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엠의 독서논술] 소설을 읽는 이유
입력 2023.10.11 09:00
  •   “우리 아이는 수학책이랑 과학책만 읽었으면 합니다. 소설은 읽히고 싶지 않아요.”


    수업 의뢰 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듣곤 한다. 영재교육원이나 과학고 지원 등 특수한 목적성이 있는 경우라면 이해가 가지만, 그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하는 독서 수업에서도 위와 같은 요청을 듣는다면 아쉬운 마음이 크다. 

    소설책을 보는 것은 과학책이나 역사책보다 조금 가벼운 느낌,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공부하는 게 아니라 약간 노는 느낌까지 든다. 

  • 김은경 책읽기와 글쓰기 리딩엠 도곡교육센터 부원장
  • 한 소설가의 강연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야간자율학습시간이 정말 자유롭게 공부하는 시간인 줄 알고 열심히 소설책을 읽었다는 소설가 K. 그런 모습을 선생님이 보시고는 보던 소설책을 빼앗아 머리를 내리치며 “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라고 혼을 내셨다는데 정확히 10년 후 그는 소설가가 돼 있더란다. 

    물론 요즘에는 위와 같은 교사는 없겠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소설은 왜 읽어야 할까?’라는 궁금증에 다음과 같이 답하고 싶다.

    첫째, 소설은 시간을 때우기에 좋다. 어른이든 학생이든 요즘은 바쁜 게 미덕인 사회다. 일 분 일 초 흘려보낼 시간이 없다. 그러다가도 우리의 삶에 짧은 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동 시간, 아이의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는 시간, 약속한 상대방을 기다리는 시간 등 말이다. 이때 스마트폰이 아니라 소설책을 펴든다면 어떨까? 이야기에 몰입하다 보면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소설책은 여타 책과 달라서 한창 결투를 벌이든, 범인을 쫓든 덮인 책을 열면 우리는 순식간에 다시 이야기로 빨려들어 간다.

    둘째, 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 잘 즐길 수 있게 된다. 작가의 의도대로 사건을 인과 관계에 따라 짜임새 있게 재구성하는 것을 플롯이라고 말한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과 같이 갈등이 만들어지고 해결되는 과정을 순서대로 구성하기도 하고, 작가의 개성이나 의도에 따라 순서를 뒤섞기도 한다. 플롯에 익숙해질수록 이야기가 뻔해지고 반전의 맛이 사라져 재미가 없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다양한 플롯을 경험할수록 이야기에 더욱 흠뻑 빠지며 즐기게 된다.

    셋째,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이것은 나와 타인 모두에 해당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나와 똑 닮은 사람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이럴 땐 나도 이해할 수 없었던 내 마음과 생각까지 작가가 읽어줘 시원함을 느낀다. 동시에 나와 전혀 다른 인물을 만나 인간에 대해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기도 한다. 어느 하나의 상황에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방문을 쾅 닫고 방에 들어갔다고 해 보자. “버릇없이 무슨 행동이야? 그렇게 한다고 문이 부서지겠니?”라고 비난하는 말이 먼저 나왔던 사람이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나?’, ‘시험을 망쳐서 속상한가?’, ‘창문에서 바람이 세게 불었나?’ 등 보다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저 사람 왜 저래?”에서 어느 유명 가수의 말마따나 “그럴 수 있어”라고 상대방을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 소설은 비문학으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한다. 공부를 문자적으로 하는 학생들이 많다. ‘일제 강점기’를 ‘1910년의 국권 강탈 이후 1945년 해방되기까지 35년간의 시대’라고 익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단어의 나열은 나와 거리가 멀고 영 뻑뻑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마사코의 질문>, <언제든지 스마일>, <작은 땅의 야수들>과 같은 이야기를 통해 배경 지식을 쌓은 학생은 조금 더 부드럽게 일제 강점기를 이해할 수 있다. 

    <마사코의 질문>을 읽은 아이라면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의 삶에 대해 떠올릴 수 있고, <언제든지 스마일>을 본 아이라면 덤덤히 아버지 또는 남편의 부재를 견뎌야 했던 고단한 독립운동가 가족들의 삶에 대해 헤아릴 수 있다. <작은 땅의 야수들>을 접한 아이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만, 조국을 위해 비밀리에 독립자금을 댄 기녀의 삶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듯 소설의 도움을 받으면 학습을 보다 입체적으로 할 수 있다. 이는 비단 역사 분야만이 아닐 것이다. 

    조야하지만 이 답변이 아이의 책 목록에서 소설을 빼고자 하려는 손짓을 무르춤하게 하길 바란다. 실은 ‘소설은 왜 읽어야 할까?’라는 물음에 응하며 아껴둔 대답이 하나 있다. 바로 소설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흡사 책을 자석의 S극에 놓고 자신을 N극에 놓는 아이가 있다면 다른 건 제쳐두고 소설부터 권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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