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화의 초,중,고 학생들과의 독서] 큐레이션의 시대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5.05.28 10:29
  •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은 우리말로 잘 안옮겨진다. 저널리즘이라는 말도 우리말로 잘 옮겨진 것이 없다. 18세기 이후로 비판이라는 용어가 유행했고 비판을 유행시킨 사람이 18세기의 칸트이다. 커뮤니케이션 사상의 효시는 플라톤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원본과 복사본의 구별이 없다. 벤야민이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아우라이고 아우라는 주체가 대상을 느끼는 지각경험이다. 종교적 예술 작품에서 보이는 것이 전통적 아우라이고 미메시스는 모방이라는 말이며 아도르노가 지은 말이다. 원래 아우라는 고대 그리스 말이고 종교적으로 쓰였으며 벤야민이 종교적인 쓰임을 바꿔놓았다. 원본은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 『큐레이션의 시대』(사사키 도시나오, 한석주 역, 민음사, 2012)의 저자는 IT저널리스트이자 일본 총무성 정보 통신 테스크포스 위원이다. 저자는 와세다 대학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현재 독립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예전에는 정보가 매스 미디어라는 커다란 강물 위로 흘러갔고 그 당시에는 정보가 어디에서 발생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두가 자신의 눈으로 확실히 볼 수 있었으나 이제는 정보가 흐르는 곳은 점점 세분화되어 가고, 감각이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신문이나 텔레비전, 잡지 같은 것에서 정보를 얻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대신에 누군가의 블로그를 보거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댓글을 읽거나, 혹은 누군가의 트위터를 팔로우하는 등 자신만의 다양한 방법으로 작은 수로에서 흐르고 있는 정보를 모으고 많은 사람들은 이미 블로그나 트위터 같은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를 이용해 자신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정보를 수집한다고 말한다.

    정보를 공유하는 권역의 사이즈가 국가별로는 점점 작아지고 있고 이 책에서는 비오톱을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장소라고 부를 것이며 정보가 공유되는 권역이 인터넷의 영향으로 점점 세분화되면서 그런 각각의 장소를 특징짓기가 굉장히 힘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인터넷이 출현하면서 커다란 비오톱은 산산조각이 났고 메스 미디어 이외의 비오톱이 무수히 생겨났으며 이런 경향은 처음에는 웹사이트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인터넷 공간과 현실 공간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비오톱은 끊임없이 재생성되어 가고 비오톱은 언제나 임의로 생겼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생겨나며 만약 권역은 작지만 정보 교류는 활발한 특징을 커뮤니티가 갖고 있다면 이 커뮤니티는 인터넷과의 친화성이 아주 높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정보가 비오톱에 기반해 유통되는 경향은 주류 매스 미디어의 쇠퇴와 더불어 2000년대에 들어 극적으로 진행되었고 정보의 양은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매스 미디어의 시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정보들이 매일 우리의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으며 매스 미디어의 시대에는 정보가 집중되었다고 저자는 본다.

    앰비언트의 개념은 우리가 접하고 있는 동영상이나 음악, 서적 등의 콘텐츠가 전부 개방되고 유동적이 되어, 언제 어디서나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것이고 이제 정보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사람들 간의 연결을 통하지 않고는 흐르지 않으며 집단 사회가 붕괴된 오늘날, 개인과 사회가 원만한 관계를 맺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개인은 익명이라는 패키지로 자신을 벗어 버릴 수 있는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친구나 회사 동료에겐 결코 말할 수 없는 고민을 털어놓고, 그곳에서 치유받으며 이런 의미에서 인터넷에서의 관계성도 실제 사회의 관계성과 같은 지평 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본다.

    소비한다는 행위의 건너편에는 타자의 존재를 인지하고 타자와 연결되고 타자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존재하고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는 접속과 인정이 중심이 되며 이를 위한 수단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본다. 또한 최근에는 클라우드와 공유라는 말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고 클라우드라는 것은 이메일이나 워드 문서, 음악, 영상 등을 인터넷 회선 너머의 커다란 컴퓨터에 전부 보존해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공유란 나눠쓰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저자는 원래 인터넷의 공동 구매 서비스는 1990년대 말부터 이미 존재했고 1990년대 당시에는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 SNS나 트위터처럼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가 없었으며 오프라인의 현실 공간에 온라인이 진출하면서, 인터넷은 사람들이 밖에서 활동하기 위한 기반이 되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예전 매스 미디어 광고의 세계에서는 소비자와 기업의 관계가 일방적이었고 이제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가 지속적인 관계로 바뀌고 있으며 양측 모두가 자유로운 계약의 관계라고 저자는 본다.

    모든 것이 수평적으로 이루어지는 인터넷 세계에서는 가치관이나 흥미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즉 콘텍스트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연결되고 인터넷 광고의 역사에서 처음에 보급되었던 것이 배너방식이었으며 포털사이트의 메인 페이지에 커다랗게 표시되는 광고가 배너라고 한다. 또한 지금은 소셜 미디어에 의해 세분화된 콘텍스트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우리는 콘텍스트라는 이야기를 통해 공명하고 공감하며 접속해 서로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신뢰도를 측정하는 것은 소셜 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예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쉬어졌고 소셜 미디어상에서는 사람들의 신뢰라는 것이 가시화되고 금세 확인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관점을 제공하는 사람을 오늘날 영미권의 웹에서는 큐레이터라고 부르고 큐레이터가 하는 관점의 제공이 큐레이션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광활한 정보의 바다에 특정한 콘텍스트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내는 것이 큐레이션이고 1차 정보를 발신하는 것보다도 그 정보가 가지고 있는 의미, 그 정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같은 콘텍스트를 부여할 수 있는 존재야말로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소셜 미디어 세계에는 무수히 많은 큐레이터가 존재한다고 한다. 또한 우리는 지금 흔들림 없이 경직된 동심원적 폐쇄 사회에서 흔들림을 항상 만드는 역동적인 다심원적 개방 사회로 나아가고 있고 소셜 미디어에서의 정보 유통과 연결은 항상 일회성이라는 단 한번의 만남 속에 있으며 세계 최대의 SNS이 페이스북은 원래 대학교 동창회 명부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글로벌한 플랫폼이 보급되면서 민족성이나 각각의 국가가 지닌 독자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도 나오고 있고 미국의 문화 제국주의가 1970년대의 일본에서 성립했으며 글로벌화한 시스템에서는 정보의 전달이 지금까지보다 훨씬 쉬어지므로 지역 문화가 점점 중요해진다고 저자는 본다.

    21세기에 예술이 대중문화로 대체되었다. 예술의 정치화는 좋은 것이고 정치의 심미화는 나쁘다는 것이 벤야민의 결론이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인 라캉은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의 욕망이라고 보았고 대타자는 타자의 상징이며 결국 타인의 욕망을 우리들이 욕망하는 것이라고 라캉은 보았다. 이 책은 독자에게 인터넷 세계를 잘 설명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