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강의(曹操講義)
기사입력 2012.05.21 00:24

지상최고의 기회주의자, 조조의 재발견!



  • 저자 위타오 옮김 황보경 

    출판사 지식트리


    도서정보 252쪽| ISBN 9788996819028 | 가격 138,000원

    “싸워야 할지 피해야 할지를 아는 자가 살아남는다!” 절호의 기회를 기다리는 당신을 위한 2000년의 지혜와 지략! 이상과 실리를 모두 거머쥔 유일무이한 인물, 조조에게 배우는 이기는 전략! 중국 CCTV 인기 강사 위타오의 역사와 문학, 자기계발의 경계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역사 강의! 원칙과 기회, 지혜와 계략, 이상과 실리, 성공과 기회, 이 모든 것을 탐하라! 당신이 아는 조조는 과연 누구인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마다 되살아나는 조조의 용인술과 리더십! 중국 CCTV 방영, 조조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화제의 명강의! 중국 최고의 역사학자 위타오 박사가 재해석하는 조조의 모든 것!

  • “싸워야 할지 피해야 할지를 아는 자가 살아남는다!”

    절호의 기회를 기다리는 당신을 위한 2000년의 지혜와 지략! 이상과 실리를 모두 거머쥔 유일무이한 인물, 조조에게 배우는 이기는 전략! 중국 CCTV 인기 강사 위타오의 역사와 문학, 자기계발의 경계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역사 강의!


    원칙과 기회, 지혜와 계략, 이상과 실리, 성공과 기회, 이 모든 것을 탐하라!
    당신이 아는 조조는 과연 누구인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마다 되살아나는 조조의 용인술과 리더십!
    중국 CCTV 방영, 조조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화제의 명강의!
    중국 최고의 역사학자 위타오 박사가 재해석하는 조조의 모든 것!


    조조가 활약한 위진남북조 시대부터 지금까지 180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가 여전히 조조에 대한 많은 의견이 오가는 것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넘치는 카리스마와 용인술, 경영법 때문일 것이다.
    위타오 박사의 ≪조조강의≫는 중국 CCTV <백가강단> 강연 프로그램에서 소개되어 3040 직장인들 사이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조조를 배우자’는 신드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위진남북조시대 전문 역사학자 위타오 박사는 역사(History)를 'Hi, Story' 곧 ‘이야기에 말 걸기’로 정의한다.  역사적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 기록 곳곳에 흩어져 있는 이야기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성공과 좌절을 그대로 느껴야 한다는 것. 그의 역사관대로 위타오 박사는 이 책에서 단순하게 조조 개인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나라 말의 역사적 시공을 통해 그의 출신 성분을 분석한 후, 소년 시절과 전쟁터를 누비던 인생, 그의 정치적 야심, 가족사와 인간적 면모까지 풍부한 사료를 통해 분석하고 있다.
    먼저 사람들은 흔히 조조가 당당한 체격에 용맹스런 외모일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저자는 ≪세설신어용지世說新語容止≫에 나오는 일화를 인용하여 동진시대의 역사가 유준劉峻이 ≪위씨춘추魏氏春秋≫에서 조조의 외모가 “왜소하지만 위엄 있고 남자다운 기개가 넘친다.”고 묘사한 대목을 증거로 일반적인 조조의 이미지를 뒤집는다. 실제 《삼국지》와 같은 역사서들은 ‘위인의 생김새는 논하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관념을 반영하듯 인물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위타오는 조조의 이미지는 ‘논하는 사람에 따라 그 차이가 아주 크고, 많이 조작된 감이 있다’고 정리했다. 또한 철들기 전의 조조는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든 하고 마는 방탕한 소년이었다. 동진의 한 역사학자는 이런 조조의 성격을 ‘경망스럽다’고 했지만, 위타오는 단지 ‘진지하지 않은 성격’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조조의 ‘영웅들도 벌벌 떨게 만드는’ 분위기는 오랜 세월 동안 정치․군사적으로 수많은 싸움을 하면서 얻어진 것으로 현대의 나약한 남성들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다고 설명한다.


    뛰어난 머리로 삶을 개척한 삼국시대의 ‘혁명가’
    위타오 박사는 조조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을 발견했다. 바로 순욱荀彧이다. 순욱은 《삼국연의》에서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혼란스러운 역사의 물결 속에서 좌표를 설정하고,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는 조조를 천하 통일의 야망을 꿈꾸는 영웅으로 변신시켰다.
    위타오는 순욱과 조조의 공통점으로 수많은 고대 사학자들로부터 간교한 기회주의자들이라는 비판을 받았다는 점을 꼽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어지러운 세상에서 몸을 일으켜 함께 위업을 달성했다. ‘헌제를 받들어 제후들을 호령한다’는 단수 높은 계략은 순욱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위타오는 조조가 순욱을 죽였다는 설을 부정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순욱은 조조 정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그의 가문을 중심으로 한 사족 세력이 막강했기 때문이다.
    위타오는 조조가 내세운 ‘천자를 받들면서 제후들을 호령한다’는 구호 뒤에 숨겨진 의도가 무엇인지는 더 많은 연구가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조는 산동의 지방 세력들을 척결하려다 강력한 반발에 부딪치자 순욱의 권고에 따라 허수아비에 불과한 천자를 받드는 책략을 받아들였다. 청년기와 장년기에 성공과 좌절을 맛본  조조는 노년에 들어 ‘주공(周公)을 본받아 만백성의 인심을 얻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천하 통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겼다. 한 마디로 말해 조조는 삼국시대의 ‘혁명가’였다.
    마지막으로 위타오 박사는 우리가 조조를 단지 위대한 장군, 문학가, 정치가로 본다면 그의 참모습을 놓치는 것이라고 했다. 조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물로 생각하면서 그가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느낀 희로애락을 공감할 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 ∙책 속에서
    제남국國이 있었던 청주靑州는 황건적의 주요 근거지 중 하나였습니다. 황건적이 거침없이 단시간에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원인은 부패한 정치로 인해 백성의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제남 역시 탐관오리와 그 기생 세력들이 판을 쳤고, 자연재해가 극심했습니다. 조조는 부임 즉시 악랄한 지방 유지와 관리들을 처벌하고 풍속을 바로잡는 데 온힘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거침없는 행동에 겁을 먹고 다른 지방으로 도망간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제남에서 뜻한 바대로 성과를 올린 조조가 순탄하게 관리의 길을 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세상사는 그렇게 만만치 않으며 악의 힘이 훨씬 강할 때가 많습니다. 정의감에 불탄 조조가 환관들에게 단단히 미운털이 박혀 배척을 당한 것입니다. 환관 집안 출신의 조조가 같은 편이 되기는커녕 대립각을 세웠기 때문에 괘씸죄가 더 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리로서 보람도 느꼈지만 부정부패와 이기적인 행실에 실망한 조조는 건강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_34-35쪽․‘1강 기회를 스스로 만들라’ 중에서


    9월 25일에 동탁이 낙양에 입성했습니다. 27일에 동탁과 원소가 만났는데 이 날 원소는 낙양을 떠났습니다. 28일에 동탁은 조정 대신들을 소집해 유변(영제)을 폐위시키고 유협(헌제)을 황제로 옹립했습니다. 동탁이 낙양에 들어와 반란을 일으킨 날을 기점으로 조조와 원씨 형제가 낙양을 떠나기로 결심할 때까지의 시간은 겨우 25, 26, 27일 사흘뿐이었습니다. 환관 세력을 척결하는 데 4개월의 시간이 걸린 것과 비교하면 세 사람의 결정은 매우 신속하고 확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중략)_48쪽․‘2강 명분을 싸움의 중심에 두라’ 중에서

    산조에서 의식이 행해지는 같은 시각에 장하漳河 강안에서도 기주의 10개 군에서 모여든 10만의 군사가 출정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습니다. 원소는 의식을 주재하며 장홍과 똑같은 맹세를 했습니다. 원소는 노양(魯陽: 지금의 허난성 루산魯山)에서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이로써 낙양은 북부, 동부, 남부에서 공격을 받는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되었습니다.
    한편 산조에서는 엄숙한 출정 의식에 감동한 병사들이 당장이라도 동탁과 장렬하게 싸울 각오를 하고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장수들은 머뭇거리며 진군 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주맹인 장홍은 자사나 군수와 같은 고관들에 비해 하잘것없는 공조에 불과한 관리였으므로 자신의 뜻대로 군사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역적을 타도하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격정적인 결의는 한순간에 불과합니다. 막상 귀중한 목숨이 걸린 전쟁터로 떠나자니 모두들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함께 국난을 극복하자는 맹세는 집단적 광기의 일시적인 발산이었던 것일까요?_59쪽․‘2강 명분을 싸움의 중심에 두라’ 중에서


    사람들의 눈에 조조는 이제 국가의 주권을 지키는 완벽한 일인자였습니다. 다시 말해, 권력을 가진 자가 황제라 칭하거나 근거지를 만들어 일정 세력을 유지하려면 먼저 조조의 허락을 받아야 할 지경이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조조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자신은 천자를 폐할 생각도, 다른 천자를 등극시킬 생각도, 더군다나 스스로 황제가 될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점을 밝힌 것입니다. 조조는 천자를 귀히 모시지만 거리를 유지하겠으며,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고 수군대는 자들은 소인배가 군자의 뜻을 헤아리는 어처구니없는 짓이라고 일축했습니다. 조조는 자신의 진심에 대해 이렇게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나의 맡은 바는 군주를 모시고, 백성을 위하고,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 시대를 주도하기에는 조조를 방해하는 외부 세력이 너무 막강했습니다. 조조를 가로막은 외부 세력의 주체는 누구일까요?_92-93쪽․‘3강 불리하면 엎드려 때를 기다리라’ 중에서


    과거에 조조는 악의(樂毅: 전국시대 연나라의 무장)와 몽염(蒙恬: 전국시대에 제나라를 멸망시키고 만리장성을 완성한 진나라의 장군)을 존경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조는 악의의 말이 진리라는 것을 깨우쳤습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일을 잘 완성시키지는 않는다.”
    누구보다도 먼저 천하를 안정시키는 대업에 뛰어들기는 했지만 완성시킬 수는 없다는 한계를 깨달은 것입니다._179-180쪽․‘7강 크게 보고 멀리 보라’ 중에서


    위타오于涛지음
    역사학 박사이자 유명 저술가. 1970년 중국 산동성 지난濟南에서 태어나 산동山東대학교를 졸업하고,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역사와 문학, 심리, 자기계발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연구를 통해 탁월한 논문과 저서를 집필했으며, 특히 중국 위진남북조시대를 집중 연구하여 ⟪삼국전전三國前傳⟫을 발표한 바 있다. 2010년 중국 CCTV 프로그램  <백가강단>에서  ‘조조 강의’라는 타이틀로 중국사에서 영웅적 면모가 가장 뛰어난 인물 중 하나인 조조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생동적으로 묘사하여 3040 직장인들 사이에서 ‘조조를 다시 배우자’는 신드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큰 호평과 인기를 끌었다.
    위타오 박사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이며, 상벌을 확실히 하여 조직의 기강을 바로세우는 데 온힘을 쏟았던 조조야말로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인간상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조조 개인에 대한 평가만을 내리기보다 한나라 말의 역사적 시공을 통해 그의 출신 성분 및 소년시절과 전쟁터를 누비던 인생, 그의 정치적 야심, 가족사와 인간적 면모까지 풍부한 사료를 통해 입체적으로 분석․소개하며, 조조에 대해 잘못 알려진 부분을 바로잡고 있다. 간웅과 영웅으로 극단적으로 그려진 조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데 초점을 두었다. 위타오 박사는  현재 《문사지식文史知識》주임으로 재직하면서 희귀 문헌과 소실된 사료를 발굴, 연구하고 있다.


    황보경 옮김 |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대만대학에서 중국 근대사로 석사 학위를 받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중국어 통역과 번역을 전공했다. 현재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선문대 통번역대학원, 가톨릭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번역가 에이전시 하니브릿지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당 태종 읽는 CEO 읽는 CEO》《치국-옹정 원전》《패권의 법칙》《성공하는 자신을 디자인하라》《삼국지로 배우는 직장 성공학》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