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아이들은 글감 찾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를 통해 생각 정리의 기술을 익히게 된다.
-
“선생님, 뭘 쓸지 모르겠어요.”
입술을 비죽 내밀며 골똘히 궁리하는 아이의 옆얼굴이 예쁘장스럽다. 일기든 독후감이든 글의 갈래와 상관없이 듣게 되는 말. ‘뭘 쓸지 모르겠다’ 꼭꼭 숨어버린 것 같은 글감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
-
- 김은경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도곡교육센터 부원장.
-
글감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생각 정리다. 이것저것 무엇을 쓸지 머릿속을 되짚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을 가다듬기 어려워하는 학생이라면 말로 정리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주말에 뭐 했어요?”라고 질문하기보다 교사가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주말에 산책하다가 청설모를 봤어요. 청설모의 몸은 전부 어두운 갈색인 줄 알았는데, 배가 하얘서 신기했어요.”라고 먼저 말을 꺼내 놓으면 아이들은 힘들이지 않고 앞다퉈 자신의 이야기를 발표한다. 한창 자유롭게 풀어놓은 이야기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잡으면 그만이다.
두 번째, 눈치 보지 않고 쓰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도 좋아하고 생각도 깊은데 막상 글을 쓸 때 끙끙 고민하는 학생이 있다. “선생님, 엄마가 쓸데없는 거 쓰지 말래요.”술술 생각나는 대로 쓰고 싶은데 게이트키퍼가 제동을 거는 것이다. ‘혹시 이런 거 썼다고 혼나는 거 아니야?’, ‘누가 보고 놀리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글쓰기를 할 때는 아이들에게 무엇이든 써도 된다는 안정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럴 때 교사는 가장 낮은 자리로 임하는 것(?)이 좋다. 바로 아이들이 부끄럽다고 여길 것 같은 경험을 교사가 먼저 허심탄회하게 밝히는 것이다.
“실은 선생님은 방학 때 실컷 놀다가 개학 전날 밀린 일기를 겨우겨우 쓴 적이 있어요. 하루는 ‘언니랑 줄넘기를 해서 재미있었다.’ 또 하루는 ‘언니랑 배드민턴을 쳐서 재미있었다.’ 이렇게요.”
처음에는 낄낄거리며 교사를 놀리는 반응을 보였지만,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학생들이 손을 들고 자신의 실수담을 발표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는 저학년 수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중등 수업에서 학교폭력을 다루는 도서로 수업을 할 때였다. 학교폭력 장면에는 괴롭히는 아이, 당하는 아이, 구경하는 아이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며, 교사 역시 과거에 돕는 아이가 되지 못하고 구경하는 아이에 머물렀던 경험을 고백했다.
그러자 K는 “다행히 괴롭히는 아이가 행동을 멈춰서 문제가 해결됐다. 하지만 나도 속해 있던 구경하는 아이들이 괴롭히는 아이에게 잘못된 행동이라고 꼬집으면 상황이 더 금방 나아질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괴롭힘을 당했던 아이를 보면 죄책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라고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서술했다.
이처럼 어떤 내용이든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글감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꾸밈없이 나를 내보일 때 인생을 담는 진짜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게다가 타인과 나의 울림이 맞닿는 경험은 덤으로 온다.
글쓰기에서 더욱 많은 성장이 필요한 학생이라면, 상상하는 글쓰기가 도움이 된다. 일기는 하루 동안 겪은 일 가운데에서 재료를 골라야 한다는 선택의 제약이 있다. 그렇다면 논설문은 어떨까? 주장하는 글을 쓰려면 객관성을 뒷받침해 주는 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더욱 제약이 많다. 따라서 글감 선택에 제한이 없는 상상하는 글쓰기를 먼저 충분히 연습하는 게 좋다. 여러 가지 떠오르는 재미있는 아이디어에 하나씩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는 활동을 통해 글쓰기 실력을 쌓을 수 있다. 아이 스스로 발전하는 나의 모습을 알아차리면 글쓰기에 자신감도 붙고, 흥미를 느끼게 돼 다른 갈래의 글쓰기도 수월하게 도전할 수 있다.
아이들은 글감 찾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를 통해 생각 정리의 기술을 익히게 된다. 생각 정리의 기술은 곧 공부의 기본이기도 하고, 삶을 성찰할 수 있게 한다. 아이들이 손쉽게 글감을 찾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돼 주면 어떨까?
Copyright Chosunedu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