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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공부, 진로와 직업, 우정과 사랑, 예술과 종교, 삶과 죽음……. 청년의 머릿속에는 많은 철학적 의문들이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사라지기를 거듭한다. 하지만 속 시원히 답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어른 세대가 청년에게 던져주는 메시지의 핵심은 ‘세상에 순응하라’는 것이 거의 전부이다. ‘학교에서 선생님 말 잘 들어라, 집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해라,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해라…….’ 근원적인 의문에 대한 답 대신 공맹의 말씀이나 듣는 게 고작이라면 답답할 수밖에 없다. 성적이 나쁜 것과 게으른 것을 동일시하는 어른들 때문에 울화증이 돋을 때도 있다.
십대 청년들이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기 어려운 것은 경쟁 교육 시스템 때문이기도 하지만, 학교 교육과정에 커다란 알맹이가 빠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셈하기를 배우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생각하기’를 위한 것인데, 이것이 아주 오랫동안 교육 기본 과정에 빠져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미흡하다.
근년에 제작된 교과서를 펼치면 ‘생각해 보자’라는 문구가 곧잘 눈에 띄기는 한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의도한 답을 끌어내기 위한 형식적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이 의도하지 않은 엉뚱하거나 때로는 괴상해 보이는 학생들의 생각에 대해 교사들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1 더하기 1은 1이라고 말했을 때, “오! 에디슨이 바로 그런 생각을 했었지.”라고 반응해 주는가?
‘생각하기’는 의도한 답을 요구하는 과정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비판적 생각을 통해 창조적 생각에 이를 수 있도록 역발상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비판적 생각’은 창조적 생각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에 있다.
속박은 불편하고 울적한 것이다. 음식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옷 입는 일을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면 즐겁지가 않듯이, 교과서가 의도한 대로 생각하고 시험 문제의 정답을 찾기 위해 끙끙대는 공부는 ‘생각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탓에 진정한 즐거움이 없다. 더욱이 일과시간표, 딱딱한 의자, 입 다물고 조용히 하기, 두발 복장 규격화와 같은 신체적 부자유까지 더해질 때 학교는 십대 청년들에게 이중의 속박을 경험하는 장소가 된다. 그래서 학창 시절의 즐거웠던 추억을 생각하면 소풍이나 수학여행, 학교 축제 같은 것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근년에 이르러 과학교육을 중심으로 창조적 생각이 강조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창조적 생각은 비판적 생각의 토대 위에서 피어난다. 2천 년 불변의 믿음이었던 천동설이 무너지고, 상대성이론에 의해 시공의 개념이 뒤바뀌고, 양자역학에 의해 모든 것이 불확정적인 것으로 변한 것은 바로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비판적 생각을 통해서이다. 과학 문명의 발전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쉬이 판단할 수 없지만, 적어도 현대 과학의 영역에서는 상식의 임계선 같은 것을 두지 않기에 자유를 만끽할 수 있고 학문의 즐거움과 기쁨을 한껏 누릴 수 있다.
인류에게서 과학이라는 문명의 영역을 송두리째 삭제한다 하더라도 자연으로서의 사람은 남는다. 생각하는 존재인 사람은 묻는다.
“나는 왜 태어났나?”, “너와 나는 다른 존재인가?”, “왜 사랑하는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은 끝인가, 시작인가?”
세상을 사물과 사람으로 구분하고 학문을 분류한다면 ‘과학’과 ‘철학’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인데, 학교교육은 이 둘을 다르게 취급해 왔다. 학교는 ‘철학’을 슬그머니 덮어 골방에 치워 두고, 대신 ‘윤리와 도덕’을 과목기호 01번 진열대에 수십 년 동안 올려놓았다. ‘비틀어 생각하는’ 자유를 허용하는 '철학'을, 학생의 머리를 손수 깎아주는 학교에서 가르치기는 거북했을 것이다.(참고: 2014년 경기도 교육청은 중학교 철학과 고등학교 철학 교과서를 제작하였다.)
‘생각하기’가 빠진 공부는 즐겁지 않다. 학생들이 학교 공부를 왜 재미없어했는지에 대한 상당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학교 공부를 즐기지 못하는 것이 자신의 탓만은 아니므로 학생들은 자책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날이 추운 것은 겨울이기 때문인데 이를 자기 탓이라고만 생각하면 무력해지기 쉽고, 무기력증에 매몰되면 정작 봄이 되어 날이 풀려도 다시 맥을 추스르기 어렵다.
(4회에서 계속)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 외 다수 저술 / 2012 올해의 과학교사, 2006 서울시 우수 상담교사
[신규진의 교육 성장] 공부는 왜 하는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