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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출강하던 어느 대학에 S라는 조교가 들어왔다. 키도 크고 체격도 건장하고 활달한 청년이었다. 교수가 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아무래도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취업을 위한 자격증 관련 서적들을 뒤적이는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명색이 취업 전담 교수로서 도움을 주고 싶긴 했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 괜스레 나서는 것 같아 모르는 척 지켜봤다. 원래 코칭은 상대가 원하지 않으면 먼저 관여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게다가 다른 선생이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아 취업 관련 말은 더더욱 아끼며 일상적인 대화만 주고받았다.
그런데 평소 S가 하는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면 학부 생활을 화려하게 수놓았다는 무용담이 대부분이었다. 수업을 쨌다(수업에 들어가지 않았다), 화끈하게 놀았다, 취업 같은 건 염려하지 않았다, 축제 때는 제대로 놀았다, 요즘 애들은 이도 저도 아니다, 라는 식이었다. 결국 그렇게 논 결과 취업이 안 돼 임시로 학교에 다시 들어왔던 거다.
그러던 어느 날, S가 내게 자기소개서를 봐달라며 내밀었다. 답답했던 모양이다. 내가 본 자기소개서에는 자기가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이며, 그런 성격대로 대학 생활을 하면서 학교 밖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일관성 있게 강조되어 있었다. 나쁘지 않았다. 다만 궁금했다. 사실인지.
나는 S에게 정말 그러냐고 물었다. 평소 말과 행동으로 봤을 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였다. 역시나 대답은 아니란다. 그런데 왜 굳이 꼼꼼함과 치밀함을 이렇게 강조하느냐 했더니 회계학과 특성상 그렇게 강조하는 게 좋다는 말을 취업 강좌에서 들었단다.
S는 지방대 회계학과 출신에 졸업 학점은 3.1점, 토익 점수는 600점대. 이것이 스펙의 전부였다. 공모전 입상이나 사회봉사 활동, 해외 연수, 전공 관련 사회 경력, 자격증 등은 전무했으며, 나이는 스물아홉이었다.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에서 S는 중소기업부터 대기업까지 재무·회계 쪽으로만 입사 지원을 해왔고, 2년째 취업을 못하고 있었다.
왜 재무·회계 쪽으로만 입사 지원을 했느냐고 S에게 물었다. S는 회계학과 출신이다 보니 딱히 다른 직종은 고려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만일 재무·회계 쪽으로 취업하면 일이 만족스러울 것 같으냐고 물어봤다.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굳이 한 직종에만 매달릴 필요가 있겠느냐고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자 S는 어떤 직종이 좋을지 몰라 전공 관련 직종으로만 지원했단다. 그러면서 자기한테 적합한 직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동안 봐온 S의 행동과 성격을 고려해봤을 때 활달한 일을 하는 직종이 더 어울리겠다 싶어 영업직을 추천했다. 아무리 봐도 영업직 사원으로서의 자질과 적성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건장한 체격에 인상도 강하고 말도 잘하고 활발하고 힘든 일도 가리지 않으며 사람들 만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니 제격이겠다고 설명해줬다. 내 말을 듣더니 자기도 영업직이 성격에 맞을 것 같다며 이런저런 무용담까지 늘어놓는다. 나는 당장 자기소개서부터 완전히 바꾸라고 했다. 일단 기존 자기소개서 형식을 토대로 영업직 지원자 입장에 확실히 포커스를 맞춰 내용을 수정한 다음, 입사 지원을 다시 해보라는 거였다. -출처: 도서 <따뜻한 독설> 중에서
[정철상의 커리어관리] 전공 분야로의 취업만 고집하는 오류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