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아이패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음성 봇 서비스 시리(Siri)를 사용해보았다. 편했다. 써보기 전에는 목소리로 스마트폰을 구동한다는 일이 얼마나 편한지 감이 오지 않았다. 막상 써보니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편했다. 손을 쓰기가 버거워질 정도였다.
스마트폰을 켠다. 알람 앱을 선택한다. 시간을 선택하고 알람을 세팅한다. 스마트폰으로 알람을 예약하는 방법이다. 편해 보인다. 시리를 쓰면 더 편하다. ‘헤이 시리’라고 부르고 ‘내일 아침 일곱 시에 알람 맞춰줘.’라고 말하면 끝이다.
속도가 생명인 업무에서도 시리는 위력을 발휘한다. ‘시리 xx 구글로 검색해줘’라고 부탁하면 바로 자료를 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정보와 강의를 더욱 빠르게 찾아서 업무에 반영할 수 있는 셈이다.
암기가 필요 없다는 의견이 최근 교육계에 퍼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이기기 위해서는 암기식이 아닌 창의 교육을 해야 한다는 종류의 의견이다. 모든 정보가 다 인터넷에 있는데 왜 외워야 한다는 의견이다.
일견 일리 있어 보인다. 알파고는 이세돌에 이어 커제를 더욱 무참하게 이겼다. 암기와 계산에서는 사람이 기계를 따라올 수 없다는 명제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분야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모든 계산에 사람의 손길이 필요했다. 회계, 경리 담당 수요가 많았다. 전산 기술이 발달하며 경영 지원팀의 규모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예전에는 사람이 모든 법을 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빠르게 관련 법령을 검색해서 찾아볼 수 있다. 모든 분야에서 ‘기계의 도움’이 점차 커지고 있다.
생산성 도구 에버노트는 그 정점이라 할 만 하다. 에버노트는 메모 저장 프로그램이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입력한다. 태그를 붙여 저장한다. 필요할 때 불러온다. 별것 아닌 앱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실상 에버노트는 ‘내 두뇌’를 확장하는 도구다. 에버노트 태그 시스템을 잘 갖춰 놓으면 즉각 내 생각과 지식을 불러올 수 있다. 이런 시대에 암기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물론 가치가 있다. 다니엘 윌링햄 버지니아 대학교 심리학 교수는 지난 19일에 쓴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구글 시대에도 암기의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선 암기는 어떤 생산성 도구보다 빠르다. 아무리 검색기술이 발달해도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떠올리는 일보다 빠르기는 어렵다.
맥락 파악도 중요하다. 기계는 암기에 뛰어나다. 하지만 맥락 파악은 다르다. 바둑처럼 2차원 판에서 유한한 경우의 수를 따진다면 기계가 유리하다. 하지만 현실에 무한하고 자유로운 세상에서 맥락을 잘 짚는 일은 사람이 위다. 실제로 기상 예측에서 기계는 계산을 담당하고, 사람은 맥락 확인을 담당하자 가장 예측 확률이 올랐다고 한다. 맥락 파악을 위해서는 일단 정보를 알아야 하니 암기는 여전히 필요한 셈이다.
무엇보다, 기계를 잘 쓰기 위해서 암기가 필요하다. 모든 걸 정확하게 알 필요는 없다. 검색하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있는지도 모르는 정보’를 찾아줄 수는 없다. 기계와 협업을 위해서라도, 인간은 촌스럽게 암기 공부를 해야 하는 셈이다. -
-
- ※에듀포스트에 실린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Copyright Chosunedu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