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수 경찰관의 '요즘 자녀學]자녀에게 할아버지 할머니가 필요한 이유
입력 2021.05.10 16:17
  • 지난 주말은 ‘어버이날’이었습니다. 자식을 둔 부모라면 자녀에게 받는 선물에 큰 감동을 느끼는 법이죠. 오죽하면 세상 모든 부모의 소셜미디어 프로필 사진이 자녀가 준 카네이션으로 도배가 될까요.

    어버이날, 저는 한 어머니로부터 문자를 받았습니다. 지난해 제게 메일을 보내 상담을 요청했던 분이었죠. 어머니로부터 가족사를 들었을 때는 해결이 참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하는 어머니, 또 일 때문에 주말에 올라오는 아버지. 그리고 입시 준비에 한창인 고등학생 누나 사이에서 중학생 아들은 홀로 사춘기와 맞서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아이가 단순 가출까지 해서 부모님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결국, 아이를 위해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의 직장 문제를 해결하고서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상담 전까지 아버지는 주말에 아비 노릇을 하면 된다고 하셨지만 저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이가 학습할 나쁜 수업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주말에 온다고 한들 아들이 주중 시간에 학습하는 양을 감당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할 수 없었죠.

    다행히도 아이의 아버지는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주셨고,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근무지를 바꿀 때까지 주중에 할아버지가 도와주시기로 하고, 본인도 수요일에는 집에 방문하는 방편으로 아들의 문제를 봉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서 다가온 어버이날에 어머니께서 아들에게 카네이션을 받았다며 제게 자랑하시더군요.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카네이션을 받고서 고맙게도 제가 생각났다고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모든 부모는 저마다 다른 특정한 지점에서 자녀의 달라진 사고와 행동을 마주하는 순간을 맞게 됩니다. 이 순간을 겪지 않는 부모는 없지요. 달라진 자녀 때문에 결과에 초점을 맞춰 해답을 풀려니 대안이 쉽지 않고, 원인을 추적하자니 시간대를 짚어 가는 것 또한 쉽지 않아 결국, 현재를 마주하고 아이와 맞서는 바람에 문제가 더 악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부모와 자식 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어버이날’ 같은 기념일은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은 부모와 자식 간 마음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는 고마운 날이기도 하죠. 선물의 부피나 꽃의 모양이 중요한 건 아닐 겁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표현에서 느낄 수 있는 자녀의 마음을 엿볼 기회이지요. 선물이 가치 있는 이유는 선물이라는 결과보다 그 선물을 생각하고 고르는 과정에서 보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건 우리 모두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부모는 부모로서 자녀를 살피기도 해야 하지만 부모의 부모를 살피는 일도 자녀에게는 좋은 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비행과 범죄를 나타내는 통계 속에는 부모가 차지하는 역할뿐 아니라 부모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보이는 모습 또한 큰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부모지만 자녀이기도 하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되죠. 특히, 부모가 부모에게 보여주는 행동은 자녀가 부모를 따르는 도덕적인 방편일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부모가 부모에게 보이는 행동이 자녀에게는 도덕성은 물론 내구성을 길러주는 중요한 학습일 수 있다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2년 전, '내 새끼 때문에 고민입니다만'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전국에 있는 유명 서점에서 북콘서트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덕분에 많은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고, 그야말로 책에 발이 달렸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 북콘서트장에서 만난 노부부와의 만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보통 학부모를 위한 강연장에서 노부부를 만나는 건 흔한 일은 아니죠. 어쩌면 아주 특별한 일이기도 합니다. 당시 노부부께서는 “손주들하고 소통하고 싶어 나이가 일흔인데도 불구하고 직접 강연장을 찾았다”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손주에 대한 애정 때문에 제 앞에서 눈물을 보이시기도 했습니다. 노부부의 행동은 제게 큰 울림을 준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부모는 자녀 때문에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정작 정상적인 가족의 형태를 부모와 자식으로만 찾으려고 했던 건 아닌지 가족이라는 개념을 통찰하게 만드는 순간이기도 했지요. 다시 말해, 자녀 안전을 위해 부모와 자녀 관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녀와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관계도 자녀 안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최근 ‘미나리’ 영화가 인기죠. 더구나 오스카상을 받은 윤여정 배우의 할머니 연기는 우리에게 가족의 구성을 재인식시키는 기회를 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영화에서 심장 질환을 앓는 아들 데이빗이 할머니를 골탕 먹이기 위해 약사발에 오줌을 담아 할머니를 먹게 해서 회초리를 맞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들의 훈육을 위해 아버지 제이콥은 어린 아들에게 직접 나가서 회초리를 가져오라고 호통쳤고, 아들은 자신을 때릴 회초리를 생각하며 회초리의 두께를 고르고 고르다 결국 버들강아지 잎줄기를 가져와서 부모에게 내밀지요. 그 순간 할머니가 끼어들어 아이에게 “내 새끼 천재다”라며 아이를 끌어안고 밖으로 데려나가는 장면은 할머니가 아이에게 어떤 면적을 차지하는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한편으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할머니가 손주에게 차지하는 면적이 작지 않다는 걸 일깨워주는 장면이기도 했죠. 또한 극 중에서 할머니의 행동이 수용 가능했던 건 어쩌면 부모가 할머니를 존경하고 인정하는 태도가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점도 배울 수도 있었습니다.

    많은 부모님이 아이가 안전할 수 있는 최고의 방책은 무엇이냐고 묻곤 합니다. 그러면 저는 주저 없이 아이의 ‘내구성’을 끄집어내지요. 다시 말해,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위험한 순간이 오더라도 내구성이 강한 아이는 슬기롭게 견디는 힘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견디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안전하게 극복하는 탄력성까지 보여주죠. 그렇다면 아이의 내구성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맞습니다. 아이를 단단하게 만드는 건 결국, 부모의 사랑입니다. 여기에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이 더해지면 더 단단해지죠. 그뿐인가요? 고모와 이모, 삼촌의 사랑까지 더해지면 아이의 내구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5월은 흔히 가정의 달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가정’이란 부모와 자녀만 존재하는 규모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 어쩌면 자녀는 부모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대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글을 통해 우리 자녀에게 할아버지, 할머니가 필요한 이유를 생각해 보고, 나아가 자녀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단단한 가족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