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철의 아동 청소년 심리 교육] ‘소통’은 본능에서부터 시작된다
맛있는공부
기사입력 2014.06.26 11:19
  • 요즘 현대인들은 ‘소통’이라는 말을 곧잘 사용한다. 직장 동료 간의 소통, 학생과 교사 간의 소통, 세대 간의 소통, 정치의 소통, 디지털과 아나로그 간의 소통 등 우리가 아는 각양각색의 소통은 사회전반에 경쟁하듯 깔려져 있다.

    그렇다면 ‘소통’은 언제부터 사회의 이슈가 되어 우리를 엿보듯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소통’은 산업화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세부적으로 쪼개놓은 전문가들을 배양하면서 ‘소통’의 말은 생겨나기 시작했고 세부적으로 쪼개진 전문가들 사이에서 구속과 단절을 파괴 시키며 서로의 지식을 공유 하고 이해해 나가는 중에 ‘소통’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소통’은 긍정성을 내포하고 있음으로 그 자체가 창의적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소통’이라는 말을 그전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진정한 현대사회의 소통은 국가가 정보를 장악하고 국민을 지능적으로 통제를 할 쯤 이였을 것이다. 이는 과거의 ‘소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과거에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바탕 속 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교류하는 것이라 규정지었고 지식인들은 다양한 학술을 고루 갖춘 해박한 학문으로 토론을 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극 세부적으로 쪼개진 학문적 전문성으로 토론은 어려워지고 앵무새처럼 자기의 말만 계속적으로 반복하여 남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가 말하는 이 시대 현대인들의 ‘소통’은 산업의 논리를 지극히 받아들이고 상대를 존중하기 보다는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려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소통’을 단순히 경쟁구도에서의 선점을 위한 도구로 잘못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은 드러내지 않고 소통의 빌미로 상대의 콘텐츠를 훔쳐가는 경우가 발생되기도 하며, 마음속으로 이미 결정해 놓고 토론이나 소통을 하자며 싸움을 거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추태를 우리는 모범이 되어야 할 정치인들을 통해 자주 목격하기도 한다.

    이러한 거짓된 ‘소통’의 문제는 사회의 결핍문제로 인식이 되어 사회전반의 병질증상으로 퍼져나가기 쉽다. 직장이나 학교,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도 그럴듯한 포장된 선물로 비치며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는 경우가 발생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소통’을 어떻게 정제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가? 먼저 자신의 분석을 통해 내가 상대방을 위하여 무엇을 해주는 것이 내가 행복 할 것 이가에 대하여 먼저 생각 하여야한다. 내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가 아닌 상대방을 위해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 질 수 있는가를 생각 하자는 것이다. 이는 상대방도 행복하고 나 자신 또한 기분 좋은 일을 만들어 나가는 의식적 행동이며 자연스러운 행복성취일 것이다. 직장 내 ‘소통’이 없거나 혹은 자신의 말을 경청하지 않을 때 우리는 자존감이 무너지고 ‘소통’의 문제를 호소하여 상대방이 바뀌기를 원하지만 사실, 스스로가 우리는 자신이 바뀌면 더욱 쉽게 ‘소통’이 되리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소통’의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이며 사랑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애정적 동물이다. 지적이며, 타고난 유전적 긍정성이 있음으로 우리는 스스로 소통을 원하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김동철 대표원장 / 김동철 심리케어, 꼼마&김동철 심리케어