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토론의 출연자가 분기탱천하여 서로 치고받는 지경에 이르는 것은 감정의 홍수에 빠져 이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생물학자들은 이러한 흥분 상태를 체내에서 쏟아지는 호르몬이 전두엽을 취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감정은 능력의 촉매라고 할 수 있다.
즐거움, 기쁨, 뿌듯함, 성취감, 환희 같은 행복한 감정들은 정촉매로 작용하여 기억력, 논리력, 판단력을 활성화시킬 뿐만 아니라 미처 발현되지 않았던 잠재력을 끌어내기도 한다. 그에 반해 불안감, 두려움, 슬픔, 우울, 분노 같은 불쾌한 감정들은 부촉매로 작용하여 기억력, 논리력, 판단력은 물론 이미 터득한 운동 능력이나 언어 능력마저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즐거운 상태에서는 많은 것을 창조하지만, 괴로운 상태에서는 이미 이루어 놓은 것조차 파괴하게 된다.
배가 고프거나 몸이 춥거나 아픈 것은 신체가 느끼는 통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신체적인 불편함은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을 촉발시키지 않는다. 같은 연유에서 호화롭게 잘 차려 먹고 사는 일도 그 자체로는 기쁨이나 즐거움의 근원적 동기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빈곤 속에서도 따뜻하고 밝게 웃으며 사는 사람이 있고, 지위와 부를 누리면서도 비탄의 늪에 빠져 우울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금력과 권력을 획득하려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매력을 돋보이게 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 믿음대로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얻는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소망한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남을 멸시하는 도구로 금력과 권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
해맑았던 아이가 커가면서 날로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은 어른들이 물려주는 근심의 거울 때문이다. 근심의 거울은 미주알고주알 무엇을 하지 말라는 주문으로 가득하며 결코 네가 제일 예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거울을 들여다볼수록 아이의 모습은 점점 초라해지고 작은 기쁨에도 까르르 터지던 웃음보마저 쪼그라들게 만든다.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Ⅳ)」이라는 제목의 두꺼운 책은 어린이 정신질환에 대해 선천적 정신지체와 광범위성 발달장애에 한정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 외에 모든 신경정신질환 - 정신분열, 기분 장애, 불안 장애, 성 장애, 섭식 장애, 신체형 장애, 허위성 장애, 해리성 장애, 수면 장애, 적응 장애, 성격 장애 등 - 은 거의 전부 성인에게 해당되는 것들이다.
왜 그럴까? 극도로 예민하거나 우울하거나 난폭하거나 때로는 괘씸한 성격 특성을 보이는 어린이가 전혀 없기 때문일까? 미운 다섯 살이니, 죽이고 싶은 일곱 살이니 하는 말이 있듯이 얼마든지 짜증낼 수 있고 화낼 수 있는 감정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어린 아이도 어른과 같은 이상심리 증상에 걸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신경증이나 성격장애, 정신병의 진단이 내려지지 않는 이유는 ‘성품의 미완성체’라는 가소성 때문이다. 성품은 신체의 성장과 두뇌의 발달에 따라 변모하며, 주변 환경이 충분히 애정적이고 좋은 경우에는 타고난 성격기질이 어떻든 최대한 아름답게 다듬어질 수 있다. 그런데 주변 조건이 좋지 않은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경쟁에서 우월한 존재가 될 것을 강요받는 우리나라 소년과 청년들은 아름다운 성품을 가꾸는 데 있어서 많은 것을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어른들의 노파심이나 잔소리에 대해서 일일이 흔들리지 않는 강단이 필요하다. 물론 어른들과 싸우려 들지는 말 일이다. 고지식한 편견에 사로잡힌 어른들과 싸우느라 에너지를 소모하면 결코 그 벽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자신의 이상과 정의를 믿으며 우정과 사랑을 신뢰해야 한다. 주변 환경에서 비롯되는 강박과 불안을 스스로 떨쳐내야 공부에 몰입할 수 있고 오월의 풍선처럼 기쁜 마음으로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15회에서 계속)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 외 다수 저술 / 2012 올해의 과학교사, 2006 서울시 우수 상담교사
[신규진의 교육 성장] 공부는 왜 하는가?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