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화의 초,중,고 학생들과의 독서] 21세기 우리문화
맛있는 공부
기사입력 2014.10.10 09:22
  • 『21세기 우리문화』(주강현,한겨레신문사,1999)를 지은 주강현은 경희대에서 민속학으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자는 한국민속문화연구소를 창설했고, 서울에서 태어났다. 저자가 쓴 1996년에 출간된 『우리문화의 수수께끼』(1,2)는 20만이 넘는 독자의 관심을 끌었고, 저자는 경희대에서 ‘한국민속학’과 ‘한국미술사상사론’을 강의했다.

    저자는 모스크바 공항을 떠나 시베리아 대평원으로 가, 1993년 8월의 여름, 시베리아에 머물렀다. 레나 강가의 사하공화국(구 소련의 야쿠티아공화국)의 수도 야쿠츠크 공항에 내려 사하족의 관습을 본 후에 저자는 사하족의 축제가 시베리아의 가혹한 자연조건을 이겨내는 생동감과 자연에 대한 사랑과 신비로움이라고 한다. 저자는 지난 21세기 동안 우리가 근대화 모델을 따르는 제1세계 중심의 유형문화관에 중독돼 오랜 기간 우리의 민중들의 무형의 문화를 망각했고 단일민족이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서구문명이 준 방식의 문명독해법을 거부해야 할 때가 왔고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이 자연적인 데 반해 우리의 무속은 고도의 문명국가에서 성장해 온 역사성을 지녔으며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올바른 이해는 우리문화의 사상적 원류가 동일한 북아시아 샤머니즘이었으므로 의미가 크다고 한다. 또 우리문화의 바탕은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는 무형의 문화이고 속도의 문화와 미학은 자본주의에는 맞는 논리일 수 있지만 사람과 환경에는 지극히 적대적이라고 한다.

    20세기는 손님의 시대였고 지난 100여년의 시간이 제국의 시대였으며 멕시코에서 아즈텍의 영광은 완전히 사라졌고 거기에는 오로지 고난의 현대적 삶을 사는 민중들만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반도에도 하멜이 표류한 100년 뒤 1787년 5월 하순에 프랑스 라페루즈 일행이 한반도 남동쪽 해역을 조사하며 울릉도에 왔고 이들의 중간보고서가 1797년에 출간되어 『하멜표류기』와 함께 세상에 조선의 실체를 알렸으며 또한 1797년 영국의 브로우튼은 부산에 일주일간 머물면서 한글 38개의 단어를 채집했고 1816년 홀이 서행의 상조도에서 28개의 단어를 채집했는데 이는 『정조실록』에 전한다고 한다. 그리고 1836년 한반도에 처음 서양인 신부가 입국했고 조선은 7세기경 신라와 교역하던 서역인을 통해 아랍에 알려졌다고 한다. 저자는 한반도의 100년 전의 모습을 축구공에 빗댄다. 또한 헤겔은 중국 역사에는 발전적 요소가 없다고 단정했고 근대 역사학의 랑케는 서구의 발전적 역사만이 진정한 의미의 역사라고 했으며 중국민족은 항구적 정체 민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한반도의 19세기는 오로지 중국을 향해 절하고 흠모하는 동쪽오랑캐였고, 저자는 수원 화성에서 근대성을 보며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한반도의 기록화가 훼절되었다고 본다. 또한 우리문화의 근대성의 발아를 튼튼하게 키워나가지 못했고 동도서기론은 서구문명에 대한 충격과 대응방식에서 나왔으며 일찍이 저자가『우리문화의 수수께끼』에서 동도동기(東道東器)도 가능함을 역설했다고 한다. 이는 동양은 기가 아니라 오로지 도라고 인식했던 한계론적 사고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며 21세기의 문명적 대안으로 화두가 될 전망이라고 한다. 또한 저자는 민중 스스로 키워나간 우리문화로서 굿과 두레를 예로 들며 20세기 우리문화의 길은 들어온 것과 우리 것의 융합과 갈등이라는 방식으로 전개되었고 일제 식민지화는 지극히 약육강식적인 사회진화론적 논리가 우리문화에 뿌리박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기독교 문화와 우리문화를 볼때 미국 기독교와의 관계 설정이 20세기 문화사를 바라보는 데 가장 중요하고 세계종교라는 옷을 입고 한반도에 들어온 기독교는 선교 초기부터 수많은 갈등을 빚어왔으며 민족, 혹은 우리문화와 여전히 갈등을 겪고있다고 한다. 또한 한국의 기독교는 제국주의 세력과 무관하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고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교를 믿어 개화 부국을 이루고자 했으며 예증으로 서양국가들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병원과 학교는 서구 근대성을 이식하는 미세한 수로였고 개신교는 천주교가 일찍이 닦아놓은 터전 위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복음화가 유리했으며 서양인 선교사들은 농촌의 마을 공동체 신앙에 대해 엄격한 비판의식을 드러냈다고 한다. 기독교는 항상 마을 공동체 신앙과 갈등을 겪었다고 하고, 저자는 21세기 우리문화와 한국 기독교의 희망과 연대를 묻는다.

    1920년~30년대 일제의 우리문화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들은 조선총독부 각 과마다 배치되었던 촉탁이고 총독부의 식민지 총서는 대개 촉탁들에 의해 씌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일제의 통치 결과 우리문화가 겪은 모독과 시련의 세월을 몇 줄의 글로 일일이 표현할 수 없고 저자는 일본과 우리문화의 관계에서의 희망을 묻는다. 또한 저자는 대동아공영권의 구상을 연장하는 듯한 일본 우익의 전반적인 움직임은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우리문화 100년사는 ‘들어온 것’과 ‘전래의 것’의 전투였고 문화간의 싸움은 상호 대립하면서 일정한 기점에 이르면 서로 융합하거나 어느 일방이 다른 한쪽을 밀어내어 주도권을 잡는 방식으로 전개되며 우리의 경우 들어온 것이 주도권을 잡는 가운데 양자간의 융합이 이루어졌으며 이에 적응할 수 없었던 상당 부분의 우리문화는 소멸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들어온 것과 전래된 것의 융합과 대립이 일제시대에 이뤄졌다는 사실은 식민지적 강제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며 발전 모델은 결국 ‘근대화=서구화=우리문화 청산’이라는 전철을 밟았다고 한다. 새마을 운동을 전개하면서 마을의 서낭당 같은 마을 공동체 문화를 미신으로 몰아서 철저하게 청산했던 사례를 저자는 든다. 그리고 전통은 늘 변화하고 우리시대 우리문화론의 사표를 공자가 갈파해 놓은 말인 법고창신(法古刱新)이라고 한다.

    문화산업화한 우리문화가 상품가치로서뿐만 아니라 민중의 삶과 민족의 처지를 잘 반영하는 새로운 문화 틀로 거듭 재생되어야 하고 ‘우리 민족 또는 각 지방에서 전래된 문화, 기술, 토산품 등을 전승, 발전시켜 배타적으로 수익화가 가능한 유무형의 자산’인 향토 지적 재산의 개념이 중요하다고 한다. 결국 저자는 유형문화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 무형중심의 사고를 해야 하고 동화정책을 구사한 일제는 우리의 생활과 풍습을 전적으로 동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았기에 멸종정책을 구사했으며 한반도에서는 중앙권력이 직접 관장하던 무형의 문화, 지방 관아 및 지방권력과 중앙권력의 상호 긴장과 합의 속에서 이루어지던 무형의 문화, 마을 단위에서 이어지던 무형의 문화가 때로는 독립적으로, 때로는 상호 결합한 채 발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은 이같은 층위가 무참하게 와해됨을 의미한다고 저자는 본다.

    이 책은 우리문화를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저자의 말대로 ‘들어온 것’이 너무 휘황찬란한 현재 한국에서 잊고 살았던 우리문화를 되살려내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어렵지 않게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이병화 /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학과 석사과정 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