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어린이의 문장’ 정혜영 작가
입력 2023.08.02 13:47
- 제10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 정혜영 작가의 모습. / 흐름출판 제공.
  • “어린이가 아니었던 어른은 없다. 어른이 어린이의 마음을 만난다는 것은 각자의 어린 시절과 조우하는 일.”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어려움을 직면하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문제에 맞서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모른척 회피하기도 하며, 그 과정에서 기뻐하기도 상처를 받기도 한다. 

    책 <어린이의 문장>의 저자 정혜영 작가는 “때론 어린이의 투명한 순수함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정 작가는 지난 23년 간 초등교사로 아이들을 직접 만나면서 유쾌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글을 하나 하나 모아왔다. 정 작가가 소중하게 모아온 문장들을 읽노라면, 아이들의 엉뚱하고 신박한 표현에 미소 짓고 어느새 가슴 한편엔 온기가 퍼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23년 차 초등교사이자, 책 <어린이의 문장>의 저자 정혜영 작가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 “작고 말캉한 손을 잡자 내 마음이 단단해졌다”

    Q. 먼저, 책 <어린이의 문장>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3년 전부터 개인 블로그에 이런저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을 알게 됐어요. 브런치 작가가 된 후, 매거진 형식으로 몇 개 글을 올렸는데 그중 한 매거진이 ‘어린이의 문장’이었습니다. 

    교직에 있는 동안 꾸준히 아이들의 글쓰기를 독려해 왔는데, 직접 글을 써보니 아이들의 짧은 글이 전보다 더 의미 있게 다가오더라고요. 아이들의 천진하고 호기로운 글을 읽으며 때로는 웃음 짓기도 하고 때로는 뭉클한 마음이 자주 들었습니다. 

    이후 코로나19로 관계가 단절되면서 역설적으로 아이들과의 소통이 더 귀해졌어요. 그때부터 저에게 여러 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킨 아이들의 글을 모으고 떠오르는 심상을 한 편, 두 편, 글로 남겼어요. 그렇게 발행된 브런치북이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작으로 선정되면서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Q. ‘어린이의 문장’을 읽고 나서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됐습니다. 그간 아이들에 대해 함부로 짐작하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실제로 만난 아이들은 어땠나요? 

    아이들은 소우주 같아요. 크기와 끝을 가늠할 수 없지요. 가능성이 무한대인 존재예요. ‘이런 아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때가 많거든요. 오랜 세월 여러 아이를 만나 보니 아이들은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되는 존재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언제나 사랑받고 싶어 하고, 또 받은 것 이상으로 사랑을 나눠 주는 존재들이기도 해요.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것도 많고, 어려움에 처한 대상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죠. 아이들이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세상은 참 다채롭고, 아름다운 곳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Q. 아이들에게 꾸준히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글쓰기의 큰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은 자신의 본질을 알아간다는 점인 것 같아요. 하루에도 넘쳐나는 정보와 타인의 뒤죽박죽이 된 생각들을 무수히 만나게 되잖아요. 그 속에서 내 견해는 무엇인지 판단할 겨를도 없이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요. 그때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시간은 오롯이 나와 만나는 시간이 되어 주죠. 소비되고 소진된 스스로를 보듬으며 글을 쓰다 보면 이보다 더한 심리 치료법이 있을까 싶어요. 자신을 낱낱이 이해하고 더 깊게 끌어안는 일. 이것이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습니다. 

    Q. 아이들의 문장과 더불어 작가님의 따스한 태도가 인상 깊었어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어린이를 대하는 어른의 자세는 어떤 것일까요?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겠지만, 어린 시절 우리들의 생각은 많은 어른으로부터 경시되고 도외시됐어요. 어른이 된 지금의 내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과거 어딘가에서 내 존재를 그대로 존중받지 못한 데 근본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어린이를 대할 때, 자신의 어릴 때 모습을 떠올리며 최대한 어린이의 속도에 맞추어 주세요. 속도는 조금 느리더라도 어른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어 사력을 다하는 중이라는 걸 기억하면서요. 작고 여린 존재를 대하는 태도가 한 사람의 진정한 인격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Q. 아이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실제로는 지시적인 경우가 많잖아요. 존중과 배려를 주고받는 관계가 되기 위해 가장 우선시돼야 하는 점을 꼽자면 무엇일까요? 

    어린이를 미숙한 존재라고 치부하면 어린이의 많은 모습을 놓치기 쉽습니다. ‘어리니까’, ‘모르니까’, ‘미숙하니까’라는 생각으로 어린이를 대하면 어른의 생각을 강요하기 쉽고 그런 어른에게 아이들은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가장 먼저, 아이의 생각과 관심사가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물어봐 주세요. 어른이 아이의 말에 눈 맞추고 경청하며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 줄 때, 아이들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이는 자연스럽게 자존감으로 연결됩니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는 타인의 말을 왜곡해서 받아들이지 않아요. 이는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한 관계 맺기의 기본적인 자질이 되어 줄 겁니다.

    Q. 책에 많은 문장이 등장하잖아요. 그중에서도 작가님이 꼽는 가장 인상 깊은 문장은요?

    굉장히 많아서 무엇을 꼽아야 할지 어렵네요. (웃음) 우선 ‘어린이의 한 달’이라는 글에서 아리(가명)가 쓴 “일광욕은 햇빛으로 하는 거고, 만약 월광욕이 있으면 달빛으로 하는 거예요?”라고 묻는 문장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순간적인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창의적인 아이의 생각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요. 

    두 번째는 각자 다르게 태어난 존재라는 점을 아이의 언어로 말해 준 정호(가명)의 문장이에요. “나는 태어날 때 무서운 걸 잘 못 견디게 태어났고 동생은 잘 견디게 태어나서 나는 무섭고 동생은 안 무섭다”라는 문장이죠. 태생적으로 모두가 다른 존재들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본질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문장이 있을까 싶어요.

    Q. 교사로서 아이들을 직접 마주하고 있잖아요. 지난 23년간 작가님이 어린이로부터 배운 점은 무엇일까요? 아이들이 작가님에게 미친 긍정적 영향은 무엇인가요?

    ‘가장 단순한 것이 최선’이라는 거예요. 어른이 되면서 단순하게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리는 것 같거든요. 남들과 비교하며 타인의 기준에 맞추며 살다 보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도, 원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아이들은 근심과 걱정보다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즐거움과 행복을 놓치지 않고 마음껏 누려요. 그러니 표정이 다채로울 수밖에 없겠지요. 매 순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아이들을 보며 세상을 좀 더 단순하게, 호기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Q. 책을 보니 중간에 교사를 그만두려고 했더라고요. ‘내 아이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 학생들을 어떻게 돌볼 수 있겠나’ 하면서요. 그 고비를 잘 넘기신 것 같아요. 그 시기를 버티게 해준 동력이 있나요?

    ‘꿈’이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은 제 삶의 꿈이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었고, 중고등학생 때는 더 구체화 됐죠. 선생님이 아닌 저를 상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사실, 가정 형편이 너무 안 좋아서 엄마는 제가 중학교 졸업 후 상고로 진학하기를 바라셨어요. 제가 일곱 살이 된 무렵부터 엄마 홀로 세 남매를 키우시느라 고생이 많으셨거든요. 제가 그중 맏딸이었어요. 지금도 여자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게 쉽지 않은데 30~40년 전엔 정말 암담했죠. 그러니 맏딸인 제가 빨리 취업해서 집안을 돌보길 바라신 것도 무리는 아니었죠.

    하지만 배움이 적은 여자가 대한민국 시스템 안에서 얼마나 벌어 먹고살기 힘든지 엄마를 보며 사는 내내 피부로 느끼며 살았어요. 엄마의 힘든 삶을 보며, 꼭 끝까지 배워서 번듯한 직업을 갖고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친척들까지도 돌아가며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말리는 걸,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께 엄마를 설득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드렸어요. 제가 우겨 진학하고 진로 정하고, 결국 교사가 되었죠. 그때 그 담임 선생님은 지금도 일 년에 한 번씩 찾아 뵙는 제 평생 은사님이에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시련이 닥쳤을 때 그나마 버틸 힘을 주는 것 같아요. 

    Q.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초등교사로 누리는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인가요?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다는 점이에요. 일 년 동안 함께한 아이들이 저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며 어떻게 다채로운 색깔을 내는지 지켜보는 건 놀라운 일이죠. 제가 교과 지도 외에 아이들과 일 년 내내 함께하는 게 있는데, 오카리나 연주와 글쓰기예요.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오카리나를 불며 함께 글을 쓰면서 일 년을 보내다 보면 아이들과 저 모두 함께 성장하는 게 느껴져요.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같이 성장할 수 있다는 건 초등교사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 그리고 어린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책의 ‘들어가는 말’에 썼듯이, 세상에 어린이가 아니었던 어른은 없습니다. 어른이 어린이의 마음을 만난다는 것은 각자의 어린 시절과 조우하는 일이며,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오늘의 모습을 보듬는 일일지도 모르고요. 앞만 보며 뛰어가다 지쳐버린 이 시대의 어른들, 제2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어른들이 어린이의 말과 글, 문장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어린이의 마음을 만나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현재의 자신을 좀 더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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