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현의 오묘한 오뮤(오페라&뮤지컬) 산책] '카르멘'과 '시카고'
기사입력 2020.06.26 09:13
  • ▲ 폭력적 남성이 만들어낸 팜므파탈
    ‘팜므파탈’은 ‘파멸을 불러오는 여성’을 의미합니다. ‘팜’이 ‘여성’을 뜻하는 말인데, 남성을 파멸의 길로 이끕니다. 19세기 낭만주의 작가들의 작품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데, 다른 작품들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헬레네, 양귀비 등 국가를 위태롭게 할 정도의 악녀들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다분히 성차별적인 요소가 강하다고 해석할 수 있겠는데요. 많은 심리학자들이 팜므파탈의 이야기는 남성 중심의 사고에서 작위적으로 만든 것으로 분석하기도 합니다.

    오늘 살펴 볼 두 작품은 팜므파탈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카르멘'의 제목은 많이 들어봤을 텐데요. 정작 그 줄거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음악을 들어 보면, ‘아~ 저 노래 알지!’라는 반응이 바로 나오는 작품이 바로 '카르멘'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수록곡이 유명하기도 하지만, 급변하는 이야기 구조는 많은 사람을 몰입시킵니다. 평범하고 성실하던 돈 호세에게 어느 날 정말 강렬하게 찾아오는 붉은 장미와 같은 유혹의 카르멘. 사랑에 빠지고, 자신의 삶이 파멸에 이르게 되지만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뮤지컬 '시카고'에 등장하는 두 여인도 카르멘 못지 않은데요. 록시와 벨마는 굉장히 타락한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반성조차 없이 감옥에서조차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데 열을 올립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합니다.

    작품 속 팜므파탈의 악녀들은 파국을 맞습니다. 정의로운 결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녀들이 악녀가 된 것은 사회적 구조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스토리뿐 아니라 감각적인 음악과 무대가 함께 펼쳐지는 두 작품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 '카르멘' / 조선일보 DB
    ▲ '카르멘' / 조선일보 DB
    ▲ 비제의 '카르멘'
     '카르멘'의 작곡가는 프랑스의 음악가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입니다. 비제는 베르디, 바그너와 함께 프랑스 낭만파 오페라를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음악가 집안에서 성장한 비제는 10세 때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고 당시 뛰어난 작곡가들로부터 수준 높은 학습을 받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칸타타 '클로비스와 클로틸드'로 수상을 하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납니다. 다양한 음악 장르의 창작활동을 온 다음 오페라 작곡에 집중합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진주잡이'를 25세의 나이에 완성합니다.

     '카르멘'은 프랑스의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1875년 초연되었는데, 신화적인 내용이거나 해피엔딩에 익숙해 있던 관객들에게 비극적인 이야기는 낯설게 느껴져 외면당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강렬한 스토리와 명곡들 덕에 차츰 인기를 높여갑니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 '시카고' / 조선일보 DB
    ▲ '시카고' / 조선일보 DB
    ▲ 밥 포시의 '시카고'
    1975년 뉴욕 브로드웨이 46번가 극장(46th Street Theatre)에서 개막해 1977년까지 936회 공연 했습니다. 밥 포시(Bob Fosse)의 연출로 감각적인 무대가 만들어졌는데요. 포시가 갖고 있는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감각이 돋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는 패턴과는 반대로 브로드웨이 공연 종료 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1979년에 선을 보인 뒤 600회 공연했고, 1996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리바이벌 공연도 이듬해 웨스트엔드에서 개막했습니다.

    리바이벌 공연은 브로드웨이 공연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공연한 리바이벌 뮤지컬이자 가장 오랫동안 공연한 미국 뮤지컬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브로드웨이 공연 역사상 두 번째로 오랫동안 공연한 뮤지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웨스트엔드 공연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공연한 미국 뮤지컬에 걸맞게 웨스트엔드에서도 15년 가까이 공연 중이며 지역 투어 및 인터내셔널 투어 공연도 진행 중입니다. 롭 마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르네 젤위거가 록시 하트, 케서린 제타 존스가 벨마 켈리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호평을 받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 악녀를 만든 타락한 사회
     카르멘과 록시 하트는 뻔뻔한 악녀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회로 인해 타락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카르멘을 차지하기 위한 남성들의 욕망에서 비극이 비롯된 것은 분명합니다. 어찌 보면 카르멘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고 맙니다. 록시 하트가 감옥 안에서도 파렴치한 일들을 이어가는 것 역시 사회적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1920년대의 시카고는 폭력과 살인이 횡행하고 이를 스포츠 중계하듯이 자극적으로 퍼나르는 황색 저널리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 당시에 알 카포네는 밀주 판매, 매춘, 도박, 살인을 서슴지 않았는데 언론들이 그의 범죄를 미화시켜 영웅처럼 만들었습니다. 록시 하트는 이런 언론으로부터 주목받기 위해 더 자극적인 일들을 만들어갑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잘못된 사회가 만든 악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소 자극적인 소재일 수 있지만 '카르멘'과 '시카고'는 기존의 전통적인 무대와는 다른 시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스토리뿐 아니라 무대에서 구현되는 요소들과 음악을 함께 한다면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러시아 오페라 작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