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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진정한 복지국가로 달려가는 길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성품 변화를 통해 이룰 수 있습니다.
성품을 가르치며 깨달은 것은 각 나라의 문화에 따라 그 나라의 국민성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화에 따라 나타나는 언어문화가 바로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진국이라고 하면 국민의 GNP수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국민의 언어문화가 얼마나 높은 수준인가에 달려 있고 국민의 성품이 얼마나 높은 가치를 지향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한 나라의 국력은 군사력, 경제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국민이 얼마나 성품 좋은 국민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복지국가로 달려가는 길은 국민 한 사람의 성품 변화를 통해 이룰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성품 좋은 자녀 키우기 운동’이 성품 좋은 지도자를 만들고 그 힘이 바로 부강한 국가를 이루는 초석이 됩니다.
오늘 우리 자녀들의 언어생활을 잘 지도하는 것이 바로 그 나라의 국민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서구 문화와 우리나라의 문화를 비교해 보면 서구 문화는 기독교 문화, 우리나라는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아 서로 국민의 성품이 다르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서구 문화는 개인의 자유와 존중의 한계성이 지나쳐 혼란스러움을 야기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기독교 문화의 영향으로 말하는 문화가 성숙한 사회 문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사랑을 절대 가치로 여기며 시작된 서구 문화는 사랑을 감사하고 서로 표현하는 성품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웃을 중요하게 여기며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과 말로 인간관계를 맺어가기 때문에 자신의 언어 사용에 조심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배려하는 말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이 먼저 하세요”, “실례합니다”라는 언어를 자연스럽게 말하고 행동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란 사람들은 행복한 자아가 형성되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감사하는 성품의 사람들로 자라게 합니다. 이 성품이 바로 공감인지능력입니다.
공감인지능력(Empathy)이란 바로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기쁨을 함께 이해하고 함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정서적인 능력입니다. 공감인지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바로 감수성이 높은 사람이 되어 지도자적 자질을 갖춥니다.
어쩌면 서구의 나라들이 오랜 기간 동안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리더십을 갖고 세상을 지도해 온 이유가 바로 그 나라 국민의 성품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유교 문화의 특징은 권위와 윗사람을 중시하는 문화입니다. 왕이나 스승, 부모, 어른들은 높이고 매일 만나는 이웃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항상 나보다 어른이나 상전에게만 예의를 갖추고 존칭을 사용하였고, 나보다 아랫사람이나 종, 어린이, 약자에게는 무시와 천대를 일삼는 문화였습니다. 그래서 어른이나 상전에게 사용하는 언어는 발달했지만 평상시 만나는 사람들을 향한 언어는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명령하는 말투, 지시 혹은 어린 사람을 야단치는 어른의 말만 익숙하고 가슴을 터놓고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것에는 어색합니다. 오죽하면 그렇게도 그리던 반가운 님이 오셨는데 주변의 웃어른들이 보는 앞이라 표현도 못하고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벙긋 한다는 노래가 나올 정도겠습니까?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 도인 같아 보이는 문화의 특징이 우리나라의 국민성을 무뚝뚝하고 웃지 않는 과묵한 동방의 고요한 나라라는 성품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함께 사는 이웃의 고통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혼자 삭히는 버릇만 들어 말 못하는 병에 걸린 것 같이 좋지 않은 성품으로 고통 받게 합니다.
이러한 언어 문화는 우리나라 여성에게만 있는 ‘화병’이라는 병을 만들었고 아침마다 길에서 만나는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멋쩍어 하는 어색한 성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때로는 불필요할 정도로 꾹꾹 참다가 폭발하면 날벼락 치듯 절제하지 못하는 성품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업을 할 때나 혹은 나라의 큰일을 협의할 때 국익을 망치는 주범이 되기도 합니다.
공감인지능력이 부족한 국민성은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경청, 배려, 감사라는 성품이 자연스럽게 흘러나가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어 갑니다. 국경이 점점 무너져 가는 국제 사회에서 진정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성품으로 개혁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바로 우리나라 전 국민이
더 좋은 성품으로 바꾸어질 때 비로소 시작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나라의 국력이 성품 좋은 국민이 얼마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 마틴 루터의 말대로 이제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국민성을 성품으로 개혁해야 할 때입니다.
[이영숙의 부모성품코칭] 성품 좋은 국민성을 만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