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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때의 불교는 고려왕조와 정치세력과의 교류가 많았다. 고려왕조와 불교는 점점 더 유착이 되었고 사회적으로 상당히 많은 부패를 가지고 있었다. 불교세력을 비판하는 이들이 가지고 있던 이념은 불교를 배척하는 논리였던 성리학이었다. 출사를 해야 할 것인지와 처사로 남을 것인지가 출처지도의 문제이고 이 문제는 이후에도 유학자들이 고민을 했던 것이다. 향촌에 있으므로 나갈 때가 아닌지와 그렇지 않은지가 출처지도의 문제이다. 『권력과 지식인』(진덕규, 지식산업사, 2011)의 저자는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했고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식인은 시대의 구속성과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삼균 조소앙 선생과 민세 안재홍 선생을 통해 서구 이론도 생각했으며 조상들의 전통적인 것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삼균주의는 민족주의 바탕 위에 전개된 논리이자 현실적인 구체성에 중점을 둔 한국 민족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었고 민세의 민족주의는 한국의 민족주의의 출발점과 지향성에 대한 이론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이 사상은 왜 한국의 민족주의가 신민족주의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삼균과 민세는 계급보다 민족을 소중하게 여겼고, 외세 의존에서 벗어난 민족적 독자성을 주장했으며 이는 기존의 특정 이데올로기적 지향이 아니라 민족의 정통성에 발판을 둔 새로운 지향이었다고 저자는 본다.
저자는 남북한의 집권세력이 각각의 권력적 정당성을 위해 민족주의를 오용했고 지식인은 현실참여의 열정으로 새 세상을 꿈꾸며 지식인은 때로는 더 좋은 미래를 이룩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고독한 선지자의 길을 걸을 때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정치적 지식인은 정치에 직접 관계를 맺고 정치활동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면서 자신의 정치적인 논리를 실천하려 했던 지식인이고 이들은 대부분 정치사회의 혼돈기나 전환기에 등장하며 한국에서는 근대화의 이행기나 식민통치기, 해방정국, 6.25 한국전쟁, 산업화 통치기와 민주화 투쟁기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한다.
유럽에서 지식인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였고 유럽은 18세기로 접어들면서 근대성에 의한 국민국가의 시대적 변혁을 경험하게 되었으며 통일신라 이전의 지식인 가운데는 불교에 기반을 둔 왕사나 학덕 높은 고승으로서 왕조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수의 고승이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일반인들의 기호에 충족되는 지식상품의 제공이나 유통을 위한 독서층 중심의 시장 형성이 근대 지식인의 등장에 필연적인 요소였고 근대 국민국가는 근대성에 바탕을 둔 제도적인 혁명적 재편이므로 전통적인 가치관과 제도의 극복을 전제로 하며 민족주의가 식민지적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고시켰다면 사회주의는 그 현실문제를 식민지적 계급문제와 연관시켰다고 저자는 본다.
전통적 지식인으로부터 근대적 지식인으로의 전개는 성리학에서 서구 근대적 지식체계로의 학문적 바탕의 전환을 의미하고 전통적 지식인의 이념지향이 군왕체제의 충군사상이었다면 근대적 지식인의 이념지향은 근대성에 따른 근대국가 수립이었으며 해방정국의 지식인의 정치참여에서 지적해야 할 사실은 이들의 정치참여가 독립이나 자주국가 수립 등 당위적인 지향보다는 특정 정파 위주로 나아갔다는 점이라고 한다.
해방정국의 정치적 지식인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파벌적인 존재로 분화되었고 해방정국의 대부분의 정치적 지식인들은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지적이고도 민족적인 활동으로 생각했으며 식민지에서는 해방과 독립의 쟁취야말로 민족주의의 전개과정 그 자체였던만큼 이 시기 한국에서는 민족주의가 기본이념이었으므로 해방정국의 대다수 정치적 지식인들은 스스로 민족주의자로 자처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조소앙의 삼균주의와 안재홍의 신민족주의 이론은 정통적 민족주의론이고 이 이론은 구체적으로 민족적 근대국민국가를 이룩하려 했던 정치이념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해방정국의 민족주의는 정치적 구호로만, 또는 선언적인 논리로만 존재해야 했다고 저자는 본다.
한국의 지식인은 대부분 정치와 함께 험한 길을 걸어왔고 해방정국의 지식사회는 권력에 접근하려는 정치적 지식인이 주도하고 있었으며 정치적 지식인은 지식인다움보다는 직업적 정치인의 속성을 더한층 강하게 보여주었다고 저자는 본다. 또한 해방정국에서 비롯된 정치적 지식인의 한계는 결국 그 뒤의 지식사회에도 그대로 지속되었고 정치에서의 소수에 의한 다수의 지배라는 전통적 사유는 더 이상 통용될 수 없으므로 지식인의 정치참여는 현실 정치사회를 권력정치로부터 자율적인 공동체 사회의 구현에 중점을 두는 시민정치로 발전시키는 것에 그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저자는 본다.
조선의 중종이 사림을 등용시켰다기보다는 눈여겨보기 시작했고 한국성리학이 학파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기묘사화 이후, 즉 학문적으로 축적이 되다가 열매를 맺는 16세기부터이며 학통, 학파로서 학문적으로 성숙이 된 것은 퇴계부터이다. 조선의 선조가 퇴계를 원했다. 퇴계학파와 남명학파가 처음으로 크게 형성된 학파이고 퇴계는 주위의 권유로 대과에 응시한 후 34살의 나이에 벼슬길에 올랐으며 79차례나 벼슬을 사양했다. 퇴계가 성균관 대사서를 스스로 그만두었던 계기는 당시의 과거시험이 너무 출세지향적이었으므로 퇴계는 학생들에게 출세와 상관없는 문제를 내었으며 학생들은 시험거부를 한 후 퇴계선생에게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 책은 한국의 지식인과 정치를 잘 되짚고 있다.
이병화 /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학과 석사과정 재학
[이병화의 초,중,고 학생들과의 독서] 권력과 지식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