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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라는 책이 있다. 2004년 출간 이후 아시아에서 38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내 나이 오십이 넘어 이 책을 알다니 살짝 억울하다. 진작 봤다면 내가 좀 더 똑똑해지지 않았을까? 적어도 나이 들며 속물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작가는 20대에 속물이 되어야 30대에 고단하지 않다고 말한다. 작가가 사는 마포에 찾아가 동네 구경도 하고 모녀 사는 이야기도 들어본다.
Q 20대는 꿈꾸는 나이가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나이라고 강조하시던데 작가님의 20대는 어떠했으며 왜 그런 메시지를 주시려 했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스물다섯 살에 결혼했습니다. 당시 방송작가로 일했는데 IMF경제위기로 방송프로그램이 대부분 폐지되었습니다. 남편은 학사장교로 군 복무중이라 둘 다 경제적으로 무능했습니다. 집에 돈이 없으니 매사 자신감도 없어지더군요. 서른 살쯤 되니 경제 문제가 조금씩 풀렸습니다. 이 무렵 쓴 책이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입니다. 지금은 전설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내용이 속물적이라고 거절했습니다. 전 포기하지 않고 여성포털 마이클럽에 연재를 시작했고 예상대로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이후 책은 아시아 8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제겐 언니가 없습니다. 현명한 언니가 인생에 관해 일러주었다면 아마 다른 20대를 살았을 것입니다. 이 책은 영리한 여자가 되는 길을 안내합니다.
Q ‘남인숙 작가’를 검색해보면 수십 권의 책이 나옵니다. 많은 작품을 쓰시는 원동력과 전업작가의 하루는 어떠한 지 궁금합니다.
A 치열했던 20대를 끝내고 경제적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을 때 전업작가가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책을 쓸 때 가장 행복하고 글쓰는 일을 가장 잘 하니까요. 요즘도 하루에 서너 시간 가량 글을 씁니다. 컴퓨터를 종일 켜놓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쓸 준비가 되면 집중적으로 씁니다. 글을 쓰다 힘들어지면 침대에 누워 이삼십 분 가량 눈을 감습니다. 에너지는 다시 충전되지요. 제 꿈은 ‘죽기 전까지 글을 쓰는 것’입니다. 크게 욕심 부리지 않고 완급을 조절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집에서 글을 쓰니 같은 공간에 작가와 주부가 공존하는 셈입니다. 가사 노동이야 남편과 나눠 하지만 자녀 양육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원고 마감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린 아이는 보채고 글은 나가지 않을 때 그 고통은 누구도 짐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고 우린 친구가 되었습니다. 언제 시간이 흘렀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Q 작가님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이 참으로 곱다고 느껴집니다. 사람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A 사람을 만나는 일은 제게 소중한 일입니다. 사람을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사람을 오래 지켜보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작가가 보는 그 사람의 인생은 한 편의 작품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어떤 목적을 갖고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글을 쓸 때 내 주변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지나가는 행인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본인들은 작품 속의 인물과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작가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니까요. 인연은 소중합니다. 그리고 가급적 행동으로 그 마음을 표현하려 합니다. 힘든 집필을 끝내고 오랜 인연들과 나누는 담소는 제게 또 다른 에너지를 줍니다. 제겐 사람이 매우 소중합니다.
Q 가장 소중한 인연인 따님 이야기 좀 해주세요. 중학교 2학년인데 그 무섭다는 중2병은 없는지요?
A 우리 딸은 집을 좋아합니다. 보통 아이들은 학교 시험이 끝나는 날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거나 놀이공원에 간다고 하는데, 바로 집으로 와서 목욕을 하거나 영화를 봅니다. 집에서 편하게 쉬는 게 최고라고 합니다. 평소에 저와는 대화를 많이 합니다. 여기서 대화는 결코 잔소리가 아니고 그냥 친구처럼 여러 주제를 갖고 수다 떠는 것입니다. 아이는 아빠를 닮아 컴퓨터도 능숙하게 다루고 저를 닮아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저는 아이에게 가급적 여러 가지 길을 제시하려 합니다. 아이는 충분히 고민한 후에 결정을 하고 빨리 실행합니다. 전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천천히 결과를 기다립니다. 우리 집에 중2병은 없습니다. 일상은 잔잔하고 때론 조용하기까지 합니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착한 딸이 있어 행복합니다.
[전문가의 팁] 인생이 힘들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많은 사람들이 인생이 힘들다고 합니다.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고,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하루하루를 부대끼며 사는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기도 합니다. 마음의 상처와 몸의 상처는 똑같습니다. 피가 나는 상처에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부쳐도 바로 낫지는 않습니다. 딱지가 생길 때까지는 기다려야 합니다. 마음의 상처도 그런 과정이 필요합니다. 지금 아프지만 시간이 흐르면 치유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상처를 잊고 다른 일에 매진하면 어느새 상처는 저절로 아물어집니다. 남의 상처라고 쉽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 또한 무수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살아야 하는 이유와 죽어야 할 이유를 확인했습니다. 전 글을 쓰기 위해 꼭 살아야 했습니다. 상처 위에 희망을 얹고 또 얹어 지금의 남인숙 작가가 되었습니다. (남인숙 에세이스트, 소설가 naminsook@facebook)
[샤론코치의 생각]
스물 두 살 우리 딸에게 작가님의 책을 넌지시 건넸다. 똑똑한 언니가 전해주는 메시지를 알려주고 싶어서다. 이십 대에 한 점의 방황도 없을 수는 없을 거다.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남인숙 작가가 책을 선물하면서 싸인 위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나도 이 자리에 답을 남긴다. ‘오래 지켜봐 주세요.’ 언젠가 작가의 작품 속에 내가 조금은 멋지게 표현되었으면 한다. 물론 내가 눈치 채지 못하는 인물로.
[샤론코치가 만난 워킹맘&워킹대디] 알파걸로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남인숙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