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야박도>는 ‘강가에 놓인 밤배를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야. 그림을 봐. 왠지 어둡고 흐릿한 색이야. 오래되어 낡아서일까, 안개라도 잔뜩 낀 걸까? 그림이 금방 눈에 들어오지 않는걸?
▶먼 산과 가까운 산
그림 전체를 훑어본 다음, 필요에 따라 다시 몇 부분으로 나누어 보자. 그림이 확 빨려 들어올 거야. 이 작품은 위, 가운데, 아래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야 보기에 편해.
맨 위쪽에는 산이 보여. 왼쪽 봉우리는 크고 높은데 오른쪽은 좀 낮아. 둘 다 가까운 산이야. 그 사이로 작은 봉우리가 흐릿하게 보이지? 아주 멀리 떨어진 산이야. 가까운 산은 크고 진하게, 먼 산은 작고 옅게 그렸어. 산수화에서 산을 나타내는 방법이지.
그 아래는 작은 마을이야. 집이 몇 채 보이잖아. 배가 있는 걸 보니 강 마을인가 봐. 그런데 마을과 산은 흐릿한 안개로 나뉘었어. 산수화에서는 먼 곳과 가까운 곳을 이렇듯 안개로 구별하거든.
맨 아래는 나무가 우거진 숲이야. 땅과 바위는 점을 찍어 표현했어. 군더더기 없는 능숙한 붓질이지. 전체적으로 보면 산, 물, 숲이 잘 어우러진 전형적인 산수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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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정, <강상야박도>, 비단에 담채, 153.8X60.8cm, 국립중앙박물관 / 심사정, <파교심매도>, 비단에 담채, 115.0X50.5cm,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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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위에 뜬 배만 불이 밝구나
중심은 역시 가운데 강이야. 작품의 중요한 무대지. 강둑에는 버드나무가 보여. 가지가 축 늘어진 걸 보니 여름이야. 배는 그 아래에 있어. 좀 더 가까이 가 볼까?
아, 누가 탔어. 노 저을 생각도 없이 그냥 쪼그리고 앉았네. 어쩐지 쓸쓸해 보여. 배 위에 뭔가 걸렸지? 맞아, 등불이야. 아하! 이제야 알겠어. 그림이 어둡고 흐릿한 까닭을. 어두운 밤이거든. 밤이라! 옛 그림은 대개 달을 그려 밤을 표현하는데 여긴 달도 없어. 사방이 깜깜해. 그저 막막할 뿐이지.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마음이 그랬나 봐. 누가 불 좀 밝혔으면 좋겠어.
옳지, 배 위에 희미한 등불이 켜졌네. 어둠을 밝혀 줄 한 줄기 빛이야. 하지만 여전히 어두워. 한 사람 주위만 겨우 밝힐 뿐이지. 저 사람, 아무 데도 갈 수 없으니 쪼그리고 앉았나 봐.▶겨울에 그린 여름 풍경
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라고? 아니야, 세상 어디에도 이런 곳은 없어. 집 안에 앉아서 그린 상상의 풍경일 뿐이지. 더욱 이상한 건, 추운 겨울날 이런 여름 풍경을 그렸다는 점이야.
대체 있지도 않은 풍경은 왜 그렸을까? 심사정의 이야기를 들으면 알 수 있어. 이 그림을 그린 심사정은 평생 힘들게 살았단다. 할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렸거든. 추운 겨울이 되면 자신의 신세가 얼마나 더 쓸쓸했겠니. 옛날에는 겨울나기가 정말 어려웠거든. 그래서 따뜻한 여름을 그렸는지도 몰라. 힘없이 웅크린 사공을 심사정이라 여긴다면 너무 억지일까? 심사정은 <파교심매도>란 작품에서도 중국 시인 맹호연이 눈 덮인 산에서 매화를 찾으려고 파교라는 다리를 건너는 장면을 표현했어. 선비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삶이고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진 삶이지. 심사정의 작품이 그랬어. 실제 삶보다는 이런 이상적인 삶을 추구했지. 현실이 비참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라.
여름 그리며 힘든 추위 잊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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