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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시에 담긴 인간의 지혜는 인간의 삶과 뒤섞이며 세계를 이미지로 파악한다는 것이 비난받는 것이다. 플라톤에서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은 경험적인 다양함의 배후에 경험되지 않는 것을 파악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거짓된 이미지를 비판했다. 플라톤이 내놓은 것은 비존재라는 것은 하나의 상이한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물의 원리를 묻는 질문은 근본적으로 피지스와 노모스가 일치하는 세계이고 이후에 자연과 떨어져 관습이라는 것이 있었다. 소피스트, 소크라테스 때 철학의 관심이 인간으로 되돌려졌고 근대에 와서는 진리의 문제가 변증이 되어버렸다. 인간을 매개로 해 진리에 접근하는 것이 고대인들에게 없었다. 고대인들에게는 자연 안에 인간이 있었다. 『한국인의 생활사』(한미라, 전경숙, 일진사, 2004)를 지은 한미라는 숙명여대 사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여주대학 교수이다. 또다른 저자인 전경숙은 숙명여대 한국사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숙명여대, 여주대학 강사이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민족이란 말은 근대 이전의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는 사용하지 않던 용어이고 민족이란 단어는 19세기 후반에 일본인들이 ‘nation'을 번역하면서 만들어 낸 말이며 민족에 해당하는 실체는 이미 근대 이전 시기에 형성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민족이 형성되기 이전에는 흔히 인종 혹은 종족과 같은 개념이 쓰이고 있었는데, 이는 신체의 유전적 특성에 기초한, 다분히 생물학적 개념이고 한반도에 인류가 살았던 최초의 흔적들은 충청남도 공주 석장리나 평안남도 상원의 검은모루 동굴 등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은 호모 에렉투스에 해당한다고 한다.
우리 민족의 전형적인 얼굴은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온 때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고 우리 민족이 중국이나 일본 등 주변 민족과 구별되는 하나의 단위로서 형성된 때는 청동기 시대였으며 한국 민족의 단일성은 생물학적, 형질학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역사적 관점에서 성립한 개념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또한 우리의 역사를 반만년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단군이 이 땅 위에 나라를 세운 이후부터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고 고구려 사람들은 고분에 벽화를 그렸으며 5세기에는 전통적인 계세적 내세관을 대신해 불교의 윤회사상 및 정토왕생 내세관이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고구려 옷의 기본은 남녀 혹은 신분에 관계없이 활동하기 편한 저고리와 바지였고 기원전에 이미 한강유역에서 벼가 재배되었으나 쌀은 왕이나 귀족들이 먹는 귀한 음식이었으며 신라에서도 육식을 즐겼다고 한다. 또한 왕의 어원은 크게 2가지 정도로 논의되고 있고 하나는 정치적 지배자가 나타나게 된 배경이 전쟁이었다는 점을 중시해 그들이 보유한 강력한 무기인 도끼에서 왕이란 명칭이 생겼다고 보는 것이며 또 하나의 견해는 중국에서 국가통치이념으로 자리잡은 유교에 의한 해석이라고 한다.
중세사회는 어느 개인의 권리와 의무가 그 자신이 속한 신분에 따라 좌우되는 신분제 사회였고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으며 이앙법은 조선후기에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또한 고려시대까지 자유스러웠던 여성의 일상은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삼은 조선시대부터 급속도로 억압받게 되었고 삼종지도란 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하면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르는 것이 도리라 하여 철저하게 남성에게 순종하는 여성의 삶을 강조한 것이었으며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신분에 따른 차별이 뚜렷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특히 17세기를 전후해 성리학이 확고하게 지배이념으로 자리잡으면서 철저한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질서가 정착했고 혼례는 전통사회에서 성인이 된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여성들의 가슴 노출이 시작된 것은 대략 조선 중기부터였다고 한다. 또한 여성들의 색조화장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고 조선시대의 여인들은 자유로운 삶보다는 억제된 삶을 살아야만 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대가족 구성이 중심적이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성이란 원래 가족 혹은 혈족을 표시하는 명칭이고 역사상 성이 전국적으로 확대된 것은 신라 말, 고려 초이며 근대적인 호적제도가 시행되어 모든 사람들이 성과 본관을 가지게 되면서, 본관의 사회적 기능은 점차 약화되었다고 한다. 또한 18세기를 전후해 족보의 기재 방식에 큰 변화가 나타났고 조선시대에 형벌은 살아있을 때만 받는 것이 아니었으며 육시와 부관참시는 죽어서도 받는 형벌이었다고 한다.
콰인은 철학을 자연과학화하자고 제안했고 역사적으로 철학과 자연과학이 분리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물리주의는 현대철학의 패러다임이다. 칸트는 물리적인 세계의 질서를 우리의 마음의 질서에서 찾았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와 존재 사이에 비존재가 있어야 하므로 비존재에서는 무만 나온다고 보았다. 이것에 대해 플라톤은 허구적인 존재, 즉 시에서의 픽션이 있을 수 있고 가짜 존재 등의 소피스테스가 있을 수 있다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이 책은 독자가 한국인을 이해하기에 적절한 책이다.
[이병화의 초,중,고 학생들과의 독서] 한국인의 생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