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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에서 단거리 경주는 순간적이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육상 단거리 선수들을 보면 하나같이 울툴불퉁한 근육이 있는 비대한 몸을 가지고 있다. 짧은 거리를 달리는 동안 모든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집중시키기 위한 근육이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장거리 마라톤의 경우는 지속적인 지구력과 끈기 있는 정신력을 요구한다. 그래서인지 마라톤 선수들은 꼭 필요한 정도 이상으로 몸이 비대하지 않다. 지구력 있게 꾸준히 힘을 발휘하는 작은 근육들이 발달해 있다.
중학교 공부와 고등학교 공부의 차이는 이런 단거리, 장거리 달리기의 비교를 통해 쉽게 설명할 수 있다. 흔히 중학교 공부는 단거리 경주와 같고, 고등학교 공부는 장거리 마라톤과 같다고 말한다. 이것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공부에 필요한 힘과 근육이 서로 다르다는 뜻이다.
1) 고등학교 공부는 시간차 효과가 있다.
중학교 공부는 순간적이고 폭발적인 집중력으로 얼마든지 정복할 수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2~3주만 죽어라 공부하면 시험 성적은 금방 오른다. 반대로 조금만 놀면 바로 결과에서 티가 확 난다. 반면에 고등학교 공부는 2~3주 죽어라 해봐야 좌절감만 든다. 시험 보면 성적엔 별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는 경험적으로 적어도 최소한 6개월 정도 죽어라 해야 그 다음 6개월 동안 효과가 나온다. 반대로 6개월 정도 놀아도 별 티가 나지 않다가 그 다음 6개월 동안 봇물 터진 듯 정신없이 성적이 하락한다. 일종의 시간차(time lag)가 발생한다. 당연히 고등학교에 가서 중학교 때 공부하던 식으로 반짝 몰아치기 방법을 써서는 우등생이 될 수 없다.
이런 효과의 예가 하나 있다. 가끔 중학교 때 미리 선행학습 했던 실력만 믿고 고등학교 1학년을 수월하게 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주의해야 한다. 이런 학생들이 방심해서 2학년 때 놀다가 3학년 때 급격하게 성적 떨어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잘하면 보통 2학년 때 놀아도 관성으로 어느 정도 성적이 나온다. 바로 시간차 효과다. 그래서 2학년 때도 잘되니까 은근히 방심하고 새로운 고등학교 환경에도 적응했겠다, 놀기 십상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고등학교 때는 놀아도 바로바로 티가 안 난다. 몇 달이 지나고 고3이 될 때 드디어 그 효과가 몰려오면서 성적이 거침없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미 이때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2) 3년을 공부하려면 정신력도 많이 필요하다.
고등학교 때는 최종적으로 수능시험도 잘 봐야 한다. 이것들은 하루아침에 정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3년 동안 꾸준히 준비하여 근육을 만들고 거기에 맞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래서 중학교 공부와는 달리 지속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지구력과 쉽게 포기 하지 않는 정신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등학교 올라가서 욱해서 반짝 코피 쏟으며 공부해봐야 별 효과 없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의지와 노력을 꾸준히 나눠서 배분해야 한다. 한마디로 템포 조절과 힘 조절이 필요하다.
고3 초반 3개월 죽어라 하다가 지쳐 떨어지거나 1,2학년 신학기 초에 새 마음 새 뜻으로 죽어라 하겠다고 밤새가면서 낑낑대다가 병원 신세지는 일은 절대 삼가기 바란다.
3) 고등학교 때는 체력이 학력이다.
특히나 중학교 때는 공부가 체력싸움까지 번지지 않는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는 몸소 체험하게 된다. 운동 안하고 가만히 지내도 고 1,2때는 그럭저럭 버틴다. 하지만 고3 되면 당장 체력이 안받쳐주면 지쳐 떨어진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생각해보자. 공부할 마음이 없으면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공부할 마음은 굴뚝같고 어느 정도 공부가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는데, 갑자기 체력이 떨어지면서 늘상 졸리고 집중도 안 된다면 어떻겠는가! 이보다 더 괴롭고 짜증나는 일도 없다. 그나마 남학생들은 어려서부터 평소에 뛰어 놀면서 기른 체력이 있지만 여학생들은 정말 가만히 앉아서 공부만 하는 경우가 많다. 여학생들은 체력 문제에 있어서 더더욱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럼 똑같은 공부인데 왜 이런 차이가 날까?
그것은 바로 중학교 공부와 고등학교 공부 내용이 가지는 특징 때문에 생긴다. 중학교 공부는 내용간의 연결이 1차원적이고 연결된 힘이 약해서 사실상 분절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학년이 올라가도 양상이 비슷하다. 그래서 어느 부분이든 딱 떼어서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투입해서 열심히만 공부하면 성적이 금새 오른다. 맘 잡고 2~3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고등학교 공부는 내용간의 연결이 2,3차원적이고 연결된 힘도 강해서 어느 일부분을 따로 떼어내기가 힘들다. 즉, 앞의 내용을 모르고서 뒤에 있는 내용을 공부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설사 떼어내더라도 복잡해서 전체적 구조를 모른 채 무작정 열심히 해도 정복되지가 않는다. 반짝 열심히 해서는 별 변화가 없는 이유다. 그 정도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더 심하다. 그래서 고3때는 예전에 하던 만큼 공부하면 성적이 떨어진다. 예전보다 열심히 하면 현상유지는 할 수 있다. 예전보다 죽어라 열심히 해야 성적이 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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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의 학습 원포인트 레슨] 중학교 공부는 단거리 경주, 고등학교 공부는 장거리 마라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