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상의 커리어관리] 내 인생을 망치는 보복심리
맛있는교육
기사입력 2013.03.22 11:33
  • “아빠와는 대화하는 것조차 싫어요. 아빠는 뭐든지 나만 시키거든요.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여름방학 내내 병간호만 했는데도, 아빠는 교대도 안 해주고 집안일도 안 하세요. 퇴근하고 돌아오면 계속해서 나를 부려먹고요. 아빠에게 대들면 호적 파버리겠다고 하세요. 아빠랑 같이 있는 게 정말로 너무 싫습니다.”

    대학교 1학년인 나싫어 양의 고민이다. 이 이야기만 들어보면 분명히 그녀의 아버지에게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나싫어 양도 아버지의 고민이나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충돌을 감수하고라도 아버지에게 잘못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아버지도 태도가 조금은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나싫어 양은 문제해결에 적극적이라고 볼 수 있는 반면, 상당수의 학생들은 부모와의 충돌을 꺼려한다. 하지만 때로는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을 믿어야 한다. 여기서 장 피아제가 말한 충돌의 순기능을 살펴보자.

    “아동심리학자 장 피아제는 ‘충돌’을 심리발달 단계의 결정적인 부분으로 보았다. 처음에는 또래와, 나중에는 부모와의 싸움을 통해 아동은 세상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며 문제해결 능력을 발달시킨다.

    어떤 경우라도 충돌을 회피하려 하거나 부모가 과잉보호하는 아동은 결국 사회적, 심리적 장애를 갖게 된다. 이것은 성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성인도 싸움을 통해 무엇이 통하고 무엇이 통하지 않는지, 어떻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지 배운다. 적이 생긴다는 생각으로 주눅 드는 대신 그 생각을 껴안아라. 때론 충돌이 치료제다.”
    - 로버트 그린, 『전쟁의 기술』

    충돌 자체를 꺼려하는 아이들은 대개 드센 부모에게 억눌려 수동적으로 변해버린 경우가 많다. 실제로 나아름 양이 그랬다. 그녀는 언뜻 보면 밝고 쾌활하고 아름다운 여학생이었다.

    그런데 최근 도움을 주고 있는 시각장애인과 트러블이 생겨서 기숙사 생활 자체가 힘들어지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나마 사귀던 남자친구가 그나마 위로가 되었지만, 그와도 최근에 헤어지는 바람에 나아름 양은 깊은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또한 집에라도 자주 가면 좋을 텐데 형편이 넉넉지 못해 기숙사에만 박혀 있으니 외로움만 커져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학생의 모든 문제는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에 가까운 술꾼으로 집에만 오면 큰소리를 치고 행패를 부렸다. 이 때문에 아름 양은 집에 가기 싫어했다. 집밖에서는 밝고 명랑하다가도 집에만 가면 퉁명스러워지곤 했다. 아버지와 한 번도 제대로 충돌해보지 못한 탓에 그녀로서는 말수를 줄이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정도가 아버지에게 행할 수 있는 공격의 전부였다.

    이어지는 사연은 더 기가 막혔다. 아름 양에게는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있었다. 어린 시절 친구를 데리고 놀러오다가 집 근처에서 술에 취해 팬티 바람으로 엎어져 있는 아빠를 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친구 앞에서 차마 아빠를 아는 척할 수가 없어서 그냥 돌아섰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그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컸을까.

    더 큰 문제는 그녀가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에 대한 책임 일부를 자신에게 돌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아름 양은 우연찮게 서랍 속에 있던 계약서 같은 종이를 발견했다. 내용이 궁금해져서 그 종이를 아버지에게 가져가서 뭐가 적혀 있는지 물어봤다. 순간 아버지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 그것은 엄마가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준 차용증이었다. 아버지는 곧바로 어머니를 추궁했고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엄마는 어려운 형편에 이자라도 벌어보려고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그러다가 그 돈을 사기 당했고 이 사실을 쉬쉬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름 양이 이걸 발견하는 바람에 더는 숨길 수 없게 된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여러 번 큰 목소리가 오갔고 그 무렵부터 아버지는 진탕 취해서 돌아오는 날이 많아졌다. 아름 양은 그때 자기가 그 차용증을 아버지에게 보여주지만 않았어도 아버지가 저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숙한 곳에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숨겨져 있었다. 아름 양은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를 바꾸고 싶어 했다. 동시에 자기가 잘하면 다른 사람들은 아버지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타인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녀가 돌보고 있는 장애인과의 문제도 그 연장선이었다. 내막을 알고 보니 그 상황은 아름 양의 잘못이 아니라 상대 쪽에서 그녀를 트집 잡아 이간질을 하고 있었다.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름 양과 사귀는 도중에도 다른 여자와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문제 많은 남자였고 헤어지는 편이 더 나았다. 그럼에도 아름 양은 모든 잘못을 혼자 끌어안으려고 했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자신을 자책해서라도 충돌을 피하고 싶어서였다. 즉 지금껏 그녀는 충돌의 순간에 꾸준히 문제 회피라는 선택을 내려온 것이다. 아래 글은 필자가 아름 양에게 주었던 조언이다.

    어떻게 조언을 주면 좋을지 다음 편에서 다뤄보자.

    대구대학교, 초빙교수/ 인재개발연구소, 대표/ 커리어코치협회 부회장 정철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