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진의 교육 성장] 공부는 왜 하는가? (4)
맛있는공부
기사입력 2014.08.26 10:32
  • 학습은 의도하지 않아도 일어난다. 부딪히면 아프다거나, 다리미를 만지면 뜨겁다거나, 떨어뜨리면 깨진다는 것을 경험하는 일이 곧 학습이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왜 아플까?’, ‘왜 뜨거울까?’, ‘왜 떨어질까?’, ‘왜 깨질까?’라는 의문이 생겼을 때, 이에 대한 답을 얻고자 탐구하는 과정이 적극적 학습이고 공부라 할 수 있다.

    공부는 일상의 관찰과 경험에서 시작하여 종합적 사고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블록을 하나하나 쌓아가며 어떤 형상을 만들어가는 작업이 즐거운 것처럼, 공부도 이와 같이 하면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과학자들이 세상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도 이와 같은 귀납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교과서를 중심으로 공부할 때는 많은 경우 위와 같은 절차를 따르지 못한다. 개념이나 법칙이나 공식을 학습한 후에 그에 맞는 사례가 있는지를 조사하거나 문제를 풀이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은 연역적인 방식이다. 학업성취 평가를 위한 객관식 문제는 단어를 살짝 바꾸거나 문장을 비틀어 아리송하게 출제된다. 덤벙대면 함정에 빠지기 일쑤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곧잘 강박증에 걸린다. 미세한 구멍을 찾느라 골몰하다보면 어느덧 시야가 좁아져서 커다란 그림을 보지 못하게 된다.

    또한 학교의 수업은 국영수사과를 잘게 쪼갠 후 뒤섞어 학습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여러 편의 영화를 각각 5분 단위로 끊어서 뒤섞어 놓은 후 이거 보다가 저거 보다가 하면 무엇이 남을까? 인상적인 장면 몇 개 쯤 기억에 남을지는 모르겠지만, 스토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학생들은 미적분을 배우고 확률 통계를 배우면서도 이것이 어디에 쓰일지를 알지 못한다. 가계부를 적는 데 쓰이는지, 통닭을 튀길 때 쓰이는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그런데 학교 교육은 사회라는 거대한 유기체가 만들어낸 것이므로 불평만 해서는 얻을 것이 없다. 다이애나(Diana, Princess of Wales. 영국의 왕세자비. 1961~1997)처럼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요리사 수업을 받거나,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 1955~2011)처럼 듣기 싫은 수업은 아예 출석조차 하지 않는 적극적 회피 방법을 무작정 따라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들은 명문가 출신이거나 제멋대로 굴어도 좋을 만큼 강한 멘탈(mentality)의 소유자였다. 남들이 걱정하거나 혹은 비난해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사람만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

    집단 교육에서 만족감을 얻지 못해도 개인은 자아실현을 위해 자기만족적인 학습을 추구할 수 있다. 학습은 교육 받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사람의 타고난 능력이기 때문이다. 학교 공부가 정말 체질에 맞지 않는다면, 다른 방식으로 공부하거나 또는 다른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해질 수 있다. 골방에 처박혀 온종일 게임모니터를 쳐다보면서 자기 치유의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그 기간이 너무 길어져서 습성화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비루한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길 원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꼭 이런 방식으로 공부해야 하나?”하는 비판적 생각으로부터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사회 조직의 틀에 얽매인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과감하게 자연인으로 돌아가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기성세대에게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른 세대가 일러주는 방식은 사회라는 유기체가 설정한 잣대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늘 되풀이되는 결론만 얻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게 해서 얻은 결론이 진짜 마음에 든다면 그대로 공부하면 될 것이다. 최종적인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5회에서 계속)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 외 다수 저술 / 2012 올해의 과학교사, 2006 서울시 우수 상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