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상의 커리어관리] 집착이 불러온 경계성 장애
맛있는교육
기사입력 2013.12.12 17:35
  • 필자에게 상담을 요했던 K양의 실화다. 그녀는 결혼을 앞둔 언니의 남편 될 남자가 의심스러워서 여러 가지를 알아보던 중에, 형부 될 사람의 말 대부분이 거짓임을 알게 되었다. K양은 이 사실을 언니에게 알렸고, 사태를 파악한 언니도 파혼을 선언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이 남자가 언니의 집과 회사를 오가며 스토킹이 시작됐다. 하루는 회사 앞에서 언니의 동료들이 있는데도 납치하다시피 언니를 차에 태워 으슥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농약 병을 내밀며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협박을 했다. “너 먼저 먹어라. 너 죽는 것 확인하고 나도 따라죽겠다”며 위협하는 것이다.

    남자가 회사에 사표까지 쓰고 언니만 쫓아다니자 너무 힘들어진 K양의 언니는 ‘잠시 이 사람의 마음을 받아줬다가 나중에 정신이 돌아오면 그때 헤어질까?’하고 고민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까지 그만두고 쫓아다니는 데다 농약 병까지 들이밀 정도라면 이것은 사랑의 도를 넘은 스토킹이다. 이런 사람을 다시 받아준다는 것은 위험한 결정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런 사람들의 정신 상태를 ‘경계성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라고 규정짓는다. 여기서 ‘경계’라는 말을 쓰는 건, 그의 성격이 신경증적 증상과 정신증적 증상을 복합적으로 나타내거나, 신경증과 정신병의 양쪽 경계선에서 심각한 문제를 보이고 있다는 의미다.

    경계성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정체성이 없다는 게 특징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이렇게 과도하게 반응하는지 자신도 종잡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감정 기복이 크고 이것이 극명하게 외부로 표출된다.

    나아가 사랑에서도 직업에서도 하나를 꾸준히 유지하지 못하니 삶에 변동이 많다. 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몇 번이나 오간다. 자신을 통제하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며 좌절에 빠진다. 또한 예측이 불가능한 돌발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런 이들일수록 외로움과 고립감을 더 많이 느낀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에게 의존하려 들고, 상대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면 견디지 못한다.

    만일 자신에게 지극 정성을 보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극명하게 적개심을 표한다면,  경계성 성격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현상이 심해지면 누군가를 향한 스토킹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시작해 끝내 ‘증오’로 끝나게 될 불행이다.

    직장에서 사표까지 쓰고 극단적으로 매달리는 옛 연인을 불쌍하다고 받아줘서는 안 된다.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와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할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연민의 정이 느껴지더라도 좀 더 매몰차게 관계를 끊어줘야 하다.

    대개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 많은 젊은 시절에 이런 스토킹 성향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병적 현상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천천히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자기 삶의 의미를 올바르게 규정하고 자신을 들여다보며 조각난 부분을 퍼즐처럼 맞춰가야 한다. 정체성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 삶이 상대나 주위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온전한 삶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극단적인 틀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

    내 삶의 행복은 주위 환경이나 다른 사람에게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나 자신만이 나의 행복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높은 자존감이 필요하다. 스스로에게 작은 용기를 자주 북돋아줘야 한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부터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글은 이충헌 기자의 『성격의 비밀』과 조성호 교수의 『경계선 성격장애』를 참조해서 도서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에 실었던 글이다.

    대구대학교, 초빙교수/ 인재개발연구소, 대표/ 커리어코치협회 부회장 정철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