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문항이 사라진다’… 들썩이는 교육계
입력 2023.06.20 17:06
  • 정부가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약 5개월 남짓 남겨둔 상황에서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을 배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수능 난이도나 출제 유형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교육계는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지난 19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수능 출제와 관련해 “앞으로 공정한 수능이 되도록 공교육 과정 내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은 출제를 배제하고, 적정 난이도가 확보되도록 출제 기법을 고도화하기 위한 시스템을 점검하는 등 교육부 수장으로서 모든 가능한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 수능 D-150, 갑자기 왜?

    수능이 150일 남은 시점에서 수험생과 학부모 등 교육계는 “이미 6월 모의평가도 끝났는데, 킬러문항 배제 발표는 너무 갑작스럽다” 라며 불안과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킬러 문항을 제외하기로 한 것은 이미 3개월 전 평가원을 통해 예고했던 내용”이라고 분명히 했다.

    실제로 지난 3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학생들이 학교 교육을 충실히 받고 EBS 연계 교재와 강의로 보완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적정 난이도를 갖춘 문항을 출제할 계획”이라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던 바 있다. 

    당시 평가원은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해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하고 기본개념에 대한 이해와 적용 능력이 있는 학생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으로 문항을 출제할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제시된 성취기준과 내용에 기초하여, 신뢰도와 타당도를 갖춘 양질의 문항을 출제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일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번 계기로 사교육 경감 방안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 평가원 제공.
  • ◇ 수험생 죽이는 ‘킬러’ 문항

    킬러 문항은 초고난도 문제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과목당 1개에서 최대 4개 문항 정도로 구성되며, 시험의 변별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킬러문항이 단순한 공교육 과정만으로는 풀기 어렵다는 점이다. 때문에 킬러문항은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사교육 부담을 안겨주는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킬러문항이 논란의 중심에 오른 것은 2019년 수능에서다. 2019년 수능 국어영역 31번으로, 만유인력에 대한 지문을 읽고, 지문에 대해 잘못 이해한 선택지를 고르는 문제다. 

    당시 해당 지문에 대해 국어문제인지 과학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지문을 읽다가 포기했다는 학생들이 다수 출몰하고, 현직 국어교사조차 해당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등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이뿐만 아니다. 수학영역의 경우에는 전체 문제를 푸는 시간보다 1~2개의 킬러문항을 푸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크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수학영역은 특히 킬러문항의 번호가 만연하게 퍼져 있기도 하다. 주로 21번과 30번이다. 30번 문항의 경우, 찍을 수도 없는 주관식이라 문제를 보기도 전에 포기하는 학생들도 다수 존재한다.

    2023학년도 수능 수학영역에서는 총 8개 문항이 고등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였다는 주장 또한 존재했다. 지난해 12월,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고교 교육과정 준수여부 분석결과’를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2023학년도 수학영역 46개 문항 중 17.4%에 해당하는 8개 문항이 고교 교육과정의 수준과 범위를 넘어서 출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 킬러문항으로 성장했던 사교육 인기

    수능 킬러문항이 대학을 좌우하는 잣대로 평가되자, 학원들은 킬러문항 대비 과정을 앞다퉈 내놨다. 실제로 학원가에서 앞세운 마케팅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021년 A학원에서는 킬러문항 집중 학습이 가능한 자체 모의고사 문제지를 만들어 판매했다. 고난이도 유사 문항을 추가적으로 제공한다는 문구를 내걸기도 했다. 또한 경기도 소재 B학원은 ‘킬러문항에 대한 열쇠를 제공하는 지역 내 유일한 학원’이라며 수학 1등급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을 찾아 나섰다. 

    2024학년도 수능 킬러문항에 대비하는 강의 또한 쏟아지고 있다. 킬러와 더불어 준킬러 문항을 대비하는 별도의 강좌를 개설해 수강생을 모으고 있다. 자체 개발한 문제집을 이용한 강의 제공이 기본이며, 별도로 문제집만 구매할 수도 있다.

    학원 안팎으로 킬러문항에 대한 마케팅은 심화되고, 심지어 한 학원은 킬러문항을 발굴하기 위한 공모까지 내걸었다. 양질의 킬러문항을 제공할수록 학원의 인기는 오르고, 학원비 또한 고액으로 치솟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학부모는 더 완벽한 예상 문제, 더 확실한 풀이를 제공하는 학원을 찾아 나서는 것이 현실이다.

    ◇ 우려과 공감이 공존하는 ‘킬러문항 배제’

    정부는 당장 9월 모의고사부터 킬러문항을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9월 모의고사와 올해 수능에서는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은 킬러문항의 자리를 공교육 과정 내에서 준킬러문항을 늘려 채울 것으로 보인다. 

    킬러문항의 배제로 올해 수능은 예년대비 난이도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자, 변별력 문제에 대해서 교육부는 “킬러를 내지 않아도 좋은 문항을 개발하면 변별력은 갖출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 방침에 대해 교육계에서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대다수지만, 한편으로는 킬러문항과 사교육 시장에 대해 불공정한 지점이 있다는 데 공감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실제로 ‘일타강사’로 손꼽히는 일부 학원강사들이 자신의 SNS를 통해 정부 방침을 비판한 것과 관련해 악플이 쏟아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학원강사들의 게시글에 “고난도 문제 1~2개 맞추려고 학원 다녀야 하는 현실에 처한 아이들이 가장 불쌍하다”, “강사들 밥줄 끊길까 봐 이러는 거냐”, “공교육만으로도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등 킬러문항 배제에 대한 지지를 드러내는 댓글을 남겼다. 

    많은 불안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교육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드러낸 만큼 국민 대다수는 더욱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교육정책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글=장희주 조선에듀 기자(jhj@chosun.com)

    강여울 조선에듀 기자(ky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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