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진의 교육 성장] 공부는 왜 하는가? (1)
맛있는공부
기사입력 2014.08.04 14:46
  •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이 덕담 수준에서 그친다면 누구나 흔쾌히 ‘네’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가 ‘이걸 성적표라고 받아왔니?’라고 힐책하거나 한숨이라도 푹푹 쉬는 모습을 보일 때 자녀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진다.

    나쁜(점수의) 성적표를 받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력을 안 해서일까, 머리가 나빠서일까? 어느 쪽을 선택해도 네 책임이요, 네 탓이 되는 이런 물음을 함정 질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나쁜 성적표를 받게 되는 것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성적평가 시스템이 그렇게 생긴 탓이다. 동전 던지기라면 승률이 반반이지만, 모두가 기대하는 성적표 게임의 승률은 5%도 안 된다. 이렇듯 불리하고 지겨운 게임을 대학에 입학하는 날까지 해야 한다니 제정신이라면 즐거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까닭은 지위 획득에 대한 강박증과 관련이 깊다. 우등생, 대학생, 석사, 박사는 일종의 지위로서, 있으면 별 거 아닌데 없으면 매우 불편한 물건과도 같다. 때문에 기대하는 지위를 획득하지 못한 사람은 벌거숭이인 양 거적때기일지라도 지위라는 옷을 갈망하게 된다. 그 지위를 누리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남들이 나를 깔보고 무시하는 것이 싫은 까닭이다. 남을 깔보는 사람이야말로 속물일진대, 그 속물들의 알량한 콧대를 꺾어버릴 힘이 없을 때에는 더욱 서글퍼진다.

    그런데 자녀는 그와 같은 부모의 상실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설령 안다고 해도 부모를 위해 억지로 공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성취동기의 준거집단은 대개 또래집단이기 때문에 자녀들은 친구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공부에 전념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게임에서 질 확률이 크다고 판단했을 때 현명한 선택은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상실할 것도 없기 때문에 공부를 회피하는 무리에 섞여 노는 것은 불안을 제거하는 한 방법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회피는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사는 기간에만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이지 근본적으로 삶의 불안을 제거하는 방안은 못 된다.

    공부는 왜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면 할수록 목적이나 방법은 물론이고 공부 자체가 뭔지도 점점 아리송해진다. 하지만 이런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답을 찾는 일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우리가 특별한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먹거나 자거나 빈둥거리거나 사랑할 대상을 찾아다니거나…. 그 밖의 일들은 자신의 뇌가 만족할 만한 이유를 찾아내야 잘할 수 있다.

    과연 공부는 왜 하는가? 아는 척 좀 하면서 고상하게 살려고, 출세하고 돈 많이 벌려고, 이 정도로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잘난 체나 하려고 공부한다면 결국엔 공허해질 테니까.

    풍족한 물질의 시대를 사는 2세들에게 부모는 이렇게 말하면 좋겠다. 공부는 ‘자유’와 ‘사랑’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2회에서 계속)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 외 다수 저술 / 2012 올해의 과학교사, 2006 서울시 우수 상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