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영재’ 출신 프로골퍼 전인지, 공부 아닌 ‘골프’ 택한 이유는?
입력 2018.10.29 10:10
  • 프로골퍼 전인지 선수는 “사람마다 인생의 꽃이 피는 시기가 다르고, 그 꽃이 펴서 유지되는 기간도 다르다”며 “타인과 자신을 끝없이 비교하며 좌절하기보다, 자신을 믿고 열중하다 보면 반드시 꽃이 피는 시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장은주 객원기자
  •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프로골퍼 전인지(24·KB금융그룹) 선수를 보며 떠올린 생각이다. 175cm의 큰 키에 수려한 외모, 큰 경기에서조차 미소를 짓는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까지. 어릴 적부터 뛰어난 골프 실력으로 주목받아 온 그는 마치 고생이라곤 모르고 자란 온실 속 화초인 듯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자의 물음에 그는 특유의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 선수는 “부모님께서 10년 가까이 식당일을 하며 제 뒷바라지를 하실 정도로 집안 형편이 넉넉하진 않았다”며 “어느 해엔 동계 전지훈련에 참여할 돈이 없어 체력 훈련만 한 적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처럼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지금의 전 선수를 있게 한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지난 24일 오후 경기 성남시 서판교에 있는 남서울골프장 제2 연습장에서 전 선수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수학자’ 꿈꿨던 열한 살 소녀 근성 알아본 아버지 권유로 골프 시작

    전 선수가 처음부터 골퍼의 꿈을 꾼 건 아니다. 그는 본래 수학자가 되고 싶었다. 지능지수(I.Q) 138이라는 높은 수준에 걸맞게, 초등학교 시절 전국 수학경시대회에서 심심찮게 입상하며 공부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권유로 잡은 골프채가 전 선수의 인생을 뒤바꿨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연히 아버지 친구가 코치로 일하는 골프 연습장을 찾았어요. 본래 처음 해본 운동도 곧잘 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채를 휘둘러 봤죠. 하지만 몇 번을 해도 공이 잘 맞지 않자 승부욕이 발동하기 시작했어요. 타석에 들어가 제 마음에 들 때까지 2~3시간가량 공을 쳤죠. 손이 얼얼하고 물집이 잡힐 때 즈음, 공이 어느 정도 맞더라고요. 그 모습을 지켜본 아버지가 ‘근성이 있다’며 공부보단 골프 선수로 키우자고 다짐하셨죠.”

    하지만 골프 선수가 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가장 먼저 학교의 반대가 심했다. 당시 충청남도에서 주관하는 수학 영재교육 3차 시험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골프로 진로를 전향한 것에 대해 학교 측과 갈등을 빚은 것이다. 아울러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도 한몫했다. 소위 ‘귀족 스포츠’라 불리는 골프에서 프로 선수로 거듭나려면, 골프 장비부터 레슨비, 골프장 이용료 등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또 빠르면 대여섯 살에 골프에 입문하는 또래 선수들과 달리, 늦게 시작했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들기도 했다.

    이때마다 전 선수에게 가장 큰 힘이 돼준 이는 바로 ‘아버지’였다. 전 선수는 “아버지는 늘 제 결정을 존중해주시고 이를 위해 헌신하셨다. 학창시절 내내 골프에 매진하기 좋은 환경과 여건이 갖춰진 학교를 끊임없이 찾아다니셨을 정도”라고 전했다.

    “아버지는 지금껏 제게 무언가를 강요한 적이 없어요. 언제든 제가 힘들면 그만해도 된다고 말씀해주셨죠. 아버지로 인해 시작한 골프지만, 골프를 끝까지 놓지 않았던 건 오로지 제 의지에요. 또 무언가 결정해야 할 때가 오면, 선택지에 대한 장단점을 충분히 설명해주시고 최종 결정권은 늘 제게 맡겨주셨어요. 스스로 충분히 진로를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러한 부모님의 지원과 헌신을 알기에 ‘반드시 골프로 성공하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 성공 좇다 골프 ‘흥미’ 잃어… 중·단기 목표 세우며 재미 되찾아

    이후 전 선수는 프로골퍼가 되는 엘리트 코스를 모두 밟았다.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이, 고등학교 1학년 때 국가대표가 됐다. 하지만 그 과정이 재밌지는 않았다. 성공하고자 하는 욕심을 좇다 보니, 골프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는 결국 전 선수가 열여덟되던 해 슬럼프로 다가왔다.

    그 뒤로 전 선수는 골프를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택한 방법은 바로 ‘중·단기 목표 세우기’. 지금까지 막연히 꿈꿨던 성공을 넘어, 골프 선수로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최대한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노트에 적었다. 당장 다음 달부터 10년 뒤 목표까지 단기와 장기로 나눠 써내려가니, 이후 마음이 한결 후련해지면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열의가 불타올랐다. 그는 “2023년까지 골프선수로 이루고 싶은 모든 것을 노트에 적었다”며 “6년이 지난 지금도 힘들 때마다 이를 꺼내보며 목표를 다지고, 하나하나 이뤄가는 것에서 재미와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 /장은주 객원기자
  • ◇ “도움 받고 자란 만큼 베풀 것”… 美 교육재단 설립·장학금 기부하기도

    현재 전 선수는 그가 계획한 꿈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다. 이번달 초에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8개국 대항전 UL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4전 전승으로 한국의 첫 우승을 이끈 데 이어, 14일 열린 LPGA투어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도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최근엔 자신처럼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을 위한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의 지역 청소년을 위해 '전인지 랭커스터 컨트리클럽 교육재단'을 설립한 것이다. 이곳은 그가 3년 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LPGA투어 진출의 꿈을 이뤘던 곳이기도 하다. 전 선수는 재단에 매년 1만 달러씩 내놓기로 했다. 재단은 앞으로 랭커스터 컨트리클럽의 캐디와 직원 자녀를 포함한 지역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아울러 모교인 고려대학교에도 꿈을 이루려는 학생들의 노력에 보탬이 됐으면 하는 의미에서 2년 전부터 연간 1억 원씩 기부하고 있다. 그는 “저 역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많은 분의 도움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며 "제가 꿈을 이룬 곳에서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계획했다"고 말했다.

    전 선수는 꿈을 좇는 학생들에게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마라”고 조언한다.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는 순간부터 자신을 끝없이 초라하게 만든다는 것. 그는 “골프 경기를 치를 때 상대 선수가 아닌 코스와의 싸움에서 이기려고 노력한다”며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상대 선수가 경쟁자가 아닌 함께 경기를 치르는 동료로 보이고, 이들의 우승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사람마다 인생의 꽃이 피는 시기가 모두 다르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일찍 꽃이 피기도 하고 누군가는 늦게 피기도 하죠. 이를 간과하고 다른 사람과 끝없이 비교하다 보면 결국 저 자신만 초라해질 뿐입니다. 현재 제 인생의 꽃은 아직 완전히 피지 않은 봉오리 단계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제 꽃을 활짝 피우기 위해 무수히 많은 노력을 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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