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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마을에서 동떨어진 기찻길 옆에 살았다. 멀리서부터 꽥꽥 고성과 함께 푸시시 증기를 뿜어대며 달려온 화물열차가 집 뒤로 지나갈 때는 단칸방 구들장이 들들들 떨리곤 했다. 화물열차 이외에 나를 자극하는 것이라고는 파란 하늘과 흰 구름 밖에 없었다. 아침은 고즈넉한 수목원처럼 조용했고, 한낮은 호수의 수초처럼 심심했다. 내가 하는 일은 땡볕에 나앉아 벌레를 관찰하거나 촛불 밑에서 일기를 쓰는 것이 전부였다. 대신 이삼일에 한 번 꼴로 극장 영화를 보는 특별한 혜택을 누렸기 때문에 나는 늘 상상의 세계를 떠돌아다녔다. 영화는 어린 내게 역사와 문화, 전쟁과 평화, 인간과 사랑을 가르쳐 주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일상은 비슷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혼자 영화보기를 좋아했고 부모님의 잔심부름 이외에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 학교 수업 시간에 꼼짝도 않고 뚫어져라 칠판을 보는 것이 공부의 전부였지만 해마다 우등상을 탔다. 시험 볼 때 선생님이 판서한 내용이 스크린처럼 선하게 떠오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1 빼기 2는 마이너스 1이라는 수학 원리를 배울 때만 애를 먹었다. 마이너스(-)는 이미지로 형상화되지 않는 이상한 세계였기 때문이다.
중3 때 선생님이 “너의 장래 희망은 무엇이냐?”라고 물었을 때, 나는 세 가지 중에 하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철도역무원, 극장 간판 그리는 사람, 아니면 그냥 일꾼.
근년에 일곱 살부터 아홉 살까지의 경험을 소설처럼 엮다가 그 때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여 스스로도 놀랐다. 청년과 장년 시기에 비해 그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더 또렷한 까닭은 왜일까?
답은 ‘단순한 몰입’에 있었다. 나를 속박하는 그 어떤 걱정도 불안도 없었기에 무슨 일이든 쉽게 도취되고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꽃을 보면 꽃이 되고, 나비를 보면 나비가 되었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나, 반드시 해야 한다는 책임의식이나, 언제까지 해야 한다는 강박의식이나, 잘못하면 안 된다는 불안의식이나 그 밖의 어떤 의식도 없었다. 덕분에 무아경의 몰입 상태에서 체험하는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빨아들일 수 있었다.
순수한 호기심에 의한 단순한 몰입을 어른이 되도록 지속했더라면 아마도 벌레전문가나 개미학자가 되었을 테지만, 고등학생이 된 후부터 몰입 모드가 붕괴되었다. 강제 야간자습으로 인한 수면 부족으로 대낮에도 졸음이 쏟아지는 불쾌한 현상에 시달렸다. 학교에서 군사훈련과 단체기합을 견뎌내느라 안간힘을 써야 했고, 선생님들의 체벌사랑에 엉덩이며 허벅지며 종아리며 심지어는 발바닥까지 시퍼렇게 멍들 때가 많았다. 성적이 올랐을 때조차 과거의 게으름을 이유로 담임에게 매를 맞았을 때는 학교가 괴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점점 총기를 잃었고 졸업 날짜만 꼽으며 매일을 흐리멍덩하게 지냈다.
몰입(沒入)은 의식의 흐름이 대상에 스며들어 무아경(無我境)의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몰입 상태에서는 시간의 흐름마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몰입은 충만감과 개운함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피로와 두통을 유발하는 의식적 집중(集中)이나 경련과 탈진으로 이어지는 습관적 중독(中毒)과는 아주 다르다. 몰입을 위해서는 어떤 대상이나 현상에 대해 순수한 관심만이 필요할 뿐 특별한 요령이나 기술은 필요치 않다. 다만 심신을 옭아매는 걱정이나 불안, 대상에 대한 집착이나 과욕, 대인관계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 억압되거나 흥분된 감정 등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는 몰입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몰입을 위해서는 개인의 비합리적 신념과 불편한 정서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14회에서 계속)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 외 다수 저술 / 2012 올해의 과학교사, 2006 서울시 우수 상담교사
[신규진의 교육 성장] 공부는 왜 하는가?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