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상의 커리어관리] 엉뚱한 생각이라도 상상을 제한하지 마라
맛있는교육
기사입력 2013.02.07 17:04
  • 한 대학 특강 때 있었던 일이다. 강의에 참석한 학생이 딱 한 명이었다. ‘세상에, 이게 뭔 일이래’ 싶었다. 한편으로는 크리스마스이브 전날인데도 강의에 참석해준 그 여학생이 고맙기도 했다. 한 명이라도 좋으니 열심히 하자고 마음먹고 준비해온 노트북을 꺼내들었다.

    여학생의 이름은 나환상이었다. 우리는 통성명을 하고 ‘성격 이해를 통한 자기이해’라는 주제로 일대일 강의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썰렁했는데 열정적으로 이야기에 빠져들어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어느새 마칠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질문이 있냐고 묻자 그녀가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질문과 응답이 오고 가면서 예정된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나환상 양이 영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뭔가 할 말이 있는데 못 꺼내는 눈치였다. 내가 말했다.

    “괜찮으니 편하게 이야기해요.”

    그러자 그녀는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교수님. 요즘 들어 자꾸 딴생각이 나요.”
    “무슨 생각?”
    “저기… 음, 그러니까 야한 생각이요…. 저 이상하죠?”

    와, 대략난감! 헛기침을 몇 번 하고야 겨우 말을 꺼냈다. 

    “음, 잘못된 건 아닌걸. 솔직히 나도 학생 나이 때는 그런 생각 많이 했으니까. 그때는 여자만 보면 ‘이 친구랑 결혼하면 어떨까’ 생각하곤 했거든. 그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아, 교수님도 그런 생각하셨어요…? 그런데 교수님, 저는 좀 심해요. 한번은 전공 교수님이 어떤 이야기 줄거리를 말씀하시고는 그 다음은 각자 방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해보라고 하셨는데요. 저는 등장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성관계로 끝을 맺었거든요. 그 교수님이 몇 몇 학생들의 리포트를 읽으셨는데요. 하필이면 제 글을 소리 내서 읽으시다가 막판에 가서는 얼굴이 벌게지시더라고요. 친구들 분위기도 장난 아니었어요. 사실 저는 괜찮은 마무리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때 제 성적 환상의 강도가 남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남학생도 아닌 여학생이니 그때 그 교수가 느꼈을 당혹감을 나도 이해할 것 같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말했다.

    “솔직히 말해 나도 대학생 때는 성적 환상이 심했지. 그럴 때는 샌드백을 두 시간씩 두드리면서 마음을 다스리곤 했어. 나환상 양도 운동해서 땀을 흘리거나 조금 더 가치 있는 일을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연애 판타지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서 그럴 수도 있으니 독서 취향도 한번 바꿔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성적 환상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니 자신을 책망할 필요는 없겠지.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했으니 그 경험을 글로 써보는 것도 좋겠는데. 성적 에너지를 건전한 에너지로 변환시키면 꿈을 이루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그런 면에서 가능한 한 자신에게 빈틈을 주지 않도록 바쁘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

    나환상 양과 이야기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야한 상상을 많이 한다고 이 여학생을 비난할 수 있을까. 오히려 난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잘못이 없는 것일까.

    서기 2054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마이너리티리포트』를 보면 범죄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프리 크라임’이라는 시스템이 나온다. 범행이 일어나게 될 시간과 장소, 잠재적 범인을 미리 예측해서 살해동기가 포착되면 즉각적으로 체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영화에서는 범죄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조차 가끔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할 때가 있지 않은가. 게다가 머릿속으로는 온갖 음험하고 잡스러운 상상을 하는 등 번번이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 다만 그 감정이나 상상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지나친 상상을 했다는 것만으로 누군가를 나쁘다고 몰아가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물론 기성세대 대부분은 나환상 양 얘기를 들으면 이렇게 말할 게 뻔하다.

    “어떻게 된 애가 그 모양이야. 도대체 요즘 애들은 이해가 안 된다니까.”

    이들은 젊은이들의 솔직한 상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나이 때는 누구나 비슷한 상상을 했을 것이다. 혹시 너무 나이를 먹어서 자기도 그 시절에는 그랬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
      
    인간에게는 공상하고 상상할 자유가 있다. 그것에 자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상상은 그저 상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상상과 공상을 억누르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심리학적으로 무조건적인 억압은 잘못된 결과를 불러온다. 본능 속에 숨겨진 창의성과 자발성, 책에서 배울 수 없는 배움과 경험, 창의적 상상력과 에너지를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야한 상상도 마찬가지다. 한 개인의 독특하고 특별한 창의성을 위해서라도 때로는 야한 상상도 필요하다. 사회 전체의 창의성도 마찬가지다. 좀 더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회를 만들려면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고 자유와 개방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

    대구대학교, 초빙교수/ 인재개발연구소, 대표/ 커리어코치협회 부회장 정철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