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지 대표이사와 이진오 강사의 미래영재 스토리] 영재성을 지키는 것은 부모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9.02.06 09:08
  • 오래 전 드라마 SKY캐슬에 나오는 박영재 현실버전을 접한 기억이 있다. 그 학생은 교실 맨 뒤에서 제출해야 될 종이에 뭔가 빼곡히 적고 있었다. 얼마나 열심이던지 걷을 때가 다 되어서 강사가 근처로 가는 데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학생 곁으로 가자 눈에 단순 반복되는 저주문구가 들어왔다.

    ‘하기 싫다.’ ‘죽어 버려.’

    서로 눈이 마주치고 강사나 학생이나 둘 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었다. 입은 다물고 있었나. 학생은 상황파악이 끝나자마자 걷는 건지 몰랐다며 급하게 종이를 구겨서 가방에 넣었다.
    정말이지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저주를 퍼부을 정도로 수업이 안 좋았나? 하지만 교실에 잘 버티고 앉아 있는 다른 학생들을 생각해보면 수업이 안 좋다 한들 이 정도는 아니지 싶었다. 학생이 버티지 못할 만큼 버거운 내용이었나? 크게 타당한 생각이 아니다. 강좌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 영재성이 평가된 영재고 재학생을 위한 수업이었다.
    학생의 평소 모습이 저주에 담긴 공격성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놀라움은 더욱 컸다. 수줍은 듯이 조용조용 말하던 성격이 모나지도 않은 아이였다. 그런데 마음속에는 큰 스트레스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업이 끝난 후 학원의 다른 식구들에게 얘기를 전했다. 그리고는 수업 외적인 스트레스 요인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수업에 관해 부모님과 큰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한다. 겉으로 드러난 평온한 모습 속에 큰 스트레스를 숨기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 원인을 고려해볼 때 SKY캐슬에 등장하는 박영재 얘기와 결이 같다. 자기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다는 면도 비슷하다. 처음 드라마 얘기를 듣자마자 과거 이 학생 얘기가 바로 떠올랐던 이유이기도 하다.

    영재성 속에 숨어 있는 디테일

    물론 단순히 이 사건 하나로 복잡한 학생의 인격과 생활 전반을 넘겨짚기에는 조심스럽다. 하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바로 이 학생이 공부 자체를 거부하는 학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공부에 취미도 없는 아이를 억지로 학원에 보냈다는 식의 단순한 갈등이 아니다.
    부모와 갈등을 겪는 지점은 놀랍도록 세밀한 부분이었다. 아이는 물리 올림피아드 대신 화학 올림피아드가 하고 싶었단다. 공부 자체가 싫어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아니다. 성적 때문도 아니다. 단지 학생은 하고 싶었던 다른 공부가 있었을 뿐이다.
    이 부분에서 영재성을 지닌 아이가 갖는 특수성을 읽어야만 한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해야 된다거나 자유를 줘야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식의 일반론에는 관심이 없다. 역으로 영재의 특수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영재고에 진학할 정도의 학생도, 엄마가 가라면 학원에 잘 가 앉아 있을 만큼 착한 학생도 위와 같은 작은 디테일 때문에 학업 의욕을 잃을 수 있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다른 영재들도 다 저런 것은 아니다. 싫어하는 과목도 꾹 참고 잘 하는 아이들도 많다. 하다보면 좋아하는 학생도 있다. 그냥 좋아하는 과목 자체가 없는 아이들도 있다. 요컨대 영재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영재성을 발휘하는 분야에 있어서는 특히 더 예민하고 섬세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다. 영재성을 발휘하니 당연히 해당 분야에 대해 많이 느끼고 깨닫는다. 결과적으로 반응도 다양하고 고유하다. 말 그대로 영재들은 특별하다.
    경험상 대체로 영재성이 발현되면 될수록 고유한 행동, 생각, 가치 따위를 드러낸다. 당연히 영재성이 발현되기 위한 조건도 다양하고 발현된 모습도 다양하다. 매해 만나는 다양한 아이들만큼이나 영재들의 모습은 가지각색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입시는 정 반대다. 성적과 등수는 아이들을 한 줄로 줄 세운다. 아이들은 단순히 숫자로 표현된다. 이 부분에서 영재성을 지닌 아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한다. 학업에 영재성을 발휘하는 아이들에게 공부가 쉽다고 생각한다거나, 암기력 좋고 이해력 좋으면 아무 공부나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명백한 판단 착오다. 보통 다음과 같은 말로 현실화된다.

    “정신만 차리면 공부 잘할 텐데요.”

    세상은 끊임없이 아이들의 영재성을 죽이려한다. 사회는 입시 경쟁을 만들어 아이들을 몰아세운다. 학교는 여러 여건 때문에 영재성 발현을 억제한다. 학원은 실적을 위해 아이들을 채찍질한다. 아이들의 영재성은 자연스럽게 천천히 깎여나간다.
    상황이 이러니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주의 깊게 아이를 관찰하고 잘 아껴주는 것이다. 동기를 잃지 않도록 도와줘야 하고 과도하게 피곤하지 않도록 밸런스를 맞춰줘야 한다. 세상의 바람이 아이를 향해 몰아치면 그것이 아이에게 순풍이 되도록 버퍼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일들은 온전히 부모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대단히 원론적인 얘기 같지만 사실 그만큼 중요하다. 오늘도 아침 일찍 학원에 공부하러 나온 한 중학생을 보면서 같은 생각을 또 했다. 성실한 스타일에 이미 연필을 잡는 자세가 잡힌 이 아이는 배고플 때 마다 짜증을 내고 집중을 못한다. 그런데 종종 아침을 안 먹고 온다. 공부할 때는 배고픔을 잘 참는 학생도 있다. 하지만 이 학생은 아니다. 그런데 오늘도 안 먹고 왔다. 부모님과 뭐라고 상담해야 할 지 벌써부터 앞날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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