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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국어의 현대시 문항을 대비하기 위해 수많은 시 작품들을 정리하고 분석 내용을 외우느라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가끔 본다. 수능출제경험으로 미루어봤을 때 그 노력이 너무 안타까워서 조언을 하고자 한다.
수능국어 시험지를 받아들기 전까지 수험생들은 현대시 지문으로 ‘모르는 시’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물론 아는 시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수험생들은 고등학교 3년간 여러 문제들을 풀면서 많은 시를 만나게 된다. 또한 현대시의 EBS연계 체감효과가 크기 때문에 EBS연계교재와 연계된 시가 출제되는 경우도 많다. 당연히 한번쯤 읽어본 시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수험생들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 그래야 시험 당일 ‘패닉’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모르는 시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가 아는 시가 나오면 다행이다. 하지만 아는 시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모르는 시가 나오면 ‘심리적 부담감’이 올 수 있다 심리적 부담감은 뇌를 긴장시켜 사고를 멈추게 한다. 그걸 ‘블랙아웃’이라고 한다. 수능 당일 시험장에서 이 ‘블랙아웃’에 빠지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그걸 겪지 않으려면 아예 모르는 시가 출제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낫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현대시 지문을 대해야 한다.
모르는 시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또 한 가지 있다. 시는 기본적으로 해석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원래 좋은 시는 ‘애매’해야 한다. 그걸 어려운 말로 ‘앰비규어티’, 모호성이라고 한다. 외울 필요 없다. 그러니 시를 처음 대했을 때, 완벽하게 이해하겠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대략 이런 말을 하고 있구나, 정도로만 이해해도 충분하다. 중요한 건, 출제자 역시도 대략 해석한다는 거다. 출제자가 현대시에 구절 하나하나를 밑줄 치며 해석하고 분석할 것 같나? 그런 일은 없다.
이건 기억하자. 시는 기본적으로 ‘선명하게’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원래 시인의 ‘내적 정서’를 표현한 것이 시이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말이나 글로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그런 감정이나 마음의 상태가 있다. 슬픈 것도 아니고, 짜증나는 것도 아니고, 억울한 것도 아니고, 답답한 것도 아니고, 뭔가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데 마음속에 불이 활활 타는 듯 뜨겁고 그런 심정말 이다.
바로 그런 감정을 포착해서 언어로 담아낸 게 시다. 그게 ‘선명하게’ 해석이 될까? 절대 안 된다. 시를 쓴 시인조차도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수능국어에서 현대시 문제를 낼 때는 아주 익숙한 시도 출제자가 <보기>나 선지에서 살짝만 방향을 틀면 그동안 공부했던 것을 백지화 시킬 수 있다. 그러니 그냥 ‘모르는 시’가 나온다고 마음먹고 있는 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에 좋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수험생들은 현대시 지문에 나온 시를 두고 출제자와 ‘문답’을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물론 이때 해석의 주도권은 출제자가 가지고 있다. 출제자는 문제와 선지, 그리고 <보기>를 통해 자신이 해당 시를 어떻게 읽었는지 수험생들에게 알려준다. 그 신호를 따라가면서 수험생들은 해당 시 지문을 해석하고 시험을 치러야 한다. 수험생 마음대로 주관적으로 시를 해석하는 것은 문제를 풀 때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다시, 강조한다. 현대시에 대한 해석이나 시어의 의미 따위를 외웠다가 무작정 적용하지 마라. 대신 출제자가 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세심하게 관찰해라. 선지 하나하나는 출제자가 건네는 신호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때 또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수능시험은 매년 50만 명이 넘는 인원이 보는 시험이고, 수험생 외에도 수많은 선생님과 학원 강사들, 입시관계자들이 보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는 거다. 한마디로 시는 원래 모호한 것이지만 문제의 답은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50만 명이 넘는 수험생이 그 답에 ‘수긍’할 리가 없지 않을까?
주로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이 자주 걸려드는 생각의 ‘덫’은 이런 거다. 그 학생들은 ‘문제가 내 생각보다 훨씬 깊이가 있을 수 있다’고 종종 생각한다. 하지만 30여 명의 출제위원과 검토위원들을 모두 납득시키려면 무작정 난해한 해석의 문제는 출제할 수 없다.
이에 필자는 늘 현대시를 ‘산문’처럼, ‘독서 지문’처럼 읽으라고 권한다. 실제로 출제위원들이 문제를 검토하면서 그렇게 현대시를 산문화해서 읽기 때문이다. 현대시는 문학작품이지만 수능에서는 ‘작품의 주관적 감상’은 질문할 수 없다.
단, 선지나 보기에 왕왕 등장하는 필수 개념은 반드시 숙지해 놓도록 하자. ‘화자’, ‘정서’, ‘이미지’ 등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건 출제자와 수험생 간의 약속이다. 대부분 출제자는 이 약속을 지킨다. 즉, 기출문제의 선지에서 활용되었던 개념의 범위 내에서 용어를 활용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수험생들도 기출문제의 선지에 등장하는 필수 개념은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정리해보자.
1. 수능에는 ‘모르는 시’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2. 그리고 시는 기본적으로 ‘애매하다’(대략 느낌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3. 출제자는 그 ‘애매한’ 시에 대한 출제자의 해석을 문제와 선지, <보기> 등을 통해 보여준다. (우리는 그 신호를 바탕으로 출제자의 해석을 파악해야 한다.)
4. 하지만 그 ‘해석’은 50만 명 이상의 수험생과 관계자들 모두에게 납득 가능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심오할 수도 없고 전문적일 수도 없다. 아주 상식적이다.
5. 선지에 등장하는 필수 개념은 숙지해야 한다. -
※에듀포스트에 실린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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