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정신과 전문의’ 정우열 원장이 말하는 ‘공부정서’의 의미
입력 2024.07.25 16:34
  • 정우열 ‘생각과느낌 몸마음 클리닉’ 원장.
  • 어떻게 하면 자녀를 공부 잘하는 아이로 성장시킬 수 있을까? 자녀의 학업 성취도는 대부분 부모가 하는 가장 흔한 고민이자, 난제이다. 정신의학과 전문의 정우열 원장은 그 해답이 ‘공부정서’에 있다고 말한다. 

    정우열 원장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한민국 입시 1번지로 꼽히는 대치동에서 학생과 학부모를 만나왔다. 그가 수많은 상담을 통해 얻은 해답, ‘공부정서’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정 원장과 공부정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다음은 정우열 원장과의 문답. 

    ─ 공부정서, 조금 생소한데요.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공부정서라는 게 정확한 의미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닙니다. 정서는 사람이 특정 상황에서 주로 느끼게 되는 감정을 말하죠. 상황마다 각각의 정서가 존재하므로, 공부정서는 공부와 관련된 상황을 의미합니다. 즉, 학원을 가거나, 숙제하거나, 공부하는 등 공부와 관련한 모든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의 흐름을 뜻해요.”

    ─ 공부에 있어서 정서가 왜 중요한가요?

    “정서는 행동과 도전에 영향을 미쳐요. 특히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부에 대한 정서, 공부정서가 매우 중요하죠. 공부정서가 올바르게 형성돼 있지 않더라도 성적은 좋을 수 있어요. 반대로 공부정서가 올바르게 형성돼 있더라도 성적이 나쁠 수 있죠. 

    공부정서는 성적보다도 ‘회복탄력성’과 밀접합니다. 공부정서가 올바르게 형성되지 못한 아이의 경우, 대다수가 성적을 내지 못하거나 시험을 잘 보지 못하면 ‘인생이 망한다’라는 전제를 마음속에 깔고 있어요.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거나, 공부가 잘 안되는 상황은 학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경험입니다. 하지만 공부정서가 잘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감정조절이 되지 않는 거죠. 이로 인해 멘탈이 무너지고, 오랜 시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게다가 어린 시절 형성된 공부정서는 청소년, 성인이 되어서까지 영향을 미쳐요. 삶을 살아가다 보면 자기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예를 들면, 입사 시험에서 탈락 수도 있고, 자격증 시험에 떨어질 수도 있죠. 일반적으로는 실패를 겪더라도 ‘다시 준비해서 도전하면 돼’라고 금세 정서를 회복합니다. 하지만 공부정서에 문제가 있다면 삶에서 좌절을 경험할 때, 정서 회복에 있어 큰 어려움을 겪기 마련입니다.”

    ─ 올바른 공부정서는 어떻게 형성하나요?

    “공부정서는 아이에게 ‘공부’라는 행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부터 형성됩니다. 보통 한글이나 숫자를 배우는 미취학 아동 때 시작되죠. 이때 많은 부모가 한글, 숫자 등을 깨우치는 속도나 이해도를 기준으로 아이의 잠재력을 테스트하려 듭니다. 문제는 이러한 마음이 부모에게 긴장감을 주고, 자신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아이가 학습에 잘 따라오지 못한다고 인지 왜곡을 불러일으키죠. 기다려주지 못하는 부모의 초조한 마음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수치심과 공포심을 계속해서 반복해 겪게 되고, 공부정서가 마치 트라우마처럼 형성되기도 합니다.”

    ─ 아이가 어릴 때부터 공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겪지 않도록 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인가요?

    “많이들 그렇게 오해하세요. 제가 ‘아이에게 올바른 공부정서를 형성해 줘야 한다’라고 이야기하면, 많은 학부모님이 ‘어떻게 하면 좋은 정서, 긍정적인 정서를 아이에게 심어줄 수 있나요?’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많은 분이 실제로 아이에게 공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주지 않기 위해 억지로 감정을 배제하는 작업을 수행하죠. 아이가 공부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를 느낄 때, 부모는 아이로부터 해당 감정을 빠르게 없애고, 정서를 일부러 털어버리려고 해요. 반대로 아이가 잘하면 ‘희망’을 줍니다. 또 재미있게 공부를 가르치려 하고, 긍정적인 정서를 심어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정서는 긍정적인 감정만 넣어준다고 해서, 또 부정적인 경험만 쌓는다고 해서 특정 방향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저 다양한 감정 속에서 계속 경험하며 형성해가는 것이죠. 공부하다 보면 행복할 수도 있고, 좌절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또, 희열과 환희, 긴장이나 불안을 경험할 수도 있고요. 이 모든 것이 다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거예요. 긍정이냐, 부정이냐의 문제가 아니죠. 중요한 건 자연스러운 나의 마음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각 상황에 따른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처리하는 과정을 반복할수록 안정적인 정서가 형성됩니다.”

    ─ 올바른 공부정서를 만들어가는 것, 결코 쉽지 않네요. 

    “맞아요. 특히 공부정서는 부모에게서 아이로 대물림 되는 경우가 많아요. 공부정서라고 하면 보통 아이들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공부정서는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모두 존재합니다. 부모의 경우, 어린 시절 형성된 자신의 공부정서를 잊고 지내다가 아이가 성장해 공부를 시작하면서 공부정서가 발현되죠. 

    공부정서가 좋지 않은 아이를 살펴보면, 대체로 부모의 공부정서도 좋지 않습니다. 공부에 대한 부모의 불안한 정서는 마치 전염되듯 아이에게 이어지죠. 이는 아이들이 부모의 상처나 불안, 스트레스, 좌절, 열등, 긴장, 압박감 등 정서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부모의 공부정서가 좋지 않다면, 아이는 공부를 접하는 상황에서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부모의 불안한 모습을 마주하게 됩니다. 결국 아이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 공부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자율성이 훼손되는 감정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 역시 부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군요. 

    “대게 공부정서가 불안한 부모는 자기도 모르게 분위기를 발산해요. 따라서 아이 역시 공부와 관련된 활동을 할 때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없게 되죠. 이런 상황에서 아이는 ‘공부는 중요한 거구나. 공부를 못하거나, 성적이 나쁘면 매우 안 좋은 일이 벌어지는구나.’라고 압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더 최악의 상황은 공부와 관련된 활동에서 부모가 아이를 모질게 대하거나, 심지어 체벌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대다수의 부모 세대가 겪은 방식이죠.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겪었던 대로 아이를 대하는 부모가 많아요. 부모 세대는 구구단 못 외우면 벌을 선다거나, 받아쓰기를 틀리면 회초리 맞는 등 공부와 관련한 상황에서 빈번한 체벌을 경험했어요. 이 같은 가학적인 방식은 공포심과 수치심을 유발합니다. 공부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이러한 감정들을 경험하면서 공부정서는 망가지고, 무의식에 자리를 잡죠. 어른이 된 후에 잊고 지내다가도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면 트라우마처럼 올라옵니다. 결국, 부모가 자녀에게, 자녀가 성장해 또 다음 세대 자녀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 거죠.” 

    정우열 ‘생각과느낌 몸마음 클리닉’ 원장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11년째 대치동에서 소아청소년과 부모들을 상담해오고 있다. 25만 구독 유튜브 채널 ‘정신과의사정우열’과 ‘육아빠정우열’을 운영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감정 회복을 돕고 있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대국민토크쇼 안녕하세요〉, SBS 〈한밤의 TV연예〉,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EBS 〈자이언트 펭TV〉, JTBC 〈속사정쌀롱〉,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 수많은 방송에 출연했으며, 현재 다수의 기업과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활발히 강연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힘들어도 사람한테 너무 기대지 마세요』 『엄마들만 아는 세계』 『엄마니까 느끼는 감정』 『육아빠가 나서면 아이가 다르다』 『썸... 연애... 결혼』 등이 있다. 최근에는 『상위 1%의 비밀은 공부정서에 있습니다』를 출간했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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