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한글 교육은 세종대왕의 사람다움을 나누는 것”
입력 2023.10.08 20:16
“단순히 문자를 익히는 것이 아닌 세종의 ‘사람다움’ 그 의미를 나누는 것”
  • 누리과정은 3~5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유치원·어린이집 단계의 국가 교육과정을 의미한다. ▲신체운동·건강 ▲의사소통 ▲사회관계 ▲예술경험 ▲자연탐구 총 5개 영역으로, 영역별로 59개에 달하는 세부 내용이 있다. 현재 누리과정은 지난 2019년 개정된 내용이다. 당시 교육부는 학습 중심의 교육체계를 ‘놀이중심’으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기계적 학습보다는 아이들이 놀면서 성장하고, 배울 수 있도록 노래하기, 율동, 그림 그리기 등 다채로운 활동으로 구성됐다. 

    일각에서는 현 누리과정이 교육 실정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특히 쟁점은 ‘한글 교육’이다. 누리과정에서는 이른 시기 문자 학습이 아이들의 고른 두뇌 발달을 저하한다는 이유로 직접적인 한글 교육을 금지하고 있다. 현재 한글 교육은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속한다. 하지만 실제 초등학교 입학생 중 글을 읽지 못하는 비율은 10∼20%에 불과하다. 대부분 학부모가 아이의 초등학교 적응이나 학습격차 등을 고려해 사교육을 통해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교육부는 놀이 중심의 교육과정을 유지하겠다 입장이다. 대신 학부모들의 우려를 고려해 누리과정과 초등학교 교육과정의 연계 강화에 집중할 계획이다. 

    10월 9일, 한글날 577돌을 맞이해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을 만나 유·초등생 한글 교육과 그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김슬옹 원장 제공.
  • Q. 한글의 우수성 이미 널리 알려졌지만, 다시 한번 설명 부탁드려요

    “한글 우수성은 한마디로 문자 기능이 매우 우수하다는 것이죠. 한글은 굉장히 쉬운 문자로, 간결한 직선 위주로 돼 있고 매우 정확하게 말소리를 적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누구나 빠르게 배울 수 있고, 평등하게 지식과 정보를 나눌 수 있는 문자입니다.” 

    Q. 오랜 시간 한글 교육자로서 활동해왔잖아요. 한글을 연구하고, 교육해온 입장에서 한글 교육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한글 교육은 단순히 문자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고 봐요. 앞에서 말했듯 한글은 누구나 쉽고, 정확하게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문자입니다. 한글이라는 문자는 누구나 평등하게 지식과 정보를 나눌 수 있게 하려는 세종의 ‘사람다움’을 바탕으로 두고 있죠. 따라서 한글을 교육하고, 배운다는 것은 세종의 사람다움에 대한 그 의미를 나누는 것이라고 봅니다.”

    Q. 초등학교 '한글 책임교육‘에 대해 실정과 맞지 않는다는 우려가 있어요. 한글 교육의 적기는 언제인가요?

    “사실 정해진 적기는 없다고 생각해요. 한글은 배우기 매우 쉬운 문자죠. 따라서 아이들마다 또는 환경에 따라 한글을 교육해야 하는 시기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글이 쉬우니까 일찍 배워야 한다는 관점보다는 쉬운 만큼 조금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적어도 한글에 대해서는 서두르지 않고, 가르쳐도 된다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한글을 가볍게 익히고, 입학 후에는 교육과정에 맞춰 체계적으로 확인하듯 배우는 것을 추천해요.”

    Q. 최근 아이들의 문해력 저하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어요. 한글 교육을 통해 문해력을 높일 수 있을까요?

    “최근 문해력 저하 문제는 약간의 오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씽(Missing, 없어진)’과 같은 외래어와 더불어 정체불명의 말들을 언론에서도 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과연 문해력이 낮은 것일까요? 또, 이 같은 언어를 자주 사용한다고 해서 문해력이 떨어진 것일까요? 문해력 향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올바른 한글어 사용이 우선되어야 하며, 이는 한글 교육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실제로 문해력이 낮다면 책을 많이 읽고, 책 내용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어떤 단어든 문장이든 맥락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문해력의 핵심이죠. 이런 능력은 독서와 토론, 글쓰기가 융합된 교육이 해결책입니다.”

    Q. 우리말은 한자어가 많습니다. 따라서 한자나 고전에 대한 이해력을 높여야 어휘력과 문장력 등 문해력이 향상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편이죠

    “우선 한자어에 대한 오해부터 바로잡아야 해요. 한자어, 순우리말을 분류하는 기준은 ‘어원’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한자어라고 해서 한자로 적거나, 한자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에요. 모든 어휘는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지, 결코 어원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 볼까요? ‘치매(癡呆)’는 분명한 한자어죠. 하지만 우리가 ‘치매’라는 단어가 한자어라는 사실을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자 뜻이 ‘어리석을 치’와 ‘어리석을 매’라는 것을 안다고 해서 그 뜻까지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치매만 하더라도 ‘어리석다’라는 뜻이 아니잖아요. 물론 한자 지식이 도움 될 때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어휘력, 문장력 향상을 위해서는 한자를 배우기보다 책을 많이 읽거나, 국어사전식 어휘력을 키우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죠.

    한자어도 외래어로서 우리말입니다.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한글로 적어 이해하면 되는 거죠. 한자로 접근할 필요는 없어요. 만약 한자 정보가 필요하다면 우리말 옆에 괄호를 사용해 표기하면 그만입니다. 고전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는 건 좋죠. 그렇다고 ‘논어’라는 고전을 알기 위해 한자와 한문을 배워야 할까요? 배워서 이해하면 더 좋겠지만, 한국어로 잘 번역된 책을 읽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Q. 최근 줄임말이나 신조어가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죠. 줄임말, 신조어가 문해력 저하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어요.

    “줄임말과 신조어 자체의 잘못은 아니에요. 줄임말은 새로운 말을 만드는 경제적인 방법이고, 신조어는 어느 시대에나 있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참트루(참-true) ▲Aㅏ그렇구나 ▲먹go ▲On通대전 ▲미씽(missing)과 같은 엉터리 ‘잡탕 말’과 ‘외국어식 신조어’가 넘쳐난다는 점이에요. 이 같은 정체불명의 말들은 사람 간 소통을 가로막고,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약자를 배제하는 참 나쁜 말입니다.” 

    Q. 아동과 청소년들의 올바른 한글 사용을 위해서 교육 현장과 가정, 사회에서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요?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단순히 문자로만 한글을 가르치기보다 한글에 대한 올바른 역사와 지식을 가르쳐야 해요. 가정에서는 무엇보다도 책을 많이 읽게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요. 사회에서는 한글의 과학성과 역사에 대해 잘 아는 훈민정음 전문가를 많이 양성하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 김슬옹 원장 제공.
  • Q. 한글 교육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올바른 한글 교육을 위해 교육자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요?

    “누구나 한글 교육을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자라면 적어도 세종이 한글을 왜 만들었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 한글의 과학성을 설명하라고 하면 제대로 설명하는 선생님이 많지 않아요. 정말이지 안타까운 현실이죠.” 

    Q. 앞으로 한글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무엇일까요?

    “한글의 역사와 원리에 대해 더 정확하고, 다채로운 콘텐츠가 필요해요. 저 역시 한글에 대해 보다 다채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2021년에 펴낸 <위대한 세종 한글>을 바탕으로 하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전 세계에 보급할 계획이에요.

    또, 우리는 한글을 공기처럼 여겨서인지 한글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낮고, 한글과 우리말에 대한 교양을 높일 필요가 있어요. 아직도 한글과 순우리말을 구별 못하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훈민정음을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사들과 같이 만들었다는 주장을 믿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해서 읽고, 공부만 했더라면 이런 주장을 믿을 리 없거든요. 한글은 우리 고유의 문자이고, 기반이죠. 그만큼 우리 스스로 잘 알아야 합니다.”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은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간송본)을 최초로 직접 보고 해설한 한글학자이며, 우리말과 한글에 관한 박사학위를 세 개나 받은 국어학자다. 학술 연구 공로로 세종문화상 대통령을 받기도 했다. 또한, 지난 2018년 방탄소년단이 한국어와 한글을 널리 알린 공로로 ‘으뜸 한글알림이’로 선정된 당시 ‘으뜸 한글지킴이’로 뽑혔던 바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객원교수이며, 저서 <위대한 세종 한글>을 비롯한 다수의 한글 교육 서적을 출간하는 등 한글 교육에 앞장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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