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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인 에누마 대표 “우리의 교육이 더 많은 아이에게 닿길 바랍니다”(인터뷰)
입력 2024.11.22 13:37
  • 에누마 홈페이지 캡처.
  • 미술대학 졸업 후 게임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12년 전, 남편과 함께 오른 미국 유학 생활 중, 그곳에서 태어난 첫 아이가 장애를 갖게 될 수도 있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아이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서 긴 시간을 보내던 그는,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시장의 열악함을 깨닫게 된다. 나날이 발전하는 게임 산업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충격을 받고 직접 장애 아이들을 위한 학습 앱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에듀테크 기업 ‘에누마’의 수장, 이수인 대표의 이야기다. 이렇게 탄생한 기초수학 앱 ‘토도수학’은 출시 후, 20개국 애플 앱스토어 교육 부문에서 다운로드 1위를 기록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이 대표는 이후 토도영어, 토도한글 등을 잇달아 선보이며 느린학습자를 위한 교육 앱 ‘토토 시리즈’를 완성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자신의 아이와 전 세계 다양한 교육 취약계층 아이들을 위한 교육 시장을 개척해 나간 이수인 대표. 지난 9월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우리는 모두 다르게 배운다’를 출간하고, 다양한 환경 속 모든 아이가 학습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따스한 마음을 전했다.

  • 이수인 에누마 대표.
  • ─ 대표로 이끄는 ‘에누마’는 어떤 기업인가요?

    에누마는 기초학력에 중심을 둔 디지털 학습 제품을 만드는 에듀테크 기업입니다. ‘학습이 어려운 아이들도 혼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는 미션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소셜 벤처이기도 해요. 미국에서 처음 시작해 현재는 한국,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에서 1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주요 제품으로는 앱스토어의 기초교육 베스트셀러인 토도수학, 토도영어, 토도한글이 있고, 개발도상국의 기초교육을 위한 에누마 스쿨이 있어요. 최근에는 교과서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한국의 학교에서 사용될 AI 디지털 교과서도 제작하고 있습니다. 

  • 에누마 홈페이지 캡처.
  • ─ 토도수학과 더불어 토도 시리즈의 탄생 배경과 어떤 학습 프로그램인지 소개 부탁합니다.

    토도수학은 당시에 막 디지털이 도입되던 미국의 학교에서 남들보다 느린 아이들이 기초 수학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게임 기반의 기초 수학 학습 앱입니다. ‘토도’ 는 스페인어로 ‘모두’라는 뜻으로, 학습이 어려운 아이들까지도 재미있게 공부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어요.

    토도 앱은 초기에 아시아에서 학령기 전 아이들의 선행 학습용으로 큰 인기를 끌었어요. 전 세계에서 1300만 건이 넘는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오랫동안 앱스토어의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영어유치원을 다니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쉽게 영어의 기초를 배울 수 있도록 돕는 ‘토도영어’, 학교에 들어가서야 한글을 배우게 되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과 느린학습자를 생각하면서 만든 ‘토도한글’ 등을 출시했고, 이들 모두 기초학습 분야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어요. 특히, 토도수학은 중국에서, 토도영어는 일본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 느린학습자를 위한 교육 시장을 선두하고 계시군요. 초기에는 이들의 구매를 유도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학습이 어려운 아이들을 포함해, 모든 아이가 각자의 속도와 역량에 맞춰 재밌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개인의 차이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제약이 없고 사용하기 편리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개념인데요. 에누마 제품들에도 교육의 유니버설 디자인을 위한 법칙들이 충실히 사용됐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학습이 어려운 아이들의 부모는 가정환경이나 아이의 학업 성과에 대한 낮은 기대 등 다양한 요소 때문에 이런 제품을 잘 구매하지는 않는 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들을 위해 제품을 구매하는 역할은 공공영역이 담당하고 있어요. 많은 초등학교의 특수학급이나 기초교육 지원이 필요한 교실이 저희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으며, 비영리재단이나 지방자치단체들 또한 취약계층 지원 프로그램의 일부로 저희 제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파키스탄 현지 학교에서의 디지털 학습 프로젝트(위)와 에누마스쿨을 활용한 수업에 참여 중인 파나마 공립초등학교 학생들(아래)./에누마 제공.
  • ─ 느린학습자들의 토도 시리즈에 대한 실 사용 평은 어땠나요?

    “수업 시간에 말을 한마디도 안 하던 아이가 있었는데, 토도한글 따라 읽기 연습을 하면서 입을 열더니 한 학기가 지나자 수다쟁이가 됐다”는 어떤 교사의 체험담을 전해 들은 적이 있어요. 

    모국어, 영어, 수학을 함께 제공하는 ‘에누마 스쿨’이라는 기초학력 솔루션을 개발도상국에 배포하고 있는데요, 많은 학교에서 ‘장애가 있는 아이가 이 앱으로 공부를 익히는 것을 발견해서 교사가 감동을 받았다’는 후기가 들려오곤 합니다.

    또한, 토도수학은 처음 나온 2014년부터 미국의 초등학교, 특히 이주 배경 아이들이 많은 학급과 특수학교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최근에는 한국의 특수학교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토도한글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코로나 기간에 이주 배경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에서 사용되며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 매우 높은 만족도를 기록했는데요, 최근에는 특수교육환경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느린학습자를 위한 좋은 학습 앱이 워낙 드물다 보니 토도 시리즈는 특수교육 분야에서는 비교할 제품이 없는 제품입니다. 아이들이 학습을 즐겁게 진행하고, 교사들이 사용하기도 편하니까요.

  • 에누마 토도수학 학교용 서비스를 활용 중인 교실./에누마 제공.
  • ─ 에듀테크 선두 기업의 대표로서, 에듀테크가 교육 취약계층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요?

    학교에서는 모든 아이가 같은 속도로 공부하게 되는데요. 남들이 배우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조금씩 뒤처지다가, 결국 교사가 가르치는 내용을 전혀 배우지 못하는 수준에 다다르게 됩니다. 한 반에 20명이 넘게 앉아 있는 교실에서는 교사가 아이 개개인을 신경 쓰는 데 한계가 있고, 이러한 상황은 책만으로 크게 해결되지 않아요.

    에듀테크는 텍스트뿐 아니라 동영상과 소리 등을 다양하게 포함해요. 디지털 미디어, 인터랙션 학습, 인공지능을 통한 학습 분석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각자의 속도에 맞는 맞춤형 학습을 제공함으로써 이런 아이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학교 현장에는 실패를 경험하는 수많은 아이가 있어요. 특수교육을 받을 만큼 뚜렷한 장애가 있는 게 아니어도, 뇌의 정보처리 방식이 다르거나, 이주 배경으로 언어 장벽이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가정 사정으로 학습에 집중하기 어려운 아이들도 존재하죠.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아예 교실 시스템 전체가 공부할 사정이 안 되는 나라도 있습니다.

    전 세계가 다 똑같은 것을 배우는 학교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지만, 교사의 역량이나 학교의 환경이 너무 다른 만큼,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는데 에듀테크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 이수인 에누마 대표.
  • ─ 에누마는 실리콘밸리에서 처음 시작됐죠. 타지에서 외국인, 동양 여성으로서 창업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는 너무나 운이 좋게도 실리콘밸리의 포용적인 문화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저에게 투자를 처음 해준 사람은 인도계 이민자 출신의 투자자였는데요. 장애가 있는 사람을 위한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을 연구했던 경력이 있고, 두 아이의 아버지였어요. 그러다 보니 외국인이나 여성 창업자에 대한 편견이 별로 없었고, 장애가 있는 아이를 위한 기술이 일반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저보다 더 강하게 믿으면서 창업을 권해주었어요. 

    제가 일반적인 ‘성공적인 창업자’ 상과는 너무 다르고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진정성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훌륭한 제품을 만들자는 제 마음이 통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덕분에 좋은 동료들을 설득해서 함께할 수 있었죠. 

    그렇게 제품이 만들어지고 앱스토어 1위를 하자, 다음부터는 아무도 CEO가 이주민이거나 여성이라는 점에 트집을 잡지 않았어요.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같이 어려운 세계 대회에서 성과를 낸 후에는 한국의 임팩트 투자자들이 먼저 알아보고 투자를 진행해 주기도 했어요.

  • 에누마코리아 단체 사진./에누마 제공.
  • ─ 게임 회사에서의 근무 경험이 아동 학습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어떻게 도움이 됐나요?

    어린아이의 학습을 위한 에듀테크 제품은 목적이 학습일 뿐, 내부의 형식이나 시스템은 디지털로 상호작용하는 콘텐츠 서비스인데요, 이 분야에서 가장 발전된 제품들이 게임입니다.

    학습 활동을 재미있게 만들고, 더 많이 하게 만들고, 더 효과적으로 하게 만드는 많은 기법을 게임에서 빌려왔어요. 에누마에는 유명 게임 회사에서 성공적인 제품을 만든 경력을 가진 직원들이 다수 함께하고 있습니다. 게임 회사에서 보낸 시간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보편적으로 아이들이 재미있게 느끼는 학습 제품을 만들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해요. 

    ─ 현재 교육업계는 AI와 에듀테크 돌풍을 맞았습니다. 타 에듀테크 기업과 다른, 에누마만의 교육적 차별점은 무엇일까요?

    어떤 기술이 도입되든 기존의 방식으로는 부족한 부분, 기존에 가르치던 방식으로는 학습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집중하려고 합니다.

    저는 기존 방식으로 이미 잘 배우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AI와 에듀테크가 해줄 수 있는 역할이 비교적 제한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많은 교육 기업이 이미 공부를 잘하고 있는 아이들에 지나치게 치중해 있는 것 같습니다. 가르치고 싶은 아이들에 대한 방향성이 다른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에누마 토도한글 학교용 서비스를 활용한 수업 모습./에누마 제공.
  • ─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앞두고 아직도 찬반 논란이 거센데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에누마도 디지털교과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미국은 이미 2012년부터 학교의 디지털화가 시작돼 코로나19 팬데믹 때에 끝났고, AI 시대를 맞아 대부분 나라가 디지털 교육 정책을 개선하거나 새로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저는 한국이 교육격차가 매우 크고 디지털의 부정적 영향이 심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 디지털 교육의 필요성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계신 분들이 과거의 실패 사례나 현재의 사교육용 제품을 보고 디지털 교육을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디지털 제품과 서비스가 AI를 합쳐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현재 학교의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잘 메꿀 수 있을지 희망을 가지고 상상해 보면 어떨까요.

    좋은 디지털 교과서를 통해 학습 격차를 줄이고, 사교육에 의존하는 교육의 방향을 공교육 중심으로 개선하며, 아이들이 더 나은 디지털 문해력을 갖추고 AI 시대에 맞는 교육으로 바뀌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이수인 대표가 생각하는 좋은 교육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교육의 다양한 정의 중에 ‘아이를 사회 안에서 기능할 수 있는 독립된 성인으로 길러내는 것’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요, 사실 기존의 교육시스템은 공부를 잘하는 순으로 줄을 세워서 적절한 직업으로 사람들을 분배하는 역할을 했고, 그렇게 적합한 직업에서 돈을 벌어서 사회에 기여했을 텐데요.

    사회의 시스템이 변화하고, 직업이 사라지고, 독립된 성인에게 필요한 자질이 기존의 지적 능력에서 변화에 대처하는 역량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바뀌더라도 교육의 본질은 바뀌지 않겠지요. 우리가 만들고 싶은 멋진 미래 사회를 상상하고, 그 안에서 어떤 기능이 필요해질지 생각하고, 교육을 제공하는 사람들부터 빠르게 변화에 대처해야 합니다. 미래의 세대가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은 교육이지 않을까요.

  • 에누마 토도수학 학교용 서비스를 활용해 수업 중인 모습./에누마 제공.
  • ─ 앞으로 에누마가 나아갈 길과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에누마는 다양한 아이들이 저마다 최대한의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디지털 교육제품을 만듭니다. UN의 ‘지속가능 개발목표’ 4번, ‘모든 사람에게 양질의 교육을’이라는 목표는 너무나 선명해 보였지만, 지금 이 시대는 양질의 교육이 무엇인지조차 변화하고 있어요.

    우리는 자기가 읽은 것이 광고인지 피싱인지 가짜뉴스인지도 구분이 안 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본 것을 본 그대로 무턱대고 믿으면 큰일이 나는 세상이죠. 거꾸로 말하면 자기가 읽은 것을 의심하고 평가하는 기술이, 읽는 기술만큼 중요해진 시대예요. 

    에누마가 시대와 함께 변화하면서, 더 많은 아이가 미래에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기를, 계속 열심히 앞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이수인이라는 한 사람의 꿈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개인으로서는 이전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직업을 갖고, 이루리라고 생각지 않았던 많은 것을 해냈습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의 부모로서도, 게임을 만들던 사람으로서도, 회사의 리더로서도, 매일 충실하게 살아왔어요. 그저 내일도 열심히 일할 수 있기를 바라고, 우리의 교육이 더 많은 아이에게 닿고, 그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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