상이 됐고, 입학 경쟁률이 조금씩 낮아지는 것은 심히 걱정되는 추세입니다. 이는 교권침해 문제만이 아니라, 저출산 문제 등 거시적인 사회경제적 이슈와 맞물려 있는 현상입니다.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예요.

    한국 교사들은 열심히 교과과정을 짜고 하루하루 수업안을 빈틈없이 준비합니다. 학생들도 온종일 학교에서 꼼짝 않고 공부하고, 학원에 가서도 또 열심히 공부합니다. 겉보기에는 모두가 열심히 하고 있지만, 학생들은 학교를 떠나고 교사들은 교단을 떠나고 있습니다. 학업중단 청소년 수가 급증하고, 교육자가 된 것을 후회하는 교사의 비율이 OECD 국가 중 최고가 됐습니다. 이제 우리의 비전에서 ‘더 열심히’가 아니고 뭔가 다르게 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 공교육의 현 실정에서 교사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저는 감정양호실이 있는 학교를 상상해 봅니다. 신체에 상처 났을 때 찾는 보건실처럼 마음에 상처가 났을 때 찾는 곳이죠. 마치 시민 모두가 심폐소생술을 비롯한 응급처치법을 배우면 좋듯이, 감정응급처치법(감정양호) 또한 교직원 모두가 지니면 좋은 기술입니다. 감정양호를 위한 감정응급처치법은 모두가 비교적 짧은 교육 시간으로 능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모든 교직원이 함께 학생의 몸·마음·정신 건강을 지키는 수호자로 힘을 합치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정양호실, 보건실, 상담실, 도서관이 학교 구석진 곳에 각각 흩어져 있는 게 아니라 복합센터로 교정 중심에 자리 잡은 학교를 상상해봅니다. 감정양호는 학생의 정서 지능 계발에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핵심은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이해하고,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 아프리카 총장협의회 기조강연.
  • ─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 모두가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각자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마음을 모으려면 역할의 차이를 구분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역할을 분별하면 뭔가 좀 명료해지고, 서로 책임을 분담해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아이의 성공을 위한 팀워크가 가능할 것 같아 보이겠지요. 그러나 정반대의 결과를 도출합니다.

    각자의 역할을 구분하면 할수록 책임 영역에 선을 긋고, 결과에 대해서 서로 책임을 추궁하고 탓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학부모는 교사의 마음으로 집에서 자녀를 훈육하고, 교사는 부모의 마음으로 학교에서 학생을 교육하면 좋겠습니다. 이럴 때 마음이 모이고, 서로 아이를 위한 한 편이 됩니다.

    ─ 참된 가르침, 참된 스승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스승’이라는 단어는 묘한 단어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나는 교사다”라고 말할 수 있어도 “나는 스승이다”라는 말은 할 수 없습니다. 스승은 오로지 학생들 입으로만 불립니다. 그러면 스승이라고 불리기 위해서 어떤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까요.

    요즘 세상에서는 학생들이 필요한 지식은 이미 실시간으로 아무 때나 어디서라도 접할 수 있습니다. 이제 지식 전달은 굳이 교사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지식 전달에서 해방되고 지혜 전달에 치중하는 교육자를 그려봅니다. 삯을 위한 교육만이 아니라, 삶을 위한 인생 교육을 적극적으로 실시할 때 스승님이라고 불릴 것입니다.

    스승은 세상에 기여하고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가치관을 깨닫게 해주는 어른입니다. 이러한 사회·정서적 역량이야말로 오로지 인간만이 전해 줄 수 있는 내용입니다.

    ─ 끝으로, 학교 현장을 지키는 후배 교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응원의 말 부탁합니다.

    우리 포기하지 말아요. 이탈하지 마세요. 우리 서로 지지해 주면서 계속 교육자로 살아갑시다. 어차피 우리가 이미 택한 스승의 길은 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니까요. 교직은 특별하고 숭고한 일입니다. 교직에 숭고한 의미를 선택하고 담아낼 용기를 가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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