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격 상처 잊고 열심히 공부"
입력 2010.12.02 00:32
피란 중인 연평도 어린이들, 인천 영어마을서 만나다
  • 눈앞에서 터진 포탄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을 텐데도 연평도 아이들은 의연했다.

    지난달 30일 인천 영어마을(인천시 서구 당하동)의 한 교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의 어린 시절을 다룬 영어 위인전 ‘Little Gates(꼬마 게이츠)’를 놓고 교사와 학생들이 한창 수업 중이었다. 교사가 책 표지를 가리키며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게이츠가 누군지 아는 사람?” “저요, 저요!”

  • 지난달 30일 오후 인천영어마을 체험학습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인천 연평초등 어린이들이 원어민 강사의 지도 아래 수업을 듣고 있다. / 인천영어마을 제공
  • 이들은 인천 연평초등학교 4·5학년생들이다. 이날로 이틀째 인천영어마을에 입소해 다양한 체험학습에 참가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있었던 북한의 연평도 대포 공격으로 도내 초·중·고교생들은 정상적 학교생활을 못하는 상태.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우영 재단법인 글로벌 에듀 이사장은 글로벌 에듀가 운영하는 인천 영어마을에 일정 기간 학생들을 입소시킬 것을 학교가 있는 옹진군청에 제안했다. 군청이 이를 받아들이며 연평도에 살고 있던 초·중·고교생 106명(초 70명, 중 25명, 고 11명)은 5박 6일짜리 인천 영어마을 체험학습 프로그램(1인당 참가비 48만원)에 무료로 참가하게 됐다. 인천시교육청은 때를 맞춰 영어마을에 전문심리치료사를 파견, 희망 학생을 대상으로 심리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학생들은 이곳 생활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었다. 5학년 이인영 군은 “이곳에 오기 전 묵었던 찜질방은 밤마다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었다”며 “연평도를 떠나온 후 제대로 잠든 건 어젯밤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4학년 장진성 군은 “여기 오니 낮과 밤을 구분할 수 있는 게 제일 좋다”고 말했다. 이들이 머물렀던 찜질방은 창마다 검은색 선팅(sunting·햇빛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유리창의 겉면에 수지 따위의 얇은 막을 입히는 일)이 돼 있어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피격(被擊·사격을 받음) 당시의 공포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학생도 있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던 중 포탄 소리를 들었다는 4학년 차수경 양의 표정은 어두웠다. “창문이 흔들리고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려 지진이 난 줄 알고 재빨리 책상 아래로 숨었어요. 몸을 웅크리고 있는데 ‘이대로 죽으면 어쩌나’ 싶어 눈물이 핑 돌았어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도 이날 인천 영어마을을 찾았다. 이 장관은 학생들에게 “학창시절 6·25 전쟁을 겪은 할머니·할아버지 세대는 천막 아래에서도 책과 펜을 놓지 않았다”며 “용기 잃지 말고 역경을 잘 이겨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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