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불신 키운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태
입력 2019.05.23 15:23
-법원 1심서 쌍둥이父 현 전 부장에 3년 6개월
-“제도 이전에 교육자의 깨끗한 교육의지 절실”
  • 숙명여고 쌍둥이 시험지 유출 사건이 알려진 뒤 이에 항의하는 숙명여고 학부모들이 지난해 8월 시위를 벌였다. /조선일보 DB
  • 법원이 쌍둥이 딸에게 시험문제와 정답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에게 징역 3년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2017년 1학년 2학기 중간·기말고사와 2018년 2학년 1학기 중간·기말고사의 문제와 답을 4차례 유출한 정황을 인정한 것이다. 현모(52) 전 교무부장은 “딸들이 밤을 새워가며 공부를 했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일선 학교의 시험 공정성과 교사로서의 윤리가 땅에 떨어진 대표적인 사건이다. 지난해 7월 사건 발단부터 1심 판결을 정리했다.

    사건은 이렇다. 2017년 숙명여고에 입학한 쌍둥이 여학생의 성적이 2학년이 된 208년 1학기 갑자기 올랐다. 두 학생은 1학년 입학 당시 성적이 문과 121등, 이과 59등에 머물렀고 인근 수학학원에서도 상위반에 속하지 못한 평범한 학생이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쌍둥이의 아버지가 숙명여고 교무부장으로 재직했다. 이를 의심한 학부모들의 문제제기로 사태가 커졌고, 교육당국과 검경의 수사로 전모가 드러났다.

    ◇ 갑작스런 성적 상승에 커진 의구심

    최초의 문제제기는 숙명여고 학부모 모임에서 나왔다. 풀이과정을 보고도 문제를 풀지 못했던 쌍둥이가 2학년 1학기 갑자기 성적이 올라 나란히 문·이과 전교 1 등을 차지하면서 의구심을 불렀다. 잇단 학부모들의 문제제기에 현 전 교무부장은 학교 홈페이지와 SNS에 두 딸이 밤을 새워가며 공부해 성적을 올렸다고 해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성난 학부모들은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지난해 7월 24일 민원을 제기했다. 현 전 부장이 문제를 유출한 정황이 있으니 조사해달라는 내용이다. 교육지원청은 숙명여고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학부모인 교사가 교무부장을 맡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도 냈다.

    당시 의혹이 확산되자 현 전 부장은 “부모와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밤샘 노력이 평가절하됐다”고 입장을 밝히며 문제제기를 중단해달라고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같은 해 8월 11일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이 등장했다.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서울시교육청은 강남서초교육지원청과 함께 16일부터 22일까지 주말을 제외한 5일간 특별감사를 진행했다.

    감사 결과 학부모들의 문제제기 상당수가 사실로 확인됐다. 먼저 유출 정황이다. 감사에 따르면 현 전 부장은 고사 담당교사가 수업 등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 교무실에서 단독으로 고사 서류를 검토하거나 결재를 했다. 시험지 유출이 이뤄졌을 정황이 특정된 것이다. 게다가 숙명여고의 2017년·2018년 중간·기말고사에서 쌍둥이가 똑같은 답을 내 틀린 9개 문항이 발견됐다. 이 문항은 시험을 치른 뒤 정답이 정정된 문제 11개 중 일부다. 쌍둥이가 정정되기 전 정답을 적었다가 시험 뒤 정답이 정정돼 틀린 것으로 처리된 것. 게다가 이 중 한 문제는 서술형 문제로, 정정 전 정답과 유사하게 나올 가능성이 크지 않은 문제다.

    숙명여고의 허술한 학사관리도 문제를 드러냈다. 이미 현 전 부장이 2017년 교무부장을 맡을 당시 쌍둥이 딸이 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고 알렸음에도 학교 측에서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이 학교의 한 교감도 재직 기간 중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자녀의 시험지와 답안지를 최종 관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 검찰 “유출 정황 다수” 7년 중형 선고

    이 같은 정황은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거치면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났다. 교육부의 수사의뢰를 받아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지난해 11월 12일 현 전 부장과 쌍둥이 딸을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시험지 유출의혹의 가장 유력한 증거로 정답표가 기재된 쌍둥이 동생의 암기장을 제시했다.

    암기장엔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전 과목의 시험 문제 정답이 적혀 있었다. 이 밖에도 포스트잇에 시험 문제 정답을 적어둔 것과 실제로 치른 시험지에도 정답표를 적은 것을 확보했다. 휴대전화에서도 2학년 1학기 기말고사의 영어 서술형 문제 정답이 그대로 적혀 있었고, 현 전 부장의 자택에선 미적분 과목 시험지도 발견됐다. 쌍둥이 딸은 경찰조사 결과 발표 뒤 퇴학 처분을 받았다. 현 전 부장은 발표보다 앞서 11월 6일 구속됐고 쌍둥이 딸은 미성년자인 점을 고려해 구속을 면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현 전 부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포스트잇 등 커닝페이퍼 제작 ▲정정 전 정답과 일치한 오답 ▲극적인 성적 상승 등이 주요 요인이다. 특히 중간·기말고사와 달리 답안을 알 수 없는 모의고사 성적은 낮은 점도 유출 정황에 힘을 실었다.

    23일 현 전 부장에게 3년 6개월 징역을 선고한 법원은 “현씨가 시험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지위를 이용해 시험 직전 답안지를 딸들에게 유출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며 “딸들이 유출된 정답을 암기해 시험지에 적어서 참고했고, 전 과목에서 성적이 급격히 향상된 사실이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학입시와 직결된 중요 절차로 사회적 관심이 높아 투명성·공정성이 요구되는 고등학교 시험 절차와 관련해 숙명여고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 공정성도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게 됐다”며 “교육 업무에 성실히 복무하는 교사들에 대한 신뢰까지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 숙명여고가 남긴 것  상피제 강화·전국 실태조사

    숙명여고 유출 사건이 커지면서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해 시험지를 유출하고 학생부를 조작한 26개교를 적발했다. 1만392개 학교에서 3만1218건이 적발됐다. 숙명여고처럼 시험지를 유출한 학교도 12개교에 달했다.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조작도 14개 중고교에서 15건이 적발되는 등 후폭풍을 낳았다.

    상피제도 강화됐다. 지난해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전국 고등학교 2360곳 중 560곳(23.7%)에 학생이 부모가 교사로 근무하는 학교에 재학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 수는 1005명, 자녀는 1050명이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자녀가 재학 중인 교직원은 시험 출제단계부터 참여를 금지했고, 인쇄단계에서는 전자기기 소지를 제한하기로 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사건에 대해 “시험문제 유출은 치열한 입시경쟁이 낳은 우리 교육의 어두운 단면”이라고 규정했다. “개인의 일탈을 막기 위한 대책이 마련돼 시행 중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 이전에 깨끗한 교직윤리를 실천하는 교육자의 의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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