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진의 교육 성장] 공부는 왜 하는가? (18)
입력 2014.12.23 10:49
  • 오늘날 우리는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돈을 갈망하는 화폐 집착의 시대에 살고 있다. 물질 중심의 현대사회에서 돈은 불안을 달래주는 안정제요 허영심을 채워주는 흥분제로 기능한다. 그래서 인정이 메마르고 고독한 사회일수록 화폐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돈으로는 진실한 사랑과 우정을 쌓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 가치는 실질적으로 대단치가 않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채취와 수렵으로 살아가는 원주민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일주일에 열댓 시간만 일하고 나머지는 여유 있게 오락과 예술 활동을 즐긴다고 한다. 종종 매스컴 영상에도 등장하는 그들의 얼굴은 구김살 없이 해맑다.

    우리는 G20에 속하는 복지국가 국민이며, 주당 40시간 이상 성실하게 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사는 문제에 얽매여 늘 전전긍긍한다. 집 살 돈이 없으니 결혼을 할 수 없고, 결혼할 수 없으니 연애조차 엄두를 못 내고……. 삼포세대라 불리는 계약직 청춘들에게 이 시대, 이 사회는 야박하기 짝이 없다. 죽어라 공부했는데 안정된 삶이나 미래가 보장되지 않으니 세상을 사랑할 맛이 나겠는가?

    그렇지만 이 문제는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정책의 오류에서 비롯된 바가 크며, 머잖은 장래에 바로잡힐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서로를, 세상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사랑은 주는 것이다.
    사랑은 개수를 헤아리거나 무게를 측정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래서 누구와 얼마를 주고 얼마를 받았는지 계산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개인은 자유 의지에 따라서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지만, 타인에게 얼마의 사랑을 달라고 요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둘째, 사랑에는 조건을 붙일 수 없다.
    당신이 이러저러하면 내가 당신을 사랑하겠노라고 조건을 붙이는 것은 회유나 거래, 혹은 압박일 뿐 사랑이 아니다. 이는 흔히 부모가 자녀에게 저지르는 잘못 중의 하나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심리 흔들기와 다르지 않다.

    셋째, 사랑의 진정성은 비언어적 메시지로 전달된다.
    다른 사람이 내 옷에 커피를 쏟았을 때, 흔히들 ‘괜찮다’고 말한다. 여기서 ‘괜찮다’는 의례적인 표현일 뿐이고, 진정한 마음은 찰나의 순간에 비언어적 메시지로 전달된다. 눈빛이나 낯빛, 근육의 떨림이나 경직, 숨소리, 몸짓, 억양, 어투 등의 섬세한 요동이 적나라하게 감정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랑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겉으로 드러나는 말이나 행동이 비언어적 메시지와 일치하는 경우에만 진정성이 전달된다.

    넷째, 사랑은 계약할 수 없는 것이다.
    한때 사랑한 것을 두고 평생 지불되는 연금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사랑하다’라는 동사는 행위가 동반되는 순간에만 실천한 것이 되며, 그 여운이 남기는 하나 아주 오래 가는 것은 아니다. 결혼서약과 같은 계약을 맺으면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갖춘 것이 되지만, 조건을 갖춘 것과 사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따라서 결혼 관계나 가족 관계를 사랑의 계약이라고 확대 해석하면 제대로 사랑하기 어렵다. (19회에서 계속)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 외 다수 저술 / 2012 올해의 과학교사, 2006 서울시 우수 상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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