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학을 온 것은 대학 입학때였지만, 애틀란타에 처음 온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중학교 친구들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미국행(行)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기억이 난다. 입학 첫날,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공립학교에 입학한 나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을 봤다. 쉬는 시간과 수업 시간을 불문하고 화장실에서 마약을 하는 아이들. 총을 가져와 경찰차가 출동한 사건. 아이들의 잦은 싸움과 온갖 인종차별. 이런 곳에서 4년을 보낼 생각을 하니 처음에는 까마득했다. 친구들의 말에 상처 안 받고 적응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버지의 발령에 따라 일본에서 고3을 맞이하게 된 나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한국, 일본 아니면 미국이라는 갈림길에 놓여 있었다. 선택은 미국이었다. 미국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안 좋은 추억이 많긴 했지만 그런 힘든 시기를 거쳐서인지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분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부모님 역시 의견을 존중해주셨다. 또한 미국 대학은 자유분방하고 개개인의 인격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들었기 때문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에모리대는 학생들이 생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많은 부분에서 배려해준다. 캠퍼스 분위기도 개방적이다. 세계 곳곳에서 온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허물없이 지낸다.
몇몇 특정학과를 제외하고는 3학년 때 전공을 정하는 제도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의학 분야에 뜻이 있었던 나는 1,2학년 때 전공과 관계없이 생물학과 물리학을 비롯해 외교 등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결국 외교와 인권 분야에 관심을 갖게 돼 전공을 아시아학으로 정했다.
유학생활을 되돌아 보면, 즐거운 나날들만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현지 아이들과 비교해 극복할 수 없는 영어 실력의 차이로 열등감도 많이 느꼈다. 특히 토론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또한 그들은 일찍부터 토론 위주의 수업으로 자신의 의견을 마음껏 발휘하는 데 익숙했다. 주입식 교육이 일상화된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토론 수업이 있는 날에는 항상 전날 관련 기사나 책을 읽고 준비를 철저히 했다. 유학을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 된다. 화려한 겉면을 걷어내면 힘든 실생활이 숨어있다. 하지만 10대, 20대 시절을 외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은 인생을 놓고 봤을 때 분명 좋은 자극이 된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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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개방적이고 전공은 3학년때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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