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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도 단계가 있다.
첫 단계는 무지(無知. ignorance)에서 출발한다. 무지(無知)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로서 태아에서부터 젖먹이 어린 아이는 모두 이 단계에 있다. 아기는 생존의 본능대로 먹고 싸고 자는 일에 몰두하지만, 자기를 보살피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행동을 하면 자기에게 유리한지를 스스로 학습한다. 그래서 까르르 웃기도 하고, 슬픈 표정을 짓기도 하고, 화내는 법을 연습하기도 한다. 난자와 정자, 단지 세포에 불과했던 존재가 태어난 지 10개월만 되어도 엄마 아빠라는 언어를 구사하게 되니 아기는 모두 학습의 천재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단계는 무지(無智, illiteracy; 문맹, 지식이나 지혜가 없음)를 자각하는 단계이다. 하늘은 왜 파랄까? 왜 설탕은 달고 소금은 짠 거지? 낮과 밤은 왜 생기나? 궁금증이 부쩍 늘기 시작하는 아동기가 이 단계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배움의 떡잎을 피우는 단계이기 때문에 충분한 햇빛과 양분이 주어진다면 학습 발달 속도가 이후 인생의 어느 시기보다 빠를 수 있다. 때문에 유치원 시기의 애정적 돌봄 교육은 아이의 성장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다음은 편견(偏見)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부모의 의식을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거나,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화와 집단의식을 수용함으로써 배움이 진행된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든지, 어른에게 존댓말을 써야 한다든지, 지위가 높은 사람을 존경해야 한다든지 하는 규칙과 관습을 배우며, 어문학과 수학 과학, 공작과 예능도 배우게 된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의 배움은 심한 갈등을 겪으며 진행된다. 교육이나 학습을 통해 알게 되는 가치들이 저마다 편견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다양한 가치들이 수시로 충돌하여 깨지거나 뭉개져 버리곤 할 때 배움은 혼란스럽고, 때로 회의와 좌절의 소용돌이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더 이상 배우기를 포기하면 정신의 자유를 획득하는 일은 요원해진다.
배움의 네 번째 단계는 통합(統合)의 단계이다. 통합은 지속적인 공부를 통해 알게 된 편견과 편견들을 조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내 머리로 그게 가능한 일인가 의심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므로 누구나 철학자이며, 자신의 감정이 말하는 소리를 듣기만 하면 바람직한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을 때 즐거움 · 기쁨 · 보람 · 행복 · 사랑과 같은 긍정의 감정이 전류처럼 흐른다면 그것은 좋은 통합이고, 불쾌 · 불안 · 초조 · 미움 · 두려움 · 허무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잘못된 통합이다. 감정은 타인과 동조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긍정의 감정에 충실하여 내린 통합은 나와 너 그리고 모두에게 이로운 것이 된다. 다만 통합의 완성이라는 것은 없다. 텃밭을 가꾸듯이 공들여가며 더 바람직한 쪽으로 생각을 수정해야 한다.
물론 평생을 공부해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지식이 모여 인류의 지식이 되고 이러한 일은 후대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므로 우리는 기쁘게 공부해야 한다.
배움의 다음 단계가 있다면 아마도 승화(昇華)가 아닐까 싶다. (9회에서 계속)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 외 다수 저술 / 2012 올해의 과학교사, 2006 서울시 우수 상담교사
[신규진의 교육 성장] 공부는 왜 하는가?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