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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처음부터 아무도 안 시켜도 스스로 알아서 착착 공부했을까? 아니면 그들도 스스로를 인내하면서 그런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하는 청소년기의 공부라면 후자에 훨씬 가깝다. 자신의 공부재능을 발견해서 써볼 사람과 공부가 아닌 다른 재능을 발견해서 써볼 사람이 모두 동일하게 공부를 잘해야 대접받는 이상한 풍토가 존재하는 한 그렇다. 즉 재미있고 좋아서 하고 싶어서 라기 보다는 해야 되서 잘해서 인정받고 싶으니까 (최근에는 거의 생존을 위해서) 하는 공부라면 어찌 보면 극기훈련에 가깝다. 유별난 지적호기심을 가진 경우가 아닌 이상 경쟁심과 인내심으로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자 그럼 인내심을 기반에 둔 자기 극복의 과정에 경쟁심이 더해진 경합이라는 우리나라에서의 공부라는 특수한 측면을 인정하고 그 다음으로 스스로 공부를 생각해보자. 보통 스스로 공부하면 대부분 독학을 떠올린다. 그냥 방에 혼자 박혀서 책과 씨름하는 모습. 그러나 스스로 라는 말은 독학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내가 공부에 관한 여러 가지 결정을 내리고 그 판단과 결과에 대해 책임진다는 의미가 스스로 공부다.
원래 사람은 자기가 할 것에 대해 자기가 결정을 내리는 자기결정권을 사용할 때 더 큰 동기와 책임감과 자유와 행복을 느낀다. 물로 최근 결정장애의 시대에 타인의 의견을 구하는 일이 많지만 그것도 결국은 자신의 결정하고 책임질 일에 대해 타인의 조력을 구하는 것일 뿐 전체적으로는 스스로라고 봐야 한다.
공부를 함에 있어서도 학생이 공부재료를 선정하고 공부계획을 짜서 실행한 다음 제대로 알고 있는지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과정 중에 혼자 해내기 어렵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비효율적인 부분을 타인의 조력 (예를 들면 강의)을 구하여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해내는 것을 우리는 스스로 공부라고 봐야 한다. 전체적인 선택과 책임이 누구에게 가는가 말이다. 그게 엄마로 가면 엄마표 학습이고 학원에 의존하면 사교육표 학습인 것이다. 방에서 혼자 공부해도 엄마가 다 짜준 계획과 감시 속에 눈치 보면서 공부하는 경우는 스스로가 아니다. 반대로 학원에 다닌다고 해도 자기가 선택한 수업을 정해진 목표와 기간 동안에 활용하는 것은 매우 스스로 공부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이러한 진짜 스스로 공부를 해내고 있는 친구들이다. 그들도 필요한 수업은 학원을 다닌다. 단, 그 수업을 통해 해결하려는 과제와 목표가 선명할 뿐이다. 그들도 좋은 교재를 선정하기 위한 정보를 수집한다. 엄마가 아니라 자기가.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아는 느낌인지 할 수 있는지 점검한다. 계획은 자기가 짜되 효과가 떨어질 때는 적극적으로 선생님이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구한다. 개선할 방법을 구하고 알게 된 방법을 적극적으로 실천한다. 공부하다가 궁금한 점을 스스로 찾아보거나 질문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고 처음에는 인내심과 경쟁심으로 시작한 일이 나중에는 탄력이 붙고 관성이 생기면 스스로 하게 된다. 자동차도 처음 출발하기가 어렵고 기름도 많이 소모되지, 일단 출발하고 나면 기름도 덜 들고 힘을 덜 들여도 움직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면에 공부 잘하고 싶은 아이들은 자기결정권 보다 타인의 결정에 맡기는 행동을 보인다. 학원 수업에만 의존하고 숙제를 처리하기에 급급하며, 숙제처리 말고는 별도의 공부를 찾아서 하지 않는다. 왜 그 학원을 다니며 뭘 배울 건지 잘 모른다. 알아서 다 해주길 바란다.
책 선정은 엄마나 학원에서 해주는 것으로 족하고 인터넷강의도 어떤 선생님이 나와 맞을까 고민하기 보다는 그냥 친구들 듣는 것으로 결정해버린다. 아는지 모르는지 아는 느낌인지 할 수 있는지 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보다 더 급하고 재미있고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계획은 짜본 적이 별로 없고 짜도 실천을 못하다보니 의욕도 떨어진다. 잘 모르는 내용이나 고민이 있어도 그때 잠시 불편할 뿐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아도 금새 잘 잊고 넘어간다.
좋은 공부법 같은 것을 들어도 실천할 의욕이 없다. 질문이라는 것은 꿈도 안 꿔본다. 솔직히 공부가 내꺼 라는 느낌이 별로 없다. 공부에 있어서 동기가 부족하고 자유롭지 않으며 책임감도 안 느껴지고 행복할 턱은 더욱 없다. 공부 잘하고 싶은 마음만 있다.
공부가 가르쳐주거나 강화시켜주는 여러 가지 덕목 중에 자기결정권이 있다. 내가 결정해보고 책임도 져보고 좋은 변화도 느껴보는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실패하거나 성공하는 다양한 체험을 하겠지만 과정 중에 시행착오는 발전의 원인이 된다. 자기 결정권을 써보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결정의 안목도 높이고 성공확률을 높이며 어떻게 하면 성공할 지 방안을 마련하는 이 모든 것이 문제해결력의 과정이자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결정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남이 결정하거나 떠먹여주는 것조차 적극성을 갖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밴다면 그것은 남들을 떠나서 나 자신에 대한 예의가 아닌 행동이자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의 큰 결손으로 남는다.
수학, 과학만이 나중에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챕터의 결손을 메꾸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청소년기 공부를 통해 배우고 익히는 여러 가지 능력들도 그 시기에 충분히 얻지 못하면 나중에 보완하기 힘든 큰 결손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결손은 결정적인 순간 내 발목을 잡거나 치명적인 불이익 혹은 큰 실패의 원인이 된다.
이제부터 내 인생은 내 것이며 그 소중한 것을 잘 가꾸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스스로 공부하는 자기결정권과 주도권을 남에게 넘기지 말고 사용해보자. 사용하는 과정에서 물론 실수하거나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처음부터 잘한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와 반복 끝에 스스로 공부의 방법을 터득해나갔다. 성적의 높고 낮음을 떠나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이야 말로 인생을 살아가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공부는 그래서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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