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논술 개런티] 흑인 인어공주는 세상을 향한 백플립이다?
입력 2023.07.14 13:50
  • 월트디즈니코리아.
  • 미국의 월트 디즈니사는 각국의 다양한 구전 설화를 각색하여 작품으로 만들고 있다. 프랑스의 ‘신데렐라’, 독일의 ‘라푼젤’, 폴리네시아의 ‘모아나’, 중국의 ‘뮬란’ 등이 그렇다. 이뿐만이 아니다. 콜롬비아 배경의 ‘엔칸토: 마법의 세계’, 스코트랜드 ‘메리다와 마법의 숲’, 태국을 배경으로 하는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멕시코 ‘코코’ 등 다문화, 다민족의 이야기를 다루며 일찌감치 화이트워싱(유색인종 캐릭터를 백인으로 캐스팅하는 할리우드 관행)을 탈피했다. 디즈니의 역사적 행보를 되짚어볼 때, 디즈니가 인어공주 실사화 제작에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Halle Bailey)’를 캐스팅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보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 인어공주 캐스팅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맹렬히 비난받고 있다. 과연 디즈니의 이러한 시도는 너무 앞서 있던 것일까? 백인 중심적 미적 기준에 익숙한 대중들이 흑인 인어공주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디즈니는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까? 박스오피스 전문가들도 흑인 인어공주 캐스팅은 많은 사람에게 반발을 살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이 정도일 줄 몰랐다고 일제히 입을 모으고 있다.

    대중은 이미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해 인어공주를 빨간색 머리카락의 백인의 이미지로 형성해 놨다. 그러나 이와 전혀 다른 모습의 흑인 인어공주가 세상의 발을 내딛으려 하자 사람들은 거부하고 저항했다. 그 결과 영화의 흥행 결과는 참담했다. 

    중국에서는 디즈니 실사 영화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고, 한국에서도 결과가 다르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혹평이다. 베일리의 외모 비하는 물론이고 연기력 논란, 그리고 가창력까지도 물고 늘어지고 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열여섯 앳되고 순수해야 할 인어공주가 산전수전 다 겪은 이모의 소울로 노래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베일리가 자신이 추억하는 인어공주의 모습을 훼손시켰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고정관념을 고정된 상태로 간직할 수 없게 된 것에 유감을 표하는 건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인종차별적 행위라는 것을 인지 못한다는 것은 더욱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에 대해 CNN을 비롯한 미국 언론들은 중국과 한국에서 인어공주의 흥행부진을 놓고 인종차별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상대적으로 미국에서 인어공주가 흑인 캐스팅에 대한 일부 항의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흑인 인어공주 논란을 보면서 1998년 일본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서 금지된 기술인 백플립을 했던 흑인 피겨 선수 ‘수리야 보날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디즈니 온 아이스는 디즈니 작품 속 캐릭터들이 아이스링크에서 피겨 무대를 꾸미는 아이스쇼다. 빙판 위에 펼쳐지는 동화 속에서 인물들의 백플립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실제 피겨 스케이팅 경기는 다르다. 선수들에게 위험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백플립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그럼에도 보날리는 이 금기를 깨고 그녀의 마지막 올림픽 무대에서 백플립을 했다. 

    페어플레이 스포츠 정신이 심판의 판결로 연결될 것만 같지만 피겨계는 사실상 그렇지 않았다. 판결은 정치적이고 주관적이며 그 기준조차 애매해 시스템이 망가진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다. 이런 피겨계에서 흑인 선수 보날리가 활동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심판들이 기대하는 날씬한 백인 선수와는 다른 이미지였던 보날리는 예쁘지 않고 우아하지 않다고 때로는 의상이 이상하다는 혹평을 달고 살았다. 그래서 그녀는 남들보다 더 많은 스핀을 선보이고 더 높은 테크닉을 구사했지만, 이것이 점수로 이어지지 못하는 편파 판정받아야 했다.

    부당한 이유로 좌절감을 겪어야 했던 보날리는 1994년 일본 자바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메달을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 속 주인공이 된다. 준우승한 보날리는 눈물을 흘리며 시상대 위에 올라서길 거부한 것이다. 시상자가 보날리에게 은메달을 목에 걸어주고 억지로 시상대에 올렸지만, 그녀는 이내 은메달을 벗어버렸다. 관객석은 이러한 보날리에게 야유를 보냈다. 그녀가 최선을 다해도 우승할 기회가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이를 그저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으로만 보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4년 후 일본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 참가한 보날리는 아킬레스건 파열로 극심한 고통 속에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이 무대에서 그간 그녀가 받았던 인종차별에 대해 울분을 토해내듯 백플립을 날린다. 당시 경기를 관람했던 사람들은 열광했고, 심판들은 경악했다. 그녀는 그간 심판들에게 당해온 인종차별에 백플립으로 맞대응으로 응수했다. 보날리는 경기에서 ‘금지되어야 할 것은 백플립이 아니라 인종차별이다’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후 보날리는 스물네 살의 나이로 프리 선언을 하고 아이스쇼마다 원 없이 백플립을 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오래 아이스링크를 누비고 다녔다. 그렇게 그녀는 피겨 스케이팅이 결코 백인만을 위한 전유물이 아님을 그녀의 선수 인생을 통해 증명해 낸 것이다. 보날리의 백플립이 세상에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인종의 평등과 정의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 것은 무려 25년 전의 일이다. 강산이 변해도 두세 번 변했을 시간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엔 안타깝게도 더 많은 백플립이 필요해 보인다. 디즈니 흑인 인어공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보날리가 겪어야만 했던 절망과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자선단체가 아니다. 상업적 이윤 추구를 우선으로 하는 기업이다. 그렇다면 디즈니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흑인 인어공주를 캐스팅할 때 손실을 누구보다 더 잘 파악하고 있었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즈니는 백인이 아닌 흑인 인어공주를 택했다. 어떤 인종은 되고 어떤 인종은 안 된다는 세상의 편견에 백플립을 날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디즈니가 맥락도 없이 영화 속에 흑인 공주를 단독으로 등장시킨 것도 아니다. 관객들에게 이러한 상황이 낯선 충격으로 다가가지 않도록 작품에 다양한 인종의 배역을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왕과 왕비를 필두로 성 안팎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바다 속 인어들까지 다인종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장면들을 그려냈다. 이러한 친절한 디즈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흑인 인어공주가 세상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것에는 진통을 겪고 있다. 

    디즈니의 선택과 결정으로 인해 2023년 판 인어공주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고 인종에 대한 열린 프레임을 형성해 자랄 수 있다면 여기에는 분명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 아이들은 사람을 피부색이 아닌 '인간'으로서 대하는 사회 속에 한 발짝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때에는 영화 속에서 ‘세상 일부가 되고 싶다(Wish I could be part of that world)’고 노래하는 흑인 인어공주를 기꺼이 세상 일부로 받아줄 수 있는 정의롭고 희망적인 미래이기를 바란다.      

                                                                 

    ◇ 생각해볼 문제

    1. 디즈니의 흑인 인어공주 캐스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

    2. 수리야 보날리가 올림픽 경기 도중 금지 기술인 백플립을 한 것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3. 우리 사회에 날리고 싶은 백플립이 있다면?

  • 글=이순영 칼럼니스트 #조선에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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