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선(1676~1759년)의 그림을 보자. 정선이 살던 곳의 근처에 있었던 ‘인왕산’을 그린 작품이야. ‘인왕제색도’는 ‘비 갠 뒤 인왕산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지. 정선은 76살의 나이에 이렇게 힘에 넘치는 그림을 그려 냈어. 정선의 작품 세계가 모두 이 그림 한 폭에 담겼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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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 ‘인왕제색도’, 종이에 수묵, 79.2X138.2cm, 호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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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려 나간 봉우리
가장 먼저 뭐가 눈에 띄니? 그래, 맨 위쪽의 인왕산 봉우리야. 마치 철모를 뒤집어 놓은 듯 검고 둥글게 생겼어. 이 그림 속 바위는 모두 검은색이야. 그것도 먹을 한 번만 칠한 게 아니라 몇 번이나 덧칠했어. 아예 붓털을 눕혀서 빗자루로 쓸듯이 말이야. 안 그래도 무거운 바위가 더욱 무거워 보이잖아. 비장한 느낌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거야.이상한 점이 있어. 잘 찾아봐. 그래, 봉우리 윗부분이 싹둑 잘려 나갔어. 그러니 긴장감이 더해지잖니? 원래 잘려 나간 부분에는 시가 적혀 있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면서 그 부분을 잘랐대. 정선 자신과는 관계없는 시였거든. 원래 작품 그대로라면 더 좋았겠지만, 이 그림은 윗부분이 잘려나가면서 더욱 볼 만하게 변했어.
인왕산 그림은 또 하나 있어. 강희언(1710~1784년)이 그린 ‘인왕산’이야. 늦은 봄, 맞은편 산에 올라 인왕산을 바라본 장면이지. 골짜기 속에 파묻힌 집들도 아늑하고, 활짝 핀 복사꽃도 따사로워. 같은 산이라도 화가의 마음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거지.
● 누구 집일까?
봉우리 옆 능선을 따라 성벽이 둘러쳐졌어. 군데군데 소나무도 심어 놓았지. 둘 다 대충 쓱쓱 그렸는데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잖아. 능숙한 붓놀림이야.
검은 바위 외에 흙산은 쌀알 같은 점을 찍어 표현했어. 정선이 산을 그릴 때 쓰는 독한 방법이지. 밑에는 하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어. 산수화에서 먼 곳과 가까운 곳은 이렇게 안개로 구분하기도 한단다. 여기서는 실제로 비가 많이 내린 뒤 피어나는 물안개를 표현했다고 볼 수 있어.
오른쪽 아래에는 울창한 나무숲이 있어. 그 사이로 기와집 한 채가 보이지? 과연 누가 사는 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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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희언, ‘인왕산’, 종이에 담채, 24.6X42.6cm,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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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의 절친한 벗 이병연
바로 이병연(1671~1751년)의 집이래. 이병연은 정선의 가장 절친한 벗이었지. 정선이 그림으로 유명했다면 이병연은 글로 이름을 떨쳤어. 정선이 5살 아래였지만, 둘은 개의치 않고 마음을 텄어. 둘은 가까이 있을 때는 하루가 멀다고 만났지. 하지만 서로 멀리 떨어졌을 때는 어떻게 했을까? 정선이 그림을 그려 보내면 이병연은 거기에 글씨를 썼고, 이병연이 글을 보내면 정선은 그림을 그렸어.그런데 어느 날 이병연이 큰 병에 걸렸어.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이었지. ‘인왕제색도’는 바로 이때 그린 그림이야. 형제보다 가까운 친구가 위태로우니 얼마나 안타까웠겠어. 몇 번이고 겹쳐 칠한 검은 봉우리는 마치 슬픔을 덧칠한 것 같잖아. 그래서 저렇게 비장한 그림이 된 거야. 이병연의 병은 나았냐고? 아니, 정선의 기원에도 불구하고 며칠 뒤 죽고 말았어. 이를 예견이라도 한 듯 물안개가 슬픔처럼 피어오르고 있단다.
슬픔을 덧칠한 검은 봉우리로구나…
절친한 친구가 병에 걸리자 안타까운 마음에 그린 그림
산수화의 원근법, 안개로 구분
절친한 친구가 병에 걸리자 안타까운 마음에 그린 그림
산수화의 원근법, 안개로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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