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조 선생님의 옛 그림 산책] 장승업의 ‘호취도’
입력 2010.06.04 09:31
자유로운 매, 떠돌이 화가와 꼭 닮아
  • 장승업(1843~1897년)은 안견·정선·김홍도와 더불어 조선의 4대 화가로 손꼽혀.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처럼 장승업도 ‘원’자가 들어간 호를 썼지. ‘두 사람만 원이냐. 나도 원이다’라는 뜻으로 ‘나 오(吾)’자에 ‘동산 원(園)’자를 써서 ‘오원’이라는 호를 썼어. 대단한 자부심이지?

    ▶너만 원이냐, 나도 원이다

    놀랍게도 장승업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까막눈이야. 아주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이리저리 떠돌며 남의 집 머슴을 살았는데, 글 배울 틈이 어디 있었겠니. 그림은 언제 배웠느냐고? 혼자 깨쳤나 봐. 곁눈질로 말이야. 정말 대단하지?

    장승업은 한때 이응헌이라는 관리 집에서 머슴을 살았어. 이응헌은 많은 그림을 갖고 있었는데, 장승업이 그림들을 눈여겨보았나 봐. 어느 날, 장승업은 이응헌이 깜짝 놀랄 정도의 그림을 그렸다지 뭐야? 그 뒤로 집안일 대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대.  

    ▶화가의 자유분방함

    장승업은 한곳에 얽매이는 걸 무척 싫어했대. 떠돌이 생활이 몸에 배서 그런가 봐. 이런 일화도 있어. 장승업은 궁궐에서 쓸 병풍을 그리라는 고종 임금의 부름을 받았어. 최고의 솜씨를 인정받은 게지. 하지만 궁궐은 임금이 사는 곳이니 얼마나 간섭이 심했겠어. 결국 장승업은 궁궐 밖으로 도망쳐 버렸지. 장승업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몰라. 평생을 한곳에 머무르지 않았으니까. 이런 자유분방한 성격을 잘 말해 주는 그림이 바로 ‘호취도’야. 

  • 장승업, ‘호취도’, 종이에 담채, 135.4X55.4cm, 호암미술관 (왼쪽) / 장승업, ‘꿩과 메추라기’, 종이에 담채, 135.4X55.4cm, 호암미술관(오른쪽)
  • ▶무얼 노리는 걸까

    그림을 들여다보렴. 가지 위에 매가 한 마리씩 앉았어. 먹잇감을 발견한 건가, 두 마리가 동시에 한 방향을 쳐다보고 있어.

    위쪽 매는 몸을 홱 틀었어. 나뭇가지 모양도 매의 몸처럼 심하게 뒤틀렸어. 매와 가지는 지금 한몸인 셈이지. 아래쪽 매도 같은 쪽을 보고 있어. 서로 경쟁하듯 먹이를 노리는 걸까. 그러기에는 자세가 너무 느긋하지.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황조롱이를 본 적이 있어. 황조롱이는 반드시 수컷만 사냥을 하지.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더구나. 새끼에게 먹이를 나눠 주는 일은 암컷 몫이었어. 그렇다면 이 그림에 있는 매도 위쪽은 수컷, 아래쪽은 암컷 아닐까? 그래도 눈매는 둘 다 여전히 매서워.

    ▶진정한 하늘의 왕

    ‘호취도’는 ‘사나운 매를 그린 그림’이란 뜻이야. ‘꿩과 메추라기’라고 이 작품과 비슷한 그림이 있어. 두 그림은 함께 그렸다고 알려졌지. ‘꿩과 메추라기’를 보렴. 두 마리 새가 ‘호취도’처럼 고개를 튼 모습이잖아. 나뭇가지에 앉은 새가 꿩, 아래쪽이 메추라기야. 꿩의 사나운 눈매가 매 못지않아. 모두 야생의 느낌이 확 살아 있지.

    하늘의 제왕, 사냥의 명수인 매는 화가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거야. 그러니 매를 그린 화가들이 많지. 하지만 장승업의 ‘호취도’처럼 사나운 매는 본 적이 없어. 매의 특징을 기막히게 제대로 잡아냈거든. 장승업은 사물을 면밀히 관찰해서 그 특징을 끄집어내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단다. 조선의 4대 화가라는 찬사가 결코 허풍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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