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상의 커리어관리] 완벽한 사람과의 만남을 꿈꾸는 사람들
맛있는교육
기사입력 2013.02.15 17:28
  • 오래전 군대를 막 제대하고 복학했을 때였다. 무슨 수업을 들을까 둘레둘레하다가 영어회화를 잘 하고 싶어서 원어민 수업을 많이 들었다. 역시 복학생의 열정이란 무서운 것이라서 4년 치 회화수업을 이때 다 몰아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수업 중에 외국인이었던 강사 분이 내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처음 만나는 이성을 판단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느냐고. 나는 숨도 안 쉬고 대답했다. 길어야 2-3초라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내 대답에 강사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시 나는 20대 중반이었다. 참 철이 없었다. 그 강사 분의 몸무게가 백 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였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 사람을 2-3초 내에 판단한다면 거대한 몸집의 그녀는 애초에 연애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할 테니까.

    하지만 당시 내게는 그렇게 답할 만한, 이성을 가름하는 정확한 판단 기준이 있었다. 영화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에 나오는 잭 블랙처럼 오직 미모만 따졌기 때문이다. 참 어리석었다.

    요즘 청춘들은 외모보다 ‘필(feel)’을 더 중시 여기는 것 같아 기특하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조건보다는 필이 꽂혀야 하고, 외모보다 마음에서 느껴지는 느낌을 중요시한다.

    그런데 사실 그 필이라는 놈도 한 꺼풀 벗겨보면 운명적 만남에 대한 기대감과 일맥상통한다. 젊은 날에 필을 중요시 여긴다고 문제될 건 없다. 문제는 배우자 선택에서도 중요한 선택 조건으로 필을 내세울 때다.

    주변을 보면 많은 이들이 동화 속 주인공처럼 운명적 만남만 기다리며 수동적으로 세월을 보내는 것 같다.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 연령대가 자꾸 늦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게다가 어떤 젊은이들은 배우자뿐만 아니라 친구 관계, 직장이나 사회적 관계에서도 필을 외친다. 그러다 보니 사람에 대한 기대감도 높고, 실없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누구에게나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필이 통하는지 보려고 잠시 열었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곧장 닫아버리니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심지어 관계를 오래 끌고 가는 것도 끈적끈적하다고 싫어한다.

    직장에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명함은 연락해도 좋다는 뜻일 터인데 명함을 받아도 다시 연락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무슨 진드기라도 되는 것처럼 쓰레기통으로 직행시키는 경우도 많다. 명함 건네준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와도 ‘이 사람이 누군지, 왜 연락하는지’ 등을 따진다. 때로는 이성친구조차도 명함처럼 손쉽게 집어넣었다가 손쉽게 버린다. 이런 친구들을 볼 때면 완벽한 여자를 찾으러 다니던 한 남자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주 키도 크고 잘생기고 집안도 좋은 한 멋진 남자가 있었다. 따라다니는 여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과 맞는 완벽한 여자를 만나고 싶었다. 완벽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하고 고향을 떠났다. 남자의 간절한 소원 덕분인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완벽한 여인을 만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와 맺어지진 못했다. 그녀도 완벽한 남자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화 속에서만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 맞춰 살기보다는 자기 마음에 딱 맞는 관계를 꿈꾼다. 친밀한 친구관계나 이성일수록, 배우자일수록 기대가 더 크다. 그러나 완벽한 관계란 없다. 완벽한 사람도 없다. 완벽한 사람을 요구하고 있다면 ‘나는 완벽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지, 나는 완벽한 사람인지’ 반성부터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하면서 함께 호흡하려는 노력이다.

    자신은 완벽하지 않으면서 타인은 완벽하기를 요구하는 강박증을 버릴 때 우리 사회도 보다 따뜻해지지 않을까.

    대구대학교, 초빙교수/ 인재개발연구소, 대표/ 커리어코치협회 부회장 정철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