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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 학교 도입을 앞둔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AIDT) 지위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하향하는 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다. 현장 도입만을 앞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AIDT의 지위가 격하되면서 교육계에서는 혼란이 이는 상황이다.
지난 17일 법안심사소위에서 통과된 이번 안건은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다. 해당 법안에서는 AIDT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며, AIDT를 교육자료로 선정할 땐 학교장이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이번 안건은 꾸준히 제기돼 왔던 AIDT의 우려 사항들이 반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 의원 역시 법안 제안 이유로 “AIDT를 둘러싸고 학생의 문해력 하락, 스마트 기기 중독,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 막대한 예산 투입 등 여러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도입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명시했다.
◇ 교육부 “AIDT 교육자료 격하, 교육 격차 심화시킬 것”
교육부는 교육 격차 해소와 교육 약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AIDT의 교과서 지위는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역시 지난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교육 평등의 측면에서도 AI 디지털교과서가 참고서로 격하돼 이를 도입하는 학교와 안 하는 학교가 갈리면, 특히 어려운 지역의 아이들일수록 새로운 기술을 통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할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진다”고 강조했다.
교육자료는 일종의 참고 자료로, 교과서는 모든 학교에서 채택해야 하지만 교육자료는 학교장 재량에 따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AIDT의 사용 여부가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달라지면, 교과서로서 제공되는 무상 교육의 혜택이 사라지게 된다. 이에 따라 교육청 무상·의무교육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AIDT 사용료가 상승하게 된다. 따라서 도입이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이 되면 비용 부담을 이유로 채택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예산과 기술적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 학교들은 AIDT를 활용하고 싶어도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결국, 자원이 풍부한 학교의 학생들은 최신 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반면, 그렇지 않은 환경의 학생들은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불평등한 교육 환경을 고착화시킬 우려가 높아진다.
◇ 전국 교원대 총장협의회 “AIDT의 교육자료 법제화 유보해야”
교육계에서도 AIDT의 교육자료 법제화 유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전국 10개 교대와 한국교원대, 제주대로 구성된 전국 교원양성대학교 총장협의회는 지난 20일 입장문을 내고 AIDT를 교육자료로 격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잠시 유보하라고 촉구했다.
협의회 측은 “교과서 검정을 마치고 새 학기부터 막 적용하려는 시점에 관련 법령 개정이 추진되면서 그 실행이 불투명해졌다”고 우려하며 “국회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잠시 유보하고, 정부는 내년도 전면 실시 계획을 수정·보완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협의회 측은 “AIDT의 경우에도 추진 과정에 일부 우려가 있지만, 장기적 방향 면에서, 그동안 투입한 자원과 성과 면에서 그 당위성과 필요성을 부정하기 어렵다”면서 “당장 내년의 투입을 앞두고 성급하게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해 불필요한 비용을 늘리기보다 적용 시기와 범위, 방법 등을 조절하면서 검증과 숙의를 통해 연착륙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강조했다.
협의회는 국회가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잠시 유보하고, 정부 역시 내년도 전면 실시 계획을 수정·보완하며, 현장 학교와 양성 대학, 교과서 개발사는 1년 정도의 검증·준비 기간에 최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양해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AIDT 발행사 “손해 걱정에 난감해”
AIDT 개발에 큰 비용을 쏟은 발행사들 역시 난감한 상황이다. AIDT의 지위가 교과자료로 격하되면서 현장에서 실제 사용률이 현저하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AIDT 개발에 큰 비용을 쏟은 업체들의 손해에 따른 법적 분쟁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 AIDT 발행사 관계자는 “일반 교과서보다 수십 배를 들여 개발했는데, 교과서 지위를 상실한다면 손실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라면서 “개발을 전면 포기하거나, 일부는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26일 한국교과서협회와 AIDT 발행 예정사들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야당의 개정안에 반대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당시 이들은 “AIDT가 교과용 도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전환될 경우, 수요 예측이나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 된다”라며 “따라서 AIDT의 개발에 따른 손실을 발행사들이 감당할 수 없으며, 이런 연유로 AIDT 개발을 전면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이처럼 AIDT 도입을 두달 앞둔 시점에서 법안 개정은 오히려 교육계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AIDT에 대한 법안 개정보다는 학생들의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 AI 교과서 교육자료 격하, 학력 격차 더 커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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