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신진상입니다. 오늘은 지난 주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 생활 기록부 기재 요령 변경에 관한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교육부가 24일 발표한 학생부 기재 요령의 변경의 핵심은 학종에서 소논문 독서 방과후학교를 퇴출시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밖에는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학생부 입력 주체의 정정, 학생부 나이스 시스템 개선, 학생부 관리·기재의 책무성 강화 및 인식 개선 등은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서요, 학생부 종합을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모는 이 세 가지 변화의 함의를 해석하시고 미래 입시 전략을 짜셔야 할 것 같습니다.
소논문 독서 방과후학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사교육 개입의 가능성이죠. 즉 정부는 학생부 종합에서 사교육이 개입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소논문은 교과학습발달상황이나 창의적 체험활동의 ‘동아리’영역에 정해진 지침 없이 입력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그랬던 것이 교육과정 내에서 사교육 개입 없이 학교 내에서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수행한 과제 연구만 기재할 수 있고(즉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 쓴 것은 절대 적을 수 없고) 정규 교육과정 이수 과정에서 사교육 개입 없이 학교 내에서 학생 주도로 수행된 연구 주제 및 참여 인원, 소요 시간만을 기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이죠.
학교 교복이 학생들의 자아존중감에 미치는 영향(3명, 30시간)
대학들이 이것으로 무엇을 평가할 수 있을까요? 소논문을 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 학생에 대한 인상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을까요? 소논문 혹은 R&E 등은 주로 특목고 자사고에서 하는 프로그램이지, 일반고에서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니 평가에 배제해야 한다면 물론 할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독서는 어떨까요? 독서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기존 : 과목 또는 영역별 학생의 독서 성향과 읽은 책 및 저자를 기록
개선 사항 : 독서 성향 등은 기재하지 않고, 읽은 책의 제목과 저자만 교과 담당교사 또는 담임교사가 확인하여 기재, 독서 과정의 관찰·확인이 어려운 독서 성향 등은 기재하지 않고, 읽은 책의 제목과 저자만 기재하여 독서활동 기록의 신뢰도 제고
즉 책 제목과 저자 이름만 쓰고 읽고 나서 느낌, 책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 변화 등은 기록하지 말라는 겁니다. 책 목록만 쓰라는 이야기죠? 대학들이 학생들이 정말 책을 읽고 썼는지 확인할 수 없어 신뢰도가 떨어져 신뢰도를 제고하기 위해 내린 조치라면 책 제목과 저자 이름만 적혔다고 해서 “아 이 학생이 책을 정말 많이 읽었구나”라고 믿고 점수를 줄 수 있을까요? 지금도 서울대를 제외한 나머지 대학들은 “우리 대학은 독서 활동 상황 안 본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데 학생부가 이렇게 바뀌면 신뢰도가 오히려 감소하는 것 아닐까요?
책을 읽고 책 제목과 저자 이름만 쓰는 게 “그동안 결과 중심으로 기재되어 왔던 학교생활기록부를 상시 관찰 및 누가기록을 바탕으로 기재하도록 개선하여 학생의 성장과 학습과정 중심의 기록이 되도록 하였다.”는 교육부의 주장을 뒷받침하나요? 누가 봐도 결과 중심 기록 아닌가요? 아예 읽은 책 권수만 적게 하면 어떨까요? 독서만큼 학생을 성장시키고 그 과정에서 지식과 생각하는 힘이 늘고 그밖에도 학습 효과가 얼마나 많은데(사실 수능 국어의 가장 좋은 공부법도 독서입니다. 책을 많이 읽어 독해력을 갖춘 학생들은 따로 사교육 받지 않아도 국어 점수가 잘 나옵니다)왜 정부는 입시에서 독서를 배제해 독서가 정작 필요한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게끔 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그 다음 이어지는 문장으로 알 수 있습니다.
“학교 및 교사의 학생부 기재 수준 차이로 인한 신뢰도 저하를 최소화하고자 서술형 정성평가 항목을 중심으로 표준 가이드라인을 제시”
즉 학교마다 학교 선생님마다 차이가 나는 내용을 표준화시키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표준화가 결과적으로 학생부의 하향 평준화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사실이죠.
독서 활동 상황은 물론 자사고와 외고 일반고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고에서도 개인적으로 열심히 책을 읽고 아주 차별화된 독서 활동 기록을 남기는 학생들이 적지 않습니다, 과연 이들의 노력이 책 제목과 저자 이름만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AP 대학 심화 수학 맨큐의 경제학 등이 개설될 수 있는 방과후학교, 그리고 사교육의 도움이나 일부 환경 좋은 자사고처럼 대학교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소논문과 달리 독서는 사교육 도움 받지 않고 얼마든지 자기주도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독서는 수업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과외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책도 스스로 골라 읽고 혼자 읽으면서 독서력도 늘고 자기주도학습 능력도 함께 생겨나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이 공부하고자 하는 전공에 대한 관심과 열정도 생기겠지요. 이렇게 교육 효과가 좋은 독서를 물론 입시 때문에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알아서 스스로 해야 한다. 독서만큼은 입시와 무관한 청정구역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실제 기존에 책을 좋아하고 읽는 습관을 갖춘 상위권 학생들에게만 계속해서 책을 읽게 됩니다. 정말 책이 필요한 학생들은 어느 정도의 강제적 책읽기가 도움이 됩니다. 성장기, 특히 중요한 청소년 기에 독서 습관을 쌓지 않으면 평생 책을 멀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청소년기 독서 습관의 차이는 고등학교 성적의 차이 뿐 아니라 사회에 나가서 삶의 질의 차이로까지 이어질 겁니다. 지식의 양부터 시작해 세계관, 삶의 만족도,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통찰, 세상에 대한 이해, 문제해결능력 등등˗
다소 과격한 주장이 될 수 있지만 정부가 나서서 책을 안 읽는 학생들을 강제라도 책을 읽게 하는 것-그보다는 책을 읽을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미래에 벌어질 책 읽은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삶의 질의 차이를 줄여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길은 현실적으로 입시에서 독서를 반영하는 방법 외에는 없죠. 입시를 위한 독서는 주객이 전도된 순수하지 못한 독서라고 해도 그 결과 학생이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면 때로는 그 결과가 목적의 비순수성을 순수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물론 독서를 하는 이유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저 역시 대입을 위해 책을 읽지 말고 미래를 위해서 책을 읽으라고 제 제자들에게 주문합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미래를 위한 독서는 교육의 이상일 수 있겠으나 실제 학생들이 책을 읽게끔 만들어주는 동기는 입시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여부입니다. 어려서부터 독서 습관이 형성된 학생 외에 다수의 학생은 입시와 관련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하는 게 현실의 입시 세계의 규칙이거든요. 당장에는 대학 가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독서가 중요한 걸 누가 모르나요? 다만 내신 수능 등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에 즉 시간이 없기 때문에 못 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입시를 위한 독서’라는 욕을 먹는 일이 있더라도 독서가 이상의 영역이 아닌 현실의 영역 즉 입시에 꼭 발을 담궈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입시를 위한 독서는 물론 최선은 아니고 사교육의 개입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독서가 어떤 식으로든 입시에 반영이 되는 것이 차선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아서 책 읽는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책보다는 게임이나 스마트 폰을 찾는 그런 학생들)들 간에 생길 미래의 차이를 국가가 나서서 조금이라도 줄여주는 게 필요하지는 않을까요?
개인적인 바람이 하나 있다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 독서 활동(즉 책 제목이나 저자가 아닌 학생의 생각이나 느낌 변화 등등)만큼은 다시 원래대로 학생부에 기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독서는 그다지 사교육 유발 효과도 크지 않고 책을 안 읽는 학생에게 입시 때문이라도 억지로 읽히게 하는 것이 본인은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믿음은 굳건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학생부 종합의 취지는 수능 혹은 내신 등 정량화된 점수 혹은 등수 경쟁에서 학생들의 자유를 허해 학생들이 자신의 꿈과 끼를 찾아 책도 읽고 진로 탐색 활동도 하라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지금 학생부 종합은 거꾸로 가는 것 같습니다. 다른 비교과 활동, 특히 학교 바깥에서 할 수 있거나 소논문처럼 고액 사교육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 비교과 활동은 입시에서 배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독서 활동이 소논문이나 기타 외부활동과 함께 묶여 입시에서 배제된다면 그것은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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