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주 교수 “과거의 경험을 세심히 들여다보세요, 그곳에 정답이 있습니다” (인터뷰)
입력 2024.10.11 16:47
  • 강연 중인 이헌주 교수의 모습./본인 제공.
  • ‘진로’. 삶을 살아가면서 이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자가 있을까? 우리는 말을 하고 생각을 하게 되는 시점부터 진로를 고민하게 된다. 유치원에서는 장래희망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보고, 빠르면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 전공과 직업에 대한 초석을 다지기도 한다. 진학, 취업, 직업, 진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 이후에도 이들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다. 우리는 한평생 끊임없이 진로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연세대학교 연구교수이자 상담가로 활동하는 이헌주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좋아하고 잘해왔던 것을 살려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판타지, 고전, 현대소설, 자서전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책을 읽으며 자란 이 교수는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특히 어떤 한 사람의 삶이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세세하게 듣는 것을 좋아했고, 이를 경청하는 능력이 있었다. 

    최근에는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일’로 만드는 법칙>을 출간하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 행복한 삶을 완성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현실에 지쳐 꿈을 잃어버린 내담자가 다시 ‘나’를 찾고 ‘꿈’을 찾아가는 과정에 함께 하며 행복과 보람을 느낀다는 이헌주 교수. 그는 지금도 수많은 내담자를 상담하며 그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일’로 만드는 법칙./갈매나무 제공.
  • ─ 최근 출간한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일’로 만드는 법칙>은 어떤 책인가요?

    현대 사회는 많은 자극과 변화들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사회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조급하게 움직입니다. 많은 스케줄, 해야 하는 일, 수많은 미팅, 다중적인 역할 등이 우리를 덮치고, 외부에서 요구하는 것에 발맞추다 보면, 우리는 자칫 스스로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일’로 만드는 법칙>은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삶의 방향성, 즉 자신이 가진 고유한 나침반을 발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나침반은 두 가지 기둥으로 돼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책에서 어떻게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잘하는 일로 만들 수 있는지를 다뤘습니다. 

    우리가 타인을 알아갈 때도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자신을 알아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책엔 자신을 알아갈 수 있는 작은 워크숍도 준비돼 있는데요. 여러 번 이 책에 있는 내용에 스스로 답변을 해보면서 자신의 나침반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이헌주 연세대학교 연구교수.
  • ─ 책에서 말하는 ‘계획된 우연’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언뜻 보면 계획과 우연은 모순되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우연이 모여서 나의 길을 만들고 그것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 갑니다. 진로상담 분야의 대가 크롬볼츠는 이를 ‘계획된 우연’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계획된 우연은 회고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 와서 내 삶을 돌아보니 작은 우연이 모여 지금의 나가 실현됐다는 것이죠.

    그러나 크롬볼츠는 계획된 우연이 꼭 과거를 회상할 때만 쓰이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계획된 우연을 촉진하고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중 하나의 변인이 바로 ‘호기심’입니다. 삶에 대해 열려 있는 자세, 좀 더 개방적이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려는 용기가 바로 그것이죠.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 가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합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을 만나죠. 우리의 역량을 계발하며 그 기회를 넓혀 나갈 때, ‘내가 바라는 미래의 나’를 이룰 우연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죠.

    ─ 특히 ‘티핑 포인트’와 ‘터닝 포인트’에 대해서도 강조했는데요.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일’ 중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물어보곤 합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것’은 보통 영화, 독서, 게임, 운동과 같은 놀이와 취미활동인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이는 업의 출현과는 거리가 다소 멉니다. 좋아하는 것은 내 흥미가 숨어있는 잠재태입니다. 업이 출현하려면 ‘잘하는 일’로 변모해야 합니다.

    물은 99도까지 끓지 않다가 100도가 될 때 끓기 시작합니다. 액체가 기체가 되는 변곡점이 생기는 것인데요. 이것이 바로 ‘티핑 포인트’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연마할 때, 어느 임계점에 다가서면 그것은 정말로 잘하는 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업이 출현된다고 할 수 있겠죠. 티핑 포인트란, 도약하는 토대, 잠재태가 현실태로 바뀌는 경험인 것이죠.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에게 ‘터닝 포인트’가 생깁니다.

    작은 우연이 기회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회는 나에게 새로운 물결을 만듭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이 실제 그 업을 창출하는 수요에 맞춰 발휘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기 시작합니다. 이를 진로상담 용어로 ‘진로 계발’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진로 계발은 평생에 걸쳐 이뤄집니다. 

  • 강연 중인 이헌주 교수의 모습.
  • ─ 지금 진로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할 사람, 바로 청소년일 겁니다.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청소년은 아동도 아니요, 아직 성인도 아닙니다. 소위 애매한 나이죠. 그래서 독립을 하고 싶다고 하면 “이제부터 학비고 용돈이고 다 네가 벌어 쓰라”라는 말이 들려옵니다. 사실 청소년들은 심리적 독립을 말하는 것인데 부모는 경제적 독립으로 응대하는 것이죠. 즉 이제는 더 이상 아동이 아님에도 여전히 타율성이 그 삶을 지배합니다.

    저는 청소년을 갓 벗어난 대학 초년생에게 지금 전공을 선택한 이유를 물어볼 때가 많습니다. 그럼 너무나 놀랍게도 성적에 맞춰서,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가라고 해서, 여기가 현실적으로 취업이 잘 된다고 해서 오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전공은 생각보다 내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진로를 선택해 좋은 직업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평생 후회하는 성인을 많이 보곤 합니다.

    진로는 삶의 길입니다. 그리고 삶의 길은 어디까지나 나의 고유성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많은 청소년이 나를 이해하는데, 좀 더 주의와 숙고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그렇다면, 자녀의 적성과 진로 탐색에 있어 부모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아이만큼 그 아이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입니다. 부모에게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가장 주의 깊게 관찰한 대상이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죠. 대부분 부모는 아이가 행복하고 좀 더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바랄 것입니다. 

    행복과 성공이라는 두 가지 교집합에 진로는 매우 강한 영향을 미칩니다. 아이가 어리다면 아이가 무엇을 흥미 있게 생각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을 함께 하며 대화를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가 실제로 잘하는 역량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것이 좋아하는 것 속에서 나타나는 ‘잘할 가능성’입니다. 

    세상의 기준에 따라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보다는,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이끌어주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높습니다. 행복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전까지 괜찮았던 업이 앞으로도 계속 좋을 거라는 법은 없습니다. 시대는 더욱 빠르게 변합니다. 지금까지는 부모가 더 많은 삶을 살았지만, 앞으로는 아이가 더 많은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아이가 좀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 주셨으면 합니다. 부모는 아이의 역량을 주의 깊게 포착하고 좋은 협력자로서 아이의 재능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 강의 진행 중인 이헌주 교수.
  • ─ 아이, 어른 상관없이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피자 전단지를 아무리 보고 분석한다고 하더라도, 심지어 그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피자를 실제로 먹는 것과 커다란 괴리율이 있습니다. 피자에 대해 논하는 것과 피자를 정말로 맛보는 건 다른 세계라고 할 수 있겠죠.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까닭은 우리가 현재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쟁취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찾아 그것을 경험하는 그 자체가 행복입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의 우리는 많은 것을 경험하기엔 지나치게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정답은 과거에 있습니다. 과거의 어떤 경험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것에서 우리는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냈다면, 이제부터는 그 찾은 것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경험하는 만큼 내가 무엇을 열망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미취업 청년, 청년 니트족 또한 늘어나는 추세인데요.

    집 안에만 있는 아이를 볼 때 우리는 태평성대를 살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외부로는 편안하게 사는 것처럼 보여도 내면은 가장 불안하고 괴로운 상황일 것입니다. 만약 내가 그러하다면 당장 취업을 하려고 해도 그걸 할만한 내적인 힘이 부족할 거예요.

    일단 이불 밖으로 벗어나 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나가보세요.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 머물러 보고,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해보는 것입니다. 당장의 취업보다는 좋아하는 것의 빈도를 넓혀나가는 것이 나의 자아존중감을 높입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가끔 넘어집니다. 그러나 똑같이 넘어져도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어날 때 필요한 것은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 매너리즘이나 번아웃에 빠지는 직장인들은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보통 조급한 행동은 대부분 후회를 낳습니다. 번아웃이 오려고 할 땐 다양한 신호가 있는데요. 잠이 잘 오지 않고 심장이 두근거려 과호흡이 올 것 같습니다. 생각은 걱정으로 꽉 들어차 있고, 갑자기 예민해지거나 침울해지기도 합니다. 무엇인가가 벅차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란 무력감과 좌절감이 스며듭니다.

    이런 신호가 조금씩 내 삶에 침투하기 시작한다면, 일단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삶은 너른 산책이기에 100m 달리기처럼 한걸음에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나를 위한 작은 시간과 공간이 있나요? 그 시공간에서 단 30분이라도 나의 방향성과 의미, 가치를 찾기 위한 작은 리츄얼이 있는지 반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러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면, 자기 전과 일어난 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지?” 

  • 강연 중인 이헌주 교수의 모습.
  • ─ 요즘 사회는 ‘평생직장’이라는 말과는 다소 멀어 보입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원래 진로와 직업은 다릅니다. 진로란 삶의 길입니다. 그리고 직업은 그 길에서 잠깐 입는 옷입니다. 이전까지는 이 옷을 입는 시간이 너무나 길어 진로와 직업을 등가 개념으로 여기기도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직업의 경계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격증이나 학위만 갖고 은퇴할 때까지 이곳을 다니다가 나중에 연금 받아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은 상당히 위험한 생각일지 모릅니다.

    많은 직업군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또 AI나 로봇 등에 의해 대체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꼭 위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직업군이 창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직업의 경계가 사라지고, 그 변화의 물결이 빨라진다는 것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나 역시 하나의 재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감춰져 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인이었다가 교수가 되고 또 작가가 되며, 유튜버가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커져 그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현저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만큼 세계에 대해 좀 더 열려 있어야 합니다.

    ─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전 여러 준비물을 준비합니다. 이처럼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면 내가 그것을 정말로 좋아하는지, 잘할 수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두려움을 이겨내려면 내가 할만하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 확신은 바로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잘하는 일로 변모하는 힘’입니다. 그 웅덩이에서 용기는 샘솟습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 때, 정말로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면 용기가 싹틉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정말로 잘하게 될 때, 우리는 더욱더 대담한 도전을 할 수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나’를 잃어버린 채 사는 청년들과 진로 탐색 앞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에게 응원의 말 부탁합니다. 

    잃어버렸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원래 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면 “내 인생에서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은 무엇일까?”를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산에 다니다 보면 도토리가 보입니다. 참으로 아담하고 작습니다. 그러나 작은 도토리는 아직 실현되기 전인 상태입니다. 그것이 현실이 됐을 때 아름드리 상수리나무로 우뚝 서게 됩니다. 작은 행동과 선택이 모여 거대한 대양으로 향하는 파도를 만듭니다. 그 물결 속에서 여러분도 커다란 상수리나무를 보기 바랍니다. 

    시험을 앞둔 분들에게 삶은 전투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청소년에게 삶은 두려운 곳일 수 있습니다. 당장 진로를 찾는다는 것이 배부른 고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이것은 한때이고, 삶은 평생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전반전이 5분밖에 안 지났는데 한 골을 먹혔다면, 절망스럽기 짝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경기는 아직 진행 중이고, 모든 것은 지나 봐야 압니다. 내가 오늘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내 미래는 달라질 것입니다. 

    찬란하게 다가올 여러분의 미래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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