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진의 교육 성장] 공부는 왜 하는가? (12)
맛있는 공부
기사입력 2014.10.28 10:36
  • ‘성적 향상을 위한 특별한 공부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는 다음의 사례가 도움이 될 것이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수학 교과에서 백 점을 받았던 학생이 셋 있었다. 이들은 외모나 성격, 적성과 흥미, 지능지수나 성장 환경 등 모든 조건이 서로 달랐다. 그들 사이의 공통점이라고는 남학생이라는 것뿐이었다.

    ‘갑’은 어른들이 좋아하는 유형의 학생이었다. 그는 도덕군자형 원칙주의자로 부모나 선생님이 하지 말라는 것은 절대 돌아보지 않았고, 오로지 명문대에 입학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불철주야 노력하는 학구파였다. 그에게 3년 동안 모든 수학 시험에서 백 점을 받은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자신의 오답노트를 보여 주었다. 공부한 날짜와 시간, 문제와 풀이과정을 기록할 수 있도록 구성된 노트는 얼핏 평범해 보였는데, 특이한 것은 ‘평가란’에 적혀 있는 알파벳이었다. 몇몇 문제의 평가란에 D, C, B, A라는 표시가 거듭 적혀 있었던 것이다. 설명인즉, 한 번 틀린 문제는 12회 반복하여 풀기를 제1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문제풀이 과정을 이해한 정도에 따라서 매번 스스로 평가 등급을 매기고, 모든 문제를 A등급이 될 때까지 반복하여 푼다는 것이었다. 또한 난해한 문제와 친숙해지기 위해 재학습은 일주일이 경과한 후에 한다는 제2원칙을 세우고 이를 부단히 실천에 옮겼다고 했다.

    ‘을’은 자폐증이 있는 특수학생이었다. 무엇을 적거나 외우거나 하는 식의 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던 까닭에 대부분의 과목에서 낙제 점수를 받았는데, 희한하게도 수학만은 3년 내내 1등급을 유지했다. 가끔 연습장에 수학식을 적을 때도 있었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멍하니 칠판만 바라보며 지냈는데, 이것이 그가 하는 공부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전문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한 달 간 등교 정지를 당한 적도 있는데, 그것은 칠판 대신 여학생들의 앞가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새로운 버릇 때문이었다. 치한 취급을 받은 그의 시선은 짐작건대 여자들의 가슴 라인을 쌍곡선 함수로 계산하고 있지 않았을까.

    ‘병’은 중3 때까지 모든 과목에서 평균 수준의 학생이었다. 국어도 수학도 음악도 체육도. 사람에 대한 관심이 남달리 높은 학생이었으므로 인간관계를 다룬 과목이 있었다면 아마 우수한 성적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고등학생이 된 후에도 여러 과목에서 평균 수준을 맴돌았는데, 오직 수학만은 실력이 수직 상승하여 선생님도 인정하는 수학왕으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이 친구는 그 비결을 쉽사리 발설하지 않았는데, 어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비밀을 털어놓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대학생 누나에게 수학 과외를 받게 되었는데, 그녀를 열렬히 사모한 나머지 수학 정복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는 「수학의 정석」을 외우기로 작정하고 볼펜심 백 개를 사서 문제 풀이과정 쓰기를 무한정 반복했는데, 정확히 백일 만에 백 개의 빈 껍질을 손에 쥐고 회심의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갑 · 을 · 병 세 사람이 수학을 정복한 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몰입’이다. ‘갑’은 명문대 입학에 대한 열망이 성취동기가 되어 수학에 몰입했고, ‘을’은 수의 세계 자체에 몰입했고, ‘병’은 사랑 때문에 수학에 몰입했다. 셋 중에서 필즈상을 받을 만한 재목을 꼽는다면 가장 순도 높은 몰입 상태에 있었던 ‘을’이 아닐까. 세기의 수학 난제 푸앙카레의 추측을 풀어낸 페렐만(Grigorii Yakovlevich Perelman, 1966~)도 자폐증의 한 유형인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을 갖고 있다.

    몰입(沒入)은 의식의 흐름이 물처럼 흘러가는 최고의 집중 상태라 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고도의 몰입은 순수한 호기심, 강한 열망, 깊은 사랑이라는 동기에 의해 시작될 수 있다. (13회에서 계속)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 외 다수 저술 / 2012 올해의 과학교사, 2006 서울시 우수 상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