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의 학습 원포인트 레슨] 아는 만큼 들리고 궁금한 만큼 듣고 싶다 – 예·복습 중요성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7.04.28 10:41
  • 누구나 강의 수강중에 재미없고 지루하고 듣기 싫고 잠이 오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그건 꼭 의지가 약해서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적으로 그 선생님이나 강사의 탓만도 아니다. 강의가 귀에 들리지 않을 때 내 안에 잠재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봤는가?

    아마 이런 이유때문일지로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아는 만큼 들리고 궁금한 만큼 듣고 싶게 되어있다. 즉, 어떤 강의가 듣기 싫고 지루하고 졸리다는 것은 강사 탓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가 있다. 바로 그 내용이 궁금하지 않아서. 진정으로 듣고 싶지 않거나, 아는 게 없어서 무슨 말인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럼 아는 것 혹은 궁금한 것은 어떻게 만들까?

    궁금한 것과 아는 것이 바로 예습과 복습의 목적이다. '​예습을 미리 공부해서 다 이해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 부담스럽다. ​예습은 그냥 잘 모르는 부분에서 ‘궁금한 것'을 만드는 게 주된 목적이다. 미리 공부해서 다 알거 같으면 강의는 왜 듣나? 그냥 혼자 공부하면 되지. 미리 읽어보고 고민해보고 잘 모르겠는 내용을 만들고, 그래서 강의 때 들을 이유를 만드는 것이 예습이다. 그리고 ‘아는 것’은 복습의 목적이다. ​복습해서 익혀나가는 내용이 내 지식이 되었을 때, 새로운 내용을 들으면 기존의 내용과 연관지어 더욱 쉽게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복습하는 것이다.

    매년 수능이 끝나고 성적표가 나오면 전국 수석들이 '예습·복습 철저히'라며 언론사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한다. 근데 이런 생각을 해본적이 있는가? 그들이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예습·복습을 제일 철저하게 한 사람이라서 방송이나 신문에 나오는 것은 아닐까? ​'오죽 철저히 했으면 신문·방송에 다 나오겠는가!' 이런 생각 말이다.

    예습만이 궁금증을 만들어주고 복습만이 알아듣기 위한 기반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학교선생님이나 학원 강사가 강제로 주입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엄마가 대신해줄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고. ​오로지 책상에 앉아서 힘들여가며 혼자 자습한 시간들만이 수업을 듣고 싶게 하고 잘 들리게 해줄 뿐이다.

    누구나 남의 탓을 하는 게 쉽고 편하다. 수업이 재미없어요. 설명을 잘 못해요. 웃기지 않아요. 실력이 없어요. 등등. ​선생님이나 강사 탓만 실컷 하면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는 있다. ​내 탓이 아니라고 믿어버리면 말이다. 근데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않는가? ​내가 하지 않은 예습과 복습이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이뤄지는 것도 아닐뿐만 아니라, 그 선생님이 갑자기 실력이 좋아지거나 재미있어지거나 웃겨지는 것도 아니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그런 마음을 내려놓고 이제 생각을 전환해보자.

    내 탓을 하기 시작하면 처음엔 마음이 불편하다. 그런데 그걸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다시 편안해진다. '내가 예습 복습을 하지 않아서 그동안 선생님 말씀이 들리지 않았나보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방향을 바꿔보자. 선생님 설명이 들리게 만들 나의 변화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상위권 애들이 맨 앞에 앉아서 열심히 듣는 건 나한테 엄청 재미없는 그 강의가 그 녀석들에겐 재미있기 때문이다. 왜 재미있을까? 궁금하니까, 들어보면 예전에 공부한 것과 연관 지어서 알겠으니까, 당연히 재미있다. 그게 없는데 재미있다면 정말 대단한 선생님이란 뜻이고, 현실에서 매일 그런 선생님만 만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재미있고 쉽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기엔 우리는 충분히 늙었다. 힘들고 어렵고 불편해도 기꺼이 감수하고 예·복습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자꾸 하다보면 분명 익숙해진다.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지 않은 날이 오게 되는 것이다. 그때가 바로 성적이 오를 때가 되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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