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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초등학교 입학 무렵 한 학생을 처음 만났다. 그때는 글쓰기 개요 각 문단, 아니, 각 문장을 하나씩 도와줘야 글을 완성할 수 있는 학생이었다. 이제 곧 중학교 입학을 앞둔 이 학생은 칠판에 쓰인 글쓰기 개요만 보고 혼자서 척척 대부분 주제에 알맞은 내용으로 매주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있다.
한 문장 쓰는 것도 도움이 필요했던 학생이 스스로 600자가 넘는 한 편의 글을 만들어 내기까지 몇 년 동안의 꾸준한 연습이 도움이 됐을 것이다. 과연 이 학생이 오랜 기간 글쓰기를 연습하면서 의미 없는 반복으로 글을 채우지 않고, 의미를 지닌 훈련으로 채울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바로 매시간 끊임없이 ‘자기 점검’을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휘 공부를 할 때 “이 단어는 처음 들어 봐요.”라고 하거나, 글을 쓸 때 “2문단은 어떻게 써야 할지 알겠는데, 3문단은 잘 모르겠어요.” 등 자신의 학습적 위치를 계속 점검한다. 또는 “오늘은 좀 피곤해서 쉬엄쉬엄하는 중이에요.”와 같은 신체적 컨디션에 관한 점검도 종종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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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란희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도곡교육센터 지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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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자기 점검을 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메타인지를 높이고 있다는 것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미국 발달심리학자인 존 플라벨(John Flavell)이 1976년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알려진 메타인지(Meta Cognition)는 그리스어로 ‘~에 대하여’라는 뜻을 가진 ‘메타(meta)’와 ‘인지(cognition)’를 결합한 말로, ‘인지에 대한 인지’로 정의할 수 있다. 이는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모르는 것을 보완하기 위한 효율적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메타인지는 ‘상위 0.1%의 학습법’으로 일컬어지거나, ‘OECD 교육 2030’에 학생들이 갖춰야 하는 능력으로 제시되고 있는 만큼 교육계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앞서 말한 사례 학생은 스스로 작성하기 어려운 것 같은 문단에 대해서는 우선 곰곰이 사고한다. 한때는 교사로서 그 모습을 보고, 집중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오해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학생은 어서 연필을 움직여 쓰길 바라는 교사의 조급한 마음을 드러내 보일 때마다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라고 말하고는 한다. 그리고 몇 분 후, 어느덧 원고지 위에서는 연필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고 있다. 만약 혼자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교사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러면 교사는 생각을 발현할 수 있을 만한 질문을 던지거나, 관련된 예를 들어주며 방향을 슬쩍 제시한다. 그리고 학생은 그 방향을 향해 자신만의 개성으로 글을 한 줄 한 줄 이어 나간다. 이처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고, 모르는 것에 대한 해답을 고민하며 쓴 글은 말 그대로 뼈가 되고 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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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에는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지 못한 채 쓰는 학생도 있다. 뭔가 쉬운 것 같고, 또는 뭔가 어려운 것 같은 ‘느낌’은 있지만, 확실히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인지’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쓴 글은 ‘오늘은 재미있었다.’, 또는 ‘이번엔 좀 어려웠다.’와 같은 감정으로 새겨진다. 물론 이 정도로는 훈련 효과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더 확실히 안다면 그것을 더욱 집중적으로 훈련할 학습 전략을 세우고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메타인지는 단순히 효과적인 학습 방법으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 설계에까지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예측 불가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자신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만 계획하는 것은, 조류의 흐름에 몸을 맡긴 배처럼 이리저리 표류하며 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바닷물이 흐르는 대로 배가 떠다니도록 놔두지 않고, 물의 흐름을 읽으며 적당한 힘과 방향으로 노를 저어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갖추고 있는지, 갖추고 있지 않은지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메타인지를 향상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한 방법으로 책 읽기와 글쓰기를 빼놓을 수 없다. 즉,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신이 무엇을 이해했고, 이해하지 못했는지 스스로 점검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독서를 통해 지식과 경험을 얻고, 그것을 글로 쓰다 보면 자신의 이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또래가 함께 모여 같은 주제로 토의하며 상호작용을 하면 금상첨화다. 의견을 나누며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앞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한 스스로의 점검 행위는 그 폭과 깊이를 더하게 된다.
이것에 외부 개입에 의한 점검이 더해지면 더욱 효과적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스스로 점검하는 단계에서 그치면 자신이 정말 제대로 점검한 것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휘나 독해 등의 문제 풀이나 교사의 피드백 등을 통해 자신이 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 쓴 글의 형식과 내용에 오류는 없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보완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알고 그에 맞는 계획을 수립하고 적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보다 효율적인 학습, 보다 자신이 원하는 삶에 점점 가까워진다면 그것이 곧 성공적인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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